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子路)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실행하지 못했으면 행여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이 장은, 누가 한 말인지도 언급되어 있지 않고 그저 툭 던지듯 자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다. 자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스승을 만났으며, 어떤 허망한 죽음을 맞아 스승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공부한 바 있다.
자로가 주먹을 꽤나 쓰는 다혈질의 인물인 것은 맞지만, 당신이 만화 삼국지에서 봤던 단순 무식한 장비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지난번에도 교정해준 바 있다. 자로가 아무리 단순 과격한 단무지였다 하더라도 명색이 공자를 측근에서 모신 제자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단순히 수행하는 경호원이 아닌, 제자였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아무리 든든한 건달 경호원이 필요했다고 해서 수준이 안 되는 자를 그의 곁에 둘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그의 성취했던 레벨을 보여주는, 왜 공자가 그를 그렇게 가까이에 두며 높이 평가했는지, 그 근거를 알 수 있는 장이 바로 이 장의 핵심 되시겠다.
주자는 이 장의 내용을 이렇게 해석한다.
“전에 들은 것을 이미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들음이 있어 그것을 실행함에 충분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스승에게 어떤 가르침을 듣고 나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였는데, 또 새로운 가르침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였다’는 것이다. 방점은 두려워하였다는 단어에 있다. 그 주체가 자로였다는 것이 방점의 의미이고 강조의 의도가 담겨 있는 단어라 하겠다.
자로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한 주먹 하는, 결코 누구에게도 져본 일이 없는 건달 출신이었다. 배운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거나 부끄러워할 수는 있어도, 세상천지 두려울 것이라고는 없던 자로가 그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범씨(范祖佑)가 지금 내가 새기는 내용을 풀어 이 장의 대의를 이렇게 정리해준다.
“자로(子路)는 좋은 말을 들으면 반드시 실행하는 데 용감하니, 문인들이 스스로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이것을 기록한 것이다. 자로(子路)와 같다면 그 용맹함을 잘 썼다고 말할 만하다.”
이 말을 한 것이 공자였는지, 아니면 앞서 계속 다른 사람을 평가했던 자공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논어>의 한 장으로 버젓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는 모든 자들이 자로의 그 거짓 없는 배움에의 자세를 통해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내용에 다름 아니다.
격한 운동을 오래 하고 어느 정도 레벨 이상이 되어 남을 가르치는 수준에 오르고 보면, 몸으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운동하는 이들을 접하면, 운동을 하는 목적이 남을 제압하고 제 힘을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결코 수준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어 진다.
물론, 한참 제 힘자랑을 하고 싶고 그 힘을 키워 남을 제압하고 싶은 이에게 그런 가르침이 쉽게 먹힐 리가 없다.
복싱에 한참 빠져있을 때의 일이다. 관장은 세계 챔피언 출신이었다. 물론 그 역시 한창 혈기가 왕성할 때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주먹으로 모두의 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객기를 부렸었다며 겸손하게 후학들을 양성하는 관장으로 겸허하게 지내던 이였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잊지도 않고 소싯적 주먹깨나 쓰던 이들이 제대로 복싱을 배워보겠다고 도장에 와서 관장을 찾는 일이 적지 않았다. 등록하고 기초 운동부터 하라고 안내를 해주면, 늘 멘트도 똑같이 자신들은 어느 정도 기본 이상이 되는 사람이니 사범과 스파링을 통해 어느 정도 레벨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마치 도장깨기를 하러 온 녀석처럼 스파링의 결과를 보고, 그 수준에 맞춰 비전(祕傳)에 해당하는 기술을 배워 조금만 가다듬고 단련을 하려고 한다는 겸손 아닌 겸손을 떨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도 비슷한 케이스가 많다 보니 한 두 번 만류하다가 관장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글러브를 말없이 끼워줬다.
객기가 넘치는 이들은 얼굴을 가격 당할 일도 없고, 그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 마우스피스조차 필요 없다고 했다. 3분 1라운드를 끝까지 뛰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 정말로 주먹을 조금 썼던 이들은 근 30분 같은 30초 동안 등골이 서늘한 펀치가 얼굴 옆으로 쉭쉭 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주저앉거나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고 너무 오래 운동을 쉬었다며 꼬리를 내렸고, 그나마도 자신의 수준과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대부분의 양아치들은 입에서 단내와 곧 죽을 것 같은 숨을 몰아쉬며 침을 질질 흘리고 스파링인지 학살인지 모를 그것을 끝냈다.
관장은 부러 그들을 겁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강 툭툭 맞아주거나 아마추어인 그들을 대상으로 적당히 해주는 법이 결코 없었다. 나 역시 그를 단 한 번도 다운시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가 나보다 실력이 우위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그런 그에게 지금 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고, 넌지시 물었었다. 그가 대답했다.
“지금 가만히 그때 데이터들을 놓고서 생각해봐도, 세상 무서운지 몰랐던 세계 챔피언이 되었던 현역 때의 실력을 기준으로 삼아도, 저보다 위의 레벨인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세계는 넓고, 인재들은 널려 있었거든요. 그때 제 눈에만 안보였던 거지요. 그래서 지금도 매일같이 복기하며 운동합니다.”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공부하는 게 직업인 분이 뭔 운동 밥 먹는 사람처럼 하냐며 선선히 웃어주는데 그의 모습이 참 편해 보였던 기억이 난다.
몸을 쓰는 운동도 그러할진대, 학문의 세계는 어떠할 것이며, 그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수양을 필요로 하는 공자 당시의 공부는 어떠했겠는가?
공부해야 할 지식이 너무 많아지고 정보가 쏟아져 나오면서, 어느 사이엔가 Knowhow의 시대에서 Knowhere의 시대가 도래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성급해졌다. 배워야 할 것이 많고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이 나오니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아니,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리 많은 정보들이 나오고 그것을 어차피 인간이 다 담아낼 수 없음이 진작에 증명되었다. 그런데 인간이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야 할 공부는 이미 클래식이라고 하는 고전에 모두 정리되었다. 인터넷이 나오기 수천 년 전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지식과 가르침은 모두 고전에 기록되어 있단 말이다.
그것을 배우고 익히지도 않으면서 최첨단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기만 하면 인간의 삶이 인류의 미래가 과연 창창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많은 SF소설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형태로 의문을 제기하고 브레이크를 걸어왔다.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속도를 내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자로가 무식하고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 새로운 것을 배우길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외국어 하나를 공부하는 데에도 정작 오늘 배운 내용을 입에 익히고 실제 회화나 독해에서 사용하지 않고 무조건 진도를 빼고 우격다짐으로 집어넣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당신도 이미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바둥거리며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그것을 배우고 알고 있지 않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가?
하긴, 그나마 실천을 하지 못하더라도 배우려고 아등바등거리는 것은 그나마 낫다. 최근에 보아온 이들은 그나마 뭔가 배우는 것조차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저 피상적으로 핸드폰의 초록창을 두들겨서 그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검증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지식인 것처럼 떠들거나 책을 읽네 하면서 읽어도 남지 않는 사진과 그림만이 잔뜩 들어가 차 한잔 마실 정도면 다 읽어버릴 만한 폐품수집에 도움이 될 만 것을 읽거나 그나마도 읽지 않고 적당히 그 안에서 감성을 혹 건드릴만한 내용을 뽑아서는 서평이니 감상이니 써대더라.
그러지 마라, 제발.
글 한 줄을 읽더라도 무겁고 진중하게 당신의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결코 어설픈 바람이 불어도 휘청거리지 않도록 진중하게 읽어나가고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곱씹어라.
당신이 얼마나 살기에 바쁘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지는 내 모르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고 당신이 건사해야 할 당신의 가족들 삶이 아닌가?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지하철에서 생각 없이 손가락으로 올리는 웹툰이며, 미친 듯이 헛소리를 양산하는 유튜버의 자극적인 화면이란 말인가?
당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것은 결국 당신의 습관이고 당신의 생각이다.
자로가 그저 용감무쌍했다고 하지 않고, 그 용맹함을 자신의 삶에 제대로 썼다는 평가는 그런 의미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자로의 삶이 당신의 삶에 바로 오늘 경종을 울려주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