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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 – 48

두 번째 고소(아동학대 재수사) - 1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180


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발검 무적이 다시 상처 난 곳에 소금을 한 움큼 뿌리듯 확인사살에 나섰다.


“만약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면, 수사한 경찰의 잘못이 명백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건... 그러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 경감이 급소를 제대로 맞아 악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어버어버 더듬거렸다.


“직무유기도 엄연한 범법입니다. 아닙니까?”


“그걸 직무유기라고까지....”


안 경감이 뭐라 반발하려 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지금 상태라면 계속 뭔가 항변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이 말을 내뱉고 나서야 들었기 때문이었다.


“직무유기의 범위가 있나요?”


“아닙니다. 그것 역시 수사를 통해 확인할 부분이지, 지금 뭐라고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른 그녀는 수위를 조절하며 애매모호한 이것도 아닌 저것도 아닌 그간 사무실 근무를 하며 보아왔던 닳고 닳은 선배들의 신공(神功)을 따라 하기로 했다. 대개 이 신공은 최소한 이기는 못할지언정 지지는 않는 이른바 평행선을 유지하기에 딱 좋은 기술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바로 연이어 나오는 질문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이제까지와는 다를지도 모를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문득 들었다.


“네?”


“직무유기 인지도 수사를 해봐야 안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조사를 하신다구요? 아까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그 말은 철회한다는 걸로 이해하면 됩니까?”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니고, 검찰의 결과도 지켜보되 저희도 나름대로 조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조사를 어떻게 진행한다는 거죠?”


“자꾸 그렇게 트집 잡듯이 하나하나 물고 늘어지시면....”


“그게 아니라, 지금 수사 자료는 모두 검찰에 송치한 상태잖아요?”


그는 맥락을 확실하게 읽고 있었다. 수사자료를 2부 3부 카피하지 않는 이상 검찰에 송치한 원본 자료 외의 자료랄 것이 자신들의 수중에 없다는 점까지 그는 꿰뚫고 있었다.


“그건 그렇지만, 다른 당사자 조사도 있을 수 있고....”


“이것 보세요. 안 경감. 내가 임 경위라는 사람이 닳고 닳아서 원래 그런 자인 줄은 알겠어요. 그래서 최소한 그 상관은 정상일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안 팀장에게 연락해달라고 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임 경위와 똑같이, 자료도 없으니 우리는 그냥 수사하는 시늉만 내면서 눈먼 검찰에서 이 사안에 대해 크게 트집을 잡지 않고 그냥 끝내주기를 기대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경찰로서 창피하지 않습니까?”


“으음....”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 대신 묵직한 신음 같은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지적이 사실관계를 근거에 두고 검찰에 모두 송치된 자료를 우리가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는 가져와야 하는데 현행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그렇고 수사이의제기팀에서 정말로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잡아내서 같은 경찰을 징계하거나 문제를 삼은 점이 없다는 사실마저도 그는 모두 꿰뚫고 있는 듯 말하고 있었다.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경찰이 초동수사를 하면서 고소장에 적시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이 그냥 다른 죄로 의율 적용을 해서는 무혐의 처분해줬어요. 그걸 검찰에서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도장 찍어주기만을 기다려보자는 게, 그게 지금 서울경찰청의 수사이의제기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곳의 팀장이 할 말입니까?”


“.....”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전해 들은 대로 이 사람이 모든 통화를 녹취한다면 나중에 자신까지 문제 삼았을 경우, 경찰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해서 이 상황을 무마해야만 한다고 그녀의 본능이 계속해서 세포들에게 외쳐댔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제가 팀장이니까,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공정하게 수사를 진행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저를 믿고 조금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되는대로 주절거리기는 했지만, 내뱉고 나니 어이가 없기 그지없는 황당한 헛소리라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상대는 가만히 대꾸를 하지 않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내가 지금 상태에서 더 다그친다고 한들, 뾰족한 뭔가 대안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 팀장의 상관인 계장을 불러내서 전화한다고 한들, 지금 이상의 대화가 진전될 것 같지도 않아서 무의미한 대화를 더 할 필요가 있나 싶어 할 말이 없네요. 경찰청의 수사이의제기팀이라는 것이 단순 민원처리반이 아니잖아요.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제기를 한 것에 대해 제대로 다시 수사하는 곳 아니던가요?”


“그게 사실은....”


“사실은...?”


“저희 부서에서는 수사 자체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습니다. 해당 수사관의 수사과정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 혹여 금품 향응 수수라던가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사가 되었다던가 하는 과정상의 흠결을 확인하는 곳이지, 수사가 정당했는지 제대로 법적용을 했는지 등의 수사에 대한 부분은 수사관의 독립권을 인정해준다는 차원에서...”


“이것 보세요. 말 중간에 끊어서 미안합니다만, 멋있어 보이는 말이긴 한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묻습니다. 고소한 피의사실에 대한 범죄에 대해 갑자기 다른 죄명을 언급하며 그 죄에 대해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의율 적용을 멋대로 바꿔서 무혐의 처분하는 ‘수법’이 수사과정상의 심각한 흠결이 아닙니까?”


“으음....”


두 번째 묵직한 신음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이 그는 정신없이 후려쳐왔다. 그 말이 이상하거나 논리에 어긋나면 트집이라도 잡아보겠는데, 지금 이 사안의 경우는 명백한 잘못이 맞았다.


그런데 여기서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정말로 초동 수사관의 수사가 잘못된 것을 경찰이 인정하고 검찰에도 보고하고 다시 결제 라인에 있었던 경찰 선배들이 모두 연루되어 ‘인사고과’에 흠집을 받게 된다. 이건 일종의 도미노와 같은 것이었다. 도저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할 용기가 그녀에게는 솟아나지 않았다.


“그 침묵으로 무슨 소리인지 다 알아들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몰아세우는 것 같아서 말은 그만합니다. 다만, 그 썩어빠진 임 경위보다는 그래도 이제 간부로 성장해나갈 임 경감을 믿고 부탁합니다. 조직의 잘못을 빤히 알고서도 타성에 젖어서 바른말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조직은 완전히 썩어버려 나중에 손도 대지 못할 지경으로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그전에 누군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중간에 끊고 바로잡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비록 이제까지 내 평생에 제대로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올바른 정신머리를 가진 경찰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안 경감이 그 첫 번째 경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정말로 경찰 안에서 이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본래 그 부서의 팀에서 해야 할 일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이 사안에 대해서는 임 수사관의 수사과정도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발검 무적은 쓴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과연 그녀가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그녀의 양심이 움직여서 정말로 잘못을 바로 잡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서울경찰청의 수사이의제기팀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되었다는 연락이 오자마자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이 임 주선 경위에게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보건대 수사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수사 종결함.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수사결과 통지서를 우편으로 발송해드릴 예정입니다.


일말의 기대는 어김없이 크나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치부를 들췄음에도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덮고 뭉개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결론을 택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도착한 임주선 경위가 작성한 수사결과 통지서는 그 실망감을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발검 무적의 분노에 기름통을 가져다 붓는 결과를 자아냈다.


A4 한 장 분량에서 3분의 2도 채우지 못한 그 같잖은 변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본 수사과정을 조사한 결과 특별한 과오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그 짧은 몇 개 안 되는 문단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었다.


해당 경찰서의 담당 수사관이 의율 적용을 잘못한 과오가 발생하여 그에 대해 경고 조치하였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응? 뭐라?”


발검 무적이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음의 감탄사를 입밖에 터트렸다.


아무리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순경에서 출발한 경찰 출신이라 하더라도, 소위 서울경찰청의 수사이의제기팀에서 경위라는 직급을 달기까지는 그래도 중간은 된다라고 자기 스스로 자부하며 거들먹거리고 다닐,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그의 상판대기가 떠올랐다.


‘수사결과 보고서’도 엄연한 공문이다. 판사들이 판결문을 쓸 때 맞춤법이 틀리고 비문이 남발하는 것도 한심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사법고시를 패스했답시고 그들은 앞 문단에서 무죄를 선고하고서 결론의 문단에서 그래도 잘못이 인정되니까 벌을 준다는 자기모순적인 판결문을 쓰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건 문서이기 때문에 증거가 남는다. 두고두고 문제 삼을 수 있는 증거물이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문서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발검 무적은 잠시 대여섯 번을 낭독까지 해가며 어떤 식으로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했다.


‘특별한 과오’는 없는데, 잘못된 과오가 인정되어 경고조치를 했다고?


그들이 말하는 ‘특별한 과오’란 형사처벌에 해당하는 직무유기까지 말하는 것인가? 발검 무적의 법적 상식에도 그렇고 모든 법률전문가들이 보더라도, 아니 그냥 일반인이 보더라도 고소장에 적시된 죄에 대해서 수사해달라고 했더니 다른 죄를 들먹이며 다른 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무혐의 처분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했다.


직무유기는 범죄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검찰이 모르고 넘어가 주자마자 잘못된 과오가 인정되어 경고조치를 했다며 결론을 지었다.


특별한 과오인지 평범한 과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과오라고 인정했다면, 게다가 임주선 경위라는 그 무식한 경찰이 적시한 내용처럼 경고조치를 할 정도의 과오라면 그 과오를 바로잡아야 옳지 않은가? 그 과오는 의율 적용을 잘못한 과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되지도 않는 똥 싸서 뭉개는 논리를 그나마 정리해보자면, ‘의율 적용을 잘못한 과오가 있다.’라고 그의 문건에는 명시가 되어 있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개인정보 활용에 의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한 사실에 대해 죄를 수사하거나 적용하지 않고 모욕죄에 대해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혐의 처분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소장에 적시된 죄는 검토되지 않았다. 세상에 고소를 했는데 그 고소한 죄명에 대해서 수사하지 않은 과오가 인정된다고 하면서 경고 조치하는 것으로 넘어간다는 것이 말이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누가 그 죄를 물을 수 있단 말인가?


불과 4년 전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을 녹취파일과 함께 데이터 베이스에 정리하여 올린 스승 발검 무적의 글을 읽으며 김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초동 수사관의 초동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수사이의를 제기한, 이제는 이름만 바뀐 수사 심의계라는 곳에서 담당이라고 보내온 자의 이름이 바로 그 사건을 뭉개고 덮는데 앞장섰던 썩어빠진 경찰 ‘임 주선 경위’였던 것이다.


스승은 그와의 첫 통화 녹취를 데이터 베이스에 올린 김 교수의 글과 전화 녹취내용을 확인하자마자 4년 전의 그 악연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던 그 작자의 이름을 바로 떠올리고는 그와의 악연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김 교수에게 공유해주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썩은 자가 4년간 그 부서의 이름이 바뀔 시간까지 거들먹거리며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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