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소(아동학대 재수사) - 10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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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메시지가 도착한 후 그는 한참이나 있다가 늘 그들이 하는 행태대로 전화를 한통 걸어왔다. 자신이 담당이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려고 신중하게(?) 수사를 하고 있다는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다. 발검 무적은 처음 온 그 전화에도 매뉴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려나 보다 하는 생각에 신중하게 종로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30여분에 걸쳐서 그에게 설명을 하였다.
나중을 생각해보면 정작 그 임 경위라는 작자는 대강 자신이 담당이라고 고지했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고 매뉴얼에 따라 전화를 짧게 하고 끊으려고 했다가 졸지에 종로 경찰서에서 일어난, 누가 들어도 어이가 없는 일을 듣고서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그의 고민은 간단했다.
‘어떻게 우리 조직원(?)의 잘못을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덮어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발검 무적은 경찰청에서 수사이의제기 전담팀이라는 것이 그저 민원을 무마시키기 위한 부서가 아니라 정말로 잘못된 수사에 대해서 바로잡기 위해 있는 정의로운 경찰 조직의 하나일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종로 경찰서의 수사과장까지 통화했다는 내용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는지 그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수사해달라고 하자, 그 강경함과 명백한 증거에 부담을 느낀 임 경위가 하지 말아야 할 대꾸를 내뱉고 말았다.
“선생님. 말씀은 다 알겠는데요. 지금 검찰에 송치되었으니 검찰의 결과를 좀 기다려보시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발검 무적의 혈압치는 순간 최고치를 쳤다.
“뭐라구요?”
“아니, 검찰에 송치가 된 상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면 검찰에서 재수사를 요청하거나 하지 않겠습니까?”
어이가 없었다.
“이봐요. 수사이의제기팀에 수사이의를 제기하는 것에 원칙은 없다고 경찰청 간부 제자를 통해서 설명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나는 지금 송치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수사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통상 수사가 진행 중일 때에 수사이의를 제기하면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니까 기다리라고 하고, 수사가 끝났다는 것은 당연히 송치했음을 의미하는 건데 송치하고 나서는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보자고 또 뭉개고, 송치되어서 불기소로 결론이 나오면 검찰에서 뭐라고 시비를 걸지 않고 그 잘못을 잡아내지 않았으니 넘어가자고 하고, 그러면 그 부서는 뭐하러 존재하는 겁니까?”
“그게, 그러니까....”
발검 무적의 지적에 임 경위는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경찰청 내부의 과정과 상황을 논리 정연하게 집어내면서 문제를 지적하는 민원인은 자신이 이제까지 이 자리에 기어 올라오면서 단 한 명도 만난 일이 없었기에 더 당혹스러웠다.
“검찰의 결정을 기다리는 거면, 재수사하라고 명령이 내려오면 그 수사를 잘못한 책임을 어떻게 물을 건가요? 초동 수사관에게?”
“네? 아니, 그게, 그러니까....”
딱히 대꾸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대개 무작정 자신의 감정에 휘말려 항의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수사이의제기팀이라는 것은 일종의 민원업무였고 적당히 법령을 핑계 대거나 검찰을 핑계 대거나 그것도 아니면 민원인의 법적 무지를 가르치듯 지적하면서 적당히 경찰 조직원(?)들이 다치지 않게 하면 그뿐인 아주 중요한 부서에 해당했다.
임 경위는 그 꿀보직 부서에 올라오기 위해 간도 쓸개도 다 내놓고 경찰 조직원들의 털끝 하나 문제 삼지 않게 한 것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그 자리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터였는데 발검 무적은 그의 논리적인 약점을 매섭게 파고들어 왔다.
“왜 대답을 못해요? 검찰에서 판단하는 것에 따라서 움직일 거면 경찰청 안에 수사이의제기팀은 뭐하러 있습니까?”
“그러니까, 있을 만하니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자신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궤변을 토해놓고 나니 귓볼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것 봐요.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그렇지 그걸 지금 대답이라고 말하는 겁니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그리고 이제 수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수사를 진행해보지도 않았는데 그걸 뭐라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절차를 끌어오면 대부분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민원인들을 고개를 갸웃하며 알겠다고 꼬리를 내렸다. 무엇보다 수사를 한다는 입장에서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민원인들은 자신에게 함부로 이렇게 회초리를 들고 무섭게 일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 경위는 자신이 처음 만나는 상대가 이제까지 자신이 만나보지도 못했던 다른 세상의 레벨이라는 점을 그 작은 뇌로는 인지하지도 못한 듯했다.
“말 잘했습니다. 수사를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으면서 민원인에게 검찰에 넘어갔으니 그 결과를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한 게 당신, 아닙니까?”
“네? 그러니까 그게...”
“하나 물어봅시다.”
당황해하는 그를 살려주듯 발검 무적이 가볍게 물었다.
“네. 물어보세요.”
“그 부서에서는 당신만 이렇게 썩어 문드러진 겁니까? 아니면 부서 전체의 경찰들이 다 당신처럼 이따위로 사건을 뭉갤 작정으로 그따위로 굽니까?”
“네? 뭉개다니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당신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 지금 당신이 입 밖으로 뱉은 말들이 정상인지!”
빽 일갈을 내지르는 상대의 기백에 임 경위가 뭐라고 제대로 대꾸도 하지 못하며 정적이 몇 초간 흘렀다.
“할 말 다하셨으면 전화 끊겠습니다.”
“만약 지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면 당신 상관에게 방금 우리 통화 녹취를 근거로 당신의 징계를 요구하겠습니다.”
‘이런 씨이~’
하마터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
전화를 끊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보여준 언행을 감안하건대 전화를 녹취한 것을 근거로 자신의 징계를 충분히 요구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본능적인 위기감이 온몸을 휘감아 들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수사하겠다고 하잖아요.”
이젠 거의 애원하듯 임 경위가 발검 무적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됐고. 당신이 어떤 의도인지는 충분히 들었습니다. 당신의 상관이 누굽니까?”
“네? 녹취는 동의도 하지 않았는데, 왜 통화를 마음대로 녹취를 하시고, 상관은 또 왜 찾으십니까?”
“대한민국 법에 의거하여, 대화 당사자가 자신의 대화를 녹취하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법적인 증거로 효력을 갖는다. 현역 경찰이, 그것도 수사이의 제기팀에 있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릅니까?”
“아니, 아휴....”
뭐라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한 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회초리를 휘두르는 상대에게 임 경위는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수사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니 그쪽 부서의 상관이라는 사람이 당신과 똑같은 사람인지 한번 내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네?”
“이대로 맡기면 아까 했던 짓대로 할 거 아닙니까?”
“하아!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도대체?”
“왜 이러는지 지금 녹취한 거 들고 서울경찰청 사무실에서 당신 상관이랑 셋이 만나서 녹취 들어볼까요?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
“......”
도저히 말을 꺼낼 수 없는 지경이라고 임 경위는 판단했다. 이제까지 자신이 민원인들을 자유자재로 겁주고 휘두르고 정리했던 것을 무용담이랍시고 주변 후배들에게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낄낄거리며 했던 농담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상관이랑 통화하게 바꿔주세요.”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일단 무조건 막고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그러면 상관의 직위, 이름,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내가 직접 전화하지요.”
“하아! 그러지 마시고, 지금 자리에 안 계시니까 돌아오시는 대로 제가 전화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되시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퇴근 전에는 자리에 돌아오겠지요?”
어차피 자리에 있는 나이 어린 간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오늘을 넘기고 버틸 수 없다는 것은 체념해야만 했다.
“네. 자리에 돌아오시는 대로 연락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전화는 오지 않았다. 퇴근시간인 6시를 넘길 즈음에 이제 유치원 아이의 엄마 정도 되었음직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서울경찰청 수사 이의 제기 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안소진 경감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희 수사관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셨다고 연락을 받고 이제야 연락드립니다. 너무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바쁘신데 이렇게 연락 주신 것만도 감사할 일이지요.”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은데, 저희 수사관이 워낙 노련한 분이라 우려하시는 일은 없으실 테니 수사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예의를 갖춰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여자 경감의 말에 발검 무적이 조금 고민하다가 바로 그녀를 떠봤다.
“임 주선 경위의 이야기만 들으셨을 텐데, 저에게 어떤 일이냐고 묻지를 않고 그냥 결론을 이야기하시는군요?”
“네?”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해서 내가 팀장님을 찾았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들어봐야 할 텐데 자기 부하의 이야기만 듣고 나서 마치 내가 뭔가 오해를 했다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이.... 원래 이야기는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하지 않나요, 특히 시비 판단을 해야 하는 경찰이라면?”
임 경위에게 보통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무가내도 아니고 이렇게 논리적으로 치고 나오니 딱히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고 팀장은 바짝 긴장하며 다시 물었다.
“듣고 보니 그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셨는지 들어봐도 될까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팀장님도 경찰대 나와서 지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몇 년간이나 수사도 하고 지휘도 해보셨을 텐데, 고소장에 사이버 명예훼손이라고 적시하고 다른 사람의 실명을 댓글에 써서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행위를 개인정보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고소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뜬금없이 모욕죄로 의율 적용하여 그게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으니 무혐의 처분하겠다,라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 수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네? 아니, 그게....”
대강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황당한 수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보고는 제대로 듣지 못했던 터였다. 허를 찔렸다는 생각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이 핀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상대는 그럴 여유도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려운 질문인가요? 바꿔 질문할까요? 사기죄로 고소했는데 강간죄에는 해당하지 않으니 무혐의 처분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정도면 될까요?”
“아,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사안이 정말로 그런지 어떤지를...”
“그래서 그걸 확인해달라고 수사이의제기를 했더니, 임 주선 경위라는 자가 아까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검찰에 송치했으니 검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합니다. 그건 말이 되는 얘깁니까?”
“그게, 그러니까.... 아무래도 검찰에서도 그 사안을 처리하고 의견을 낼 테니 그쪽의 의견을 우선시하라는 것이 저희 수사 처리과정의 매뉴얼이기도 하고....”
“매뉴얼이요? 하! 하나 묻죠. 수사이의제기는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하면 수사를 잘못한 수사관도 면죄부를 받습니까?”
“네?”
정말로 아프고 아픈 급소를 제대로 맞으면 ‘악’ 소리조차 못하고 사람이 쓰러지게 되어 있다. 안 경감은 지금 그럼 경험을 경찰대에서 가장 악랄하다는 형사소송법 교수 이후에 처음 당하고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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