목사의 역습 - 2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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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항고장을 제출하고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교수의 집으로 고등검찰청에서 우편이 도착했다.
항소를 기각한다.
검사가 내린 본 처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될만한 사안이 없다.
“아주 지들끼리 쌍 지랄들을 하는구나!”
교수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항소이유서를 쓰고 심지어 정원등에 연결된 전선은 일부러 잡아 뜯지 않고서는 그렇게 잡아 뜯겨질 수 없는 것이라고 사진까지 첨부했지만, 바쁘신 검사 양반께서는 자신의 새파란 후배가 이미 ‘불기소’라고 결정 내린 사안에 대해 그것을 바꾸기 위해 어떤 전관도 자신의 사무실로 혹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지 않았기에 그대로 기각이라는 도장을 직접도 아닌 자기 사무실의 검찰 직원을 찍어 기계적으로 보내주었다.
교수를 포함해서 어차피 안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법원의 판사에게 이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신청하는 ‘제정신청’까지 해보기로 했다.
현장에서 기레기 짓을 하고 있는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을 경성제대에서 법을 공부한 교수가 모를 리가 없는데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의문이 가기는 했다. 그런데 자료를 찬찬히 읽던 중 그가 일지처럼 기록한 부분에 그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심정이 나온 글을 읽고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항소까지 기각되고서 법원에 제정신청 제도가 있는 이유는, 검찰에서 살피지 못한 사실을 법원의 판사들이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숨은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고 교수는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일지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처음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면 고소인 신분이든 피고소인 신분이든 검찰에서 연락을 받는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연히 검사실에 가게 되면 검사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게 된다. 그때 검사는 기소의 가능성이 높은 사건일 경우에는 피고소인에게, 기각을 시켜도 무방할만한 건인데 검사실까지 와서 매달리는 고소인에게 이렇게 툭 던지듯 말한다.
“변호사가 없으시네요? 이런 사건은 검찰에서 다뤄봤던 변호사들이 잘 알죠. 변호사에게 물어보세요.”
이것을 이른바 ‘전관 영업’이라고 한다. 얼핏 들으면 이미 옷 벗고 나간 선배들을 챙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들을 영업하는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검사실을 나가기가 무섭게 검사의 동문 중에서 최근에 옷을 벗은 전관을 찾는다.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그가 나가기 전에 검찰 수사관이 그를 챙기듯이 못 박듯 검사의 말이 전관을 찾아 문의하라는 의미라며 다시 한번 해설까지 해주도록 한다.
그렇게 사건을 받은 검사는 결국 전관을 통해 자신에게 연락이 오게 되면 자신이 그 사건을 홍보한 것임을 생색내지 않아도 선배가 되었든 동문이 되었든 그 변호사에게 접대를 찐하게(?) 받을 수 있다. 사건을 처리하는 와중에도 공공연하게 용돈을 챙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피의자가 전관을 고용해서 기소될 위기를 넘어가고 검사실에 전화 한번 하지 않고 이미 기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던 피해자의 경우는 청천벽력의 상황에 분통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항소를 한다. 하지만 항소는 기존 검사의 인사고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검찰의 선배인 고등검찰청의 검사가 그 건을 쉽게 받아들여줄 리가 없다.
그래서 다시 억울한 사람들은 검찰 전관 변호사를 또 찾아 쓸데없는 돈을 허비한다. 그렇게 전관의 패스를 끊은 사람들은 간혹 항소에 성공한다. 당연히 그 성공에 대한 보수는 고등검찰청의 담당 검사와 그 항소장을 성공시키는데 전화 한 통을 넣었던 변호사가 먹는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소가 기각되면 마지막 남은 기회는 ‘제정신청’이다. 제정신청이란 검찰에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부분을 법원의 판사가 봐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검찰이 지들 편이니 그렇게 넘겼던 건에 대해 판사가 공정하게 봐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검사보다는 훨씬 성적이 좋아 법원의 판사님(?)이 되신 자신들에게 전관이라는 더 큰 콩고물의 권리가 있음을 최종적으로 나눠먹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마지막의 마지막에 판세를 뒤집을 권한이 법원의 판사에게 있다는 것이 ‘제정신청’의 의미이다. 처음 기소 단계에서 천만 원에 사안을 뒤집을 일이라면 항소를 통해 결과를 뒤집으려면 당연히 베팅금액은 더 높아진다.
그리고 고등검찰청의 검사를 구워 삼지 못해 결국 기각이 되었을 경우, 마지막에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은 법원의 판사에게 넘어간다. 즉, 검찰이 다 아니라고 했어도, 판사가 제정신청에서 검찰이 진실을 은폐하고 지들이 콩고물 챙기느라 사건이 되지 않게 뭉갰다는 것을 법적으로 지적하여 ‘다시 제대로 수사하라.’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은 법원에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건이 유죄 성향이 있다고 기소를 하거나 명백히 유죄인 사건에 대해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고 기소를 안 해버릴 수는 있어도, 법원의 판사는 그 모든 검찰의 판단을 다시 자신들의 의지로 다시 법원에 세울 수도, 혹은 세우지 않을 최종 권한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제정신청’의 인용 확률이 단 0.5%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판사를 움직여 검찰이 모두 아니라고 했던 사실을 뒤집을 만큼의 베팅액을 전관 판사에게 찌르는 사람이 그만큼 없거나 그만큼 찌를 정도의 사람을 누를 정도의 더 큰 베팅액이나 권력으로 그것을 무마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왜 이렇게 제대로 사건을 보지 못하는 것이냐고 한탄한다. 아니다. 그들은 아주 잘 보고 있다.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그만큼 에너지를 쏟으며 노안이 온 눈을 안경을 벗어가면서까지 보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안이 나중에 더 크게 붉어져 문제가 되었을 때, 이것을 자신들의 관행에 따라 덮어버린 작자들이 누가 있는지에 대해서 공론화하기 위한 증거로 제정신청을 내리고 결심했다. 설사 결론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렇게 잘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괜스레 그의 일지를 읽는데 내 가슴이 뜨끔거리며 아려왔다. 내가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면서 만나왔던 검사나 판사들의 행태를 그는 면면히 모두 잘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법원 출입기자 선배들도 그 뻔뻔한 사실을 기사로 찌르며 검찰이나 법원의 썩어있는 부분을 도려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언론에 있다가 정치권으로 가겠다며 여의도에 입성하고 청와대에 들어간 선배들조차도 여당 야당을 막론하고 그들은 법조계의 인물들과의 관계를 돈독하며 형님 동생으로 지낼지언정 그들의 썩어빠진 행태에 대해 언론이 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이제 현장을 누비는 말단이었지만, 그것은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의 기록이 황산처럼 내 양심에 고르게 뿌려지며 독한 악취를 풍기는 듯했다.
교수가 제정신청을 제출하고 그것에 대한 뻔한(?) 기각 통지서를 받는 동안 2020년 여름은 모두 지나가고 저녁에 가끔씩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찾아왔다. 교수는 그제서야 서울경찰청의 수사 심의계에서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귀하가 문제를 제기하신 중양 경찰서의 사건 처리에는 아무런 수사상의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음을 통지해드리는 바입니다.
그간의 분노가 그 종이를 구기는 교수의 핏기 어린 눈가에 서렸다. 바로 전화를 들어 문의하실 번호라고 적인 곳으로 담당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서울경찰청 수사 심의계 정 경사입니다.”
“네. 나 수사이의 제기했던 김 교수라고 합니다. 사건 번호 불러드릴까요? 확인할 수 있게?”
흥분해서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교수가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갈무리하며 물었다.
“아니요. 누구신지 압니다. 어쩐 일이시죠?”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생글거리는 목소리로 교수를 안다며 되물었다.
“지금 통지서를 받았는데요. 아이를 던지려고 한 행위에 대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이를 던지려고 한 행위가 대통령한테 하려고 했으면 그건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식의 해석이 정상이라고 판단한 겁니까?”
“저는 그렇게 판단을 했구요. 제가 그렇게 판단한 것에 대해 지금 이렇게 화내신다고 제가 의견을 바꿀 것도 아니구요. 그러니까 저한테 그렇게 흥분하실 필요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정 제 수사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수사심의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하시면 그쪽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수사심의위원회요?”
교수가 처음 듣는 단어에 잠시 주춤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네. 경찰뿐만이 아니라 법조인이나 일반인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라는 곳이 있어서 저의 수사 사안에 대해 불만족하시는 경우, 그쪽에 올려 회의를 통해 다수결로 그것이 합당한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하도록 하는 기구입니다. 그쪽으로 이의신청을 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수는 이미 그가 준비했다는 투의 말투에서 그 수사심의위원회라는 것이 검찰에서는 하는 항소나 법원에서 하는 제정신청처럼 그들이 제도상으로만 만들어두고 결국 자신들이 저지른 비리와 부정을 공식적으로 덮는 것으로 사용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럼 하나 물읍시다. 만약 지금 서울경찰청 수사 심의계에서 내린 결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불만이 있을 경우 그런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안내해야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당신이 보내온 문건 어디에도 그런 이의신청에 대한 안내는 없습니다.”
“네?”
느기작거리던 정 경사라는 경찰은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교수의 반격에 사례가 걸린 사람처럼 켁켁거리며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내 설명이 틀리나요?”
“켁켁! 아니 그게... 저어...”
“네. 천천히 설명해보세요. 물 한 잔 드시고...”
이번에 교수가 그의 방금 전 행동을 비꼬듯이 느기작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민원인께서 말씀하신 게 맞는 말씀이긴 한데...”
“한데...?”
교수가 그의 말꼬리를 되물으며 추궁했다.
“죄송합니다.”
“죄송? 이렇게 뜬금없이 갑자기?”
“제가 그 부분에 대한 안내고지를 제대로 문건으로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럼 법령 내지는 지침을 어긴 거네요?”
교수가 찌른 칼을 돌리며 그의 불편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그건...”
“왜 그런 거지요?”
그런데 통화 중에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뭐라고 두런거리며 말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듯하더니 정 경사의 태도가 좀 전과 또 달라졌다.
“죄송한 건 사실이지만, 그게 이렇게 지적당할 만한 법령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놓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교수가 발끈 언성을 높이자 그가 움찔하는 것 같더니 다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 힘이라도 쓰는 듯 울상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정작 그렇게 말하라고 코치하던 옆의 사람도 함께 움찔한 듯했다.
“그러면 내가 지금 이 절차상의 문제를 감찰부서에 문제 삼아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네? 감찰이요? 이미 감찰에도 이 문제를 제기하신 걸로.... 아!”
“그걸 어떻게 알죠? 나는 수사이의제기만을 한 상태인데? 경찰이 감찰을 요구한 민원인의 신분이나 사안을 서로 공유까지 한다는 걸 지금 나한테 커밍아웃하는 건가요?”
“아니, 그게 저어......”
“정말 이따위로 바닥까지 보여줄 겁니까?”
“아니, 또 무슨 말씀을 그렇게까지 거칠게...”
“당신 지금 나랑 장난해? 도대체 얼마까지 일을 이렇게 조작하면서 당신네 조직을 지키겠다고 생쇼를 하는 거야?”
갑자기 전화기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호통을 치는 교수의 말에 정 경사가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정적이 흘렀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수사심의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처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봐요.”
뚜뚜뚜---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