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역습 -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16
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교수는 사무장의 신랄한 현실 분석을 듣고 나서 항고할 수 있는 기간의 마지막 날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일단 최대한 검사 출신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항고 이유서와 항고장을 제출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 뜨거운 2020년의 7월 땡볕 아래에 직접 중앙지검까지 가서 항고장을 접수하고 나오는데 교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용인 동북 경찰서라고 전화가 왔었어요.”
“용인에서? 무슨 일로?”
교수는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당신을 명예훼손으로 목사가 고소했다고 조사를 나오라고 연락했대요.”
“뭐?”
교수가 막 차문을 열고 차에 오르다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명예훼손?”
“네. 전화번호 문자로 넣었으니까 바로 전화해서 알아봐요.”
“알았어.”
“괜찮은 거죠? 이거?”
“응. 별일 아냐. 명예훼손 같은 거 성립할 리도 없고.... 내가 전화 걸어 보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 끊자.”
전화를 끊고 잠시 호흡을 내쉬며 교수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명예훼손?’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아내가 보내준 메시지의 담당 형사 이호태 경사라는 이름을 보며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명예훼손 건으로 전화 주셨다고 들었는데, 이호태 경사신가요?”
“아, 네. 제가 전화드렸는데요. 추 웅기 씨라고 아시지요? 그분이 명예훼손으로 선생님을 고소하셨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받으러 오셔야 하는데 일정을 좀 잡으려구요.”
“정확하게 무슨 명예훼손이라는 겁니까?”
“일단 오시면 상세히 알려드릴 건데요. 자신의 명예와 관련된 사안을 교단에 알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입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저도 할 말이 많으니 최대한 빨리 일정을 잡아주시겠습니까? 바로 처리하고 싶어서요.”
“네. 그래 주시면 저야 편하죠. 그러면 어디 보자. 다음 주 금요일 괜찮으실까요?”
“그게 가장 빠른 일정인가요?”
“네. 저도 다른 사건들이 좀 많아서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금요일 몇 시까지 가면 되나요?”
“네. 오전 10시 반에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긴 어딘지 아시죠?”
“그런데, 집이 강남인데 굳이 용인 동북 경찰서까지 가야 합니까? 이첩해주실 수 없나요?”
“아, 그게 안 되는 건 아닌데, 제가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귀찮아져서요. 어차피 주소지가 지금 실거주하시는 강남이 아니라 용인으로 되어 있으시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냥 한번 나오시죠. 뭐 대단한 건도 아니고 보니까 이게 명예훼손이 성립되나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긴 해서요. 다음 주에 짧게 끝날 것 같으니까 한번 들러주시죠.”
이 경사의 시원시원한 제안에 교수 역시 어차피 불쾌한 경찰서 방문인데 빨리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긁어 부스럼이라고 생각했던 교수는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의 시작이며,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는 일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가기 전에 주말에 우연히 만난 동문 모임에서 판사를 25년간 하다가 대형 로펌으로 변호사 일을 시작한 선배를 축하하는 동문 모임이 있었다. 차를 마시던 중에 오랜만의 선배와의 대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현직에서 바로 나온 이른바 전관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부장판사 출신 선배에게 이 건을 물었다.
“아! 정말 악질을 만났구나!”
선배의 첫마디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듯 촌철살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형이 보기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으음. 사실 처음 고소할 때부터 검사 출신 변호사가 붙어서 아주 압박을 했으면 더 깔끔하긴 했겠지만, 지금 경찰애들이 하는 짓이 워낙 구정물이다 보니 아마도 손이 탄 것 같네. 항고한 건 기대를 많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변호사가 계속 귀찮게 굴던가 검사랑 아는 사이가 아니고서 항고가 먹힐 가능성이란 거의 없는 게 지금의 대한민국 법조계 현실이니까...”
“그 얘기는 여러 변호사들에게 이미 들었어요.”
교수가 맥이 빠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아까 말한 명예훼손은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건이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말고 경찰서에 가서 진술할 때 확실하게 말해. 교단에 정식으로 연락했더니 지역 노회를 연결해준 거고, 그 사람을 비난한 것도 아니고 진상에 대해서 조사해서 그게 사실이면 다시는 일반인들에게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징계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지 명백한 명예훼손 조각사유에 해당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제보’에 해당한다고. 뭐 내가 설명 안 해도 그 정도야 너도 잘 알겠지만...”
“모르겠어요, 이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법률적인 기본도 이렇게 다 뭉개고 다 바꿔버리는 지경에 이르니까 뭐가 맞는 것인지조차 혼란스러워졌어요.”
“뭐, 사실이 그래. 나도 평생 법원에 있다가 이제 옷 벗고 나왔지만, 이게 평생 판사 짓을 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법원에서 벌어지는 게 법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 판사인 내 입장에서도 어이없는 짓들이 경찰에서부터 검찰에까지 쫙 퍼져서 아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고 다니니 그렇다고 나 혼자 독야청청하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 그것도 사회생활이라고 위에서 전화 오거나 아는 녀석들이라고 연락이 오거나 대놓고 자리를 만들어서 청탁이 아닌 것처럼 다 친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은 안부 전하듯이 툭 던져서 들어오면 어제까지 같이 술 먹고 놀고 가족끼리 휴가까지 갔는데 그 변호사 애가 우리 가족 분까지 다 부담해서 놀러 갔다 왔는데 갑자기 쌩깔 수도 없는 거고...”
“아니, 처음부터 그런 거 안 받고 그런 거에 안 엮이면 안 돼요?”
“야야! 너처럼 고지식하게 하면 내가 판사 짓을 25년은 고사하고 3년도 못하고 저기 향판으로 밀려나서 영영 수도권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했을 거다. 그나마 법원은 아직까지는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꽉 잡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나마도 혼자서 독야청청하겠다고 튀는 순간, 동문이고 후배고 그냥 아웃이야. 에휴! 하긴 넌 학교에만 있으니 알 리가 있냐! 그러니까 형이 늘 말하지 않던 법대가 밥대라고. 왜 버젓이 법 공부한 놈이 전공을 바꿔 학교에 남겠다고 해서 그 험한 길을 가냐, 가길!”
“에휴!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는 새삼스럽게 해 봐야 뭐해요.”
“야! 니가 그냥 그대로 사시 패스하고 이 길을 걸었으면 그런 쓰레기들한테 이런 꼴을 당할 일이 있었겠냐?”
선배의 농담 같은 한 마디가 교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하여간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늘 말하는 거 있잖냐. 재판에 가기 전에 모든 사안은 이미 결정 나있는 거야. 재판으로 결정 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게 이 대한민국이란다.”
“에휴! 듣고 나니 더 갑갑하네요. 일단 다음 주 경찰서에 가서 명예훼손 건부터 마감하고 그놈을 어떻게 조질지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냥 미친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하고 얼른 정리하고 그냥 잊어버려. 아니면 형이 동북 경찰서에 전화라도 넣어줄까?”
“그럴 거면 내가 벌써 검사라인에 아는 애들 있는지 해서 전화 넣었지 지금 이렇게 항고해놓고 어이없이 기다리고 있겠어요?”
“하긴! 야! 그렇게 좋은 별장 있으면 그냥 형한테 싼 값에 팔아! 그렇지 않아도 이제 옷 벗고 나와서 조금 여유 있게 좀 지내보려고 하는데...”
“전관 내밀고 수백억 챙기실 분이 그런 쪼그만 별장은 뭐하러 욕심을 내요. 어디 제주도 같은데 큰 빌라급 별장은 사셔야지.”
“하하하! 그런가?”
그렇게 모임을 끝내고 오면서 교수는 내내 마음이 안 좋았다. 만약 자신이 법조계에 남아서 그들의 위치였다면 그런 사이비 목사나 강북 끝자락 시골 같은 경찰서에서 사건을 덮어주고 키득거리는 경찰 놈들의 모가지를 한 번에 비틀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몇 번이고 피가 날 정도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다음 주 약속했던 금요일에 교수는 용인 동북 경찰서를 찾았다. 오전이어서였는지 주차장에 차들이 제법 꽉 차있었다. 차를 세우고 약속된 시간 10분 전에 그는 신분증을 맡기고 조사를 받으러 왔다고 담당 형사를 찾았다. 종이컵에 커피를 놓고 복도에서 다른 여자 경찰과 노닥거리던 어려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보고는 교수를 맞았다.
“아! 명예훼손 건 때문에 오셨죠?”
“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그렇게 시작된 진술은 지루한 조서 꾸미기로 두어 시간이나 잡아먹었다. 내용도 별 것 없었다. 교수는 사실대로 자신이 아는 부분에 대해서 진술했다. 경찰이 넘기는 서류를 보니 고소인의 진술조서와 고소장에 법무법인의 인장이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추 목사가 고용한 변호인이 동석하여 작성한 고소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현역 목사가 일반인을 향해 저주의 기도라는 것을 했다는 것과 말다툼 중에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돌이 갓 지난 자기 아기를 들고 나와 던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 사람이 정말로 정식 교단에 속해있는 목사인지를 확인하고자 했고, 그 목적과 연락을 해서 이야기한 것은 그가 다시는 다른 일반인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없게 진상조사를 해서 사실이라면 그 부분에 응당한 조치를 해달라는 것이 다였습니다.”
진술을 마치며 교수가 일목요연하게 결론까지 정리하자 담당 형사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뭐가 문제가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당시 녹취와 이 사실에 대해서 인정한 중양서 초동 수사관의 수사보고서를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그건 어차피 지금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이 되어 종결이 되었고, 저희 명예훼손과 그건 아무런 상관도 없거든요.”
“그게 원인행위인데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는다구요?”
“네. 법을 공부하신 분이라니까 더 잘 아시겠지만, 이 고소건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하여, 고소인 측에서도 말씀하신 내용이 사실이라는 점은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 사실이긴 하지만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취지입니다.”
“하아! 이 경사님도 아시겠지만, 최근에 법조계에서 사실관계로 인한 명예훼손은 형사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져 심지어 헌법재판소에서 회부되었고, 헌법재판소에서도 한 명 차이로 겨우 유지된 법령 아닙니까? 게다가 지금 이건 명백하게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했다는 것이 명백한 건 아닙니까?”
교수가 흥분하며 언성이 높아졌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저는 그냥 일개 경찰이라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최근에 있었다는 헌법재판소의 이슈까지는 잘 모르구요. 하지만 말씀하시는 내용의 취지는 이해했습니다.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더 수사해보고 판단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는 그 어린 경사의 건방진 말투에서 울컥했지만, 경찰서를 오기 전에 아내의 조언이 떠올라 속을 삭여야만 했다.
‘당신이 법을 공부했고, 모두 다 아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난번에 강남 경찰서에서도 그렇고 당신의 말이 다 맞는 건 사실인데, 경찰이라는 족속들이 경찰서, 그러니까 자기 구역에서는 왕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데, 당신이 논리적으로 그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니까 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당신에게 반감을 갖고 자꾸 일이 꼬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번에 가서는 그냥 최대한 억울하다는 걸 피력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무식하고 돈 바라는 경찰애들을 조지고 혼낸다고 해서 걔들이 반성하고 달라질 것도 아닌데 당신이 그렇게까지 해서 불이익만 당하면 정말 바보 같은 거잖아요.’
이른바 뼈 때리는 조언이었다. 아내의 말이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었기에 교수는 그날은 자신의 성격을 반의 반으로 줄이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한 터였다.
“자기가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를 저지르고서도 변호사를 사서 무혐의로 빠져나온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 도리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는 건, 유추해보건대, 아마 자신이 지금 속해 있는 정식 자기 교단도 아닌 그저 회원으로 돈을 내고 등재되어 있는 곳에서 낙인이 찍혀 퇴출될까 봐 두려운 나머지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형사님이 오늘 제 설명을 충분히 들으셨고 이해하신 것 같으니 최대한 조속히 이 문제를 정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의 기준에서 최대한 숙인다고 부탁의 전언을 남기는 방식으로 교수는 그날의 조사를 마치고 찜찜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