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누구에게나 물어볼 수 있는 용기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것

by 발검무적
子貢問曰: “孔文子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

자공이 “공문자(孔文子)를 어찌하여 文이라고 시호(諡號)하였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명민(明敏)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文이라 한 것이다.”

워낙 비교하여 분석하길 좋아했던 자공에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성립해야만 했다. 비교 대상에 대해 명확한 분석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자공은 또 스승에게 물었다. 공문자가 죽은 다음에 시호로 ‘文’이라는 글자를 받은 것은, 그야말로 시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에게 붙여주는 최고의 칭호였는데, 도대체 그가 어떻게 그런 대단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묻는 내용이다.


이것은 그에 대해 몰랐다는 의미보다는 의아함에 표시이다. 자공이 생각했을 때 그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을만한 것은 아니지 않냐는 완곡한 자신의 평가도 함께 담아 물은 것이다.


그 질문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스승이 대답한다. ‘똑똑하면서도 더 배우고자 했으며,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삼았다. 그 자세한 속뜻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해설해준다.

孔文子는 衛나라 대부로 이름은 圉이다. 대체로 사람은, 성품이 明敏한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자는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는 이가 많다. 그러므로 시호를 내리는 법에,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하는 행실을 ‘文’이라 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 역시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다. 孔圉가 文이라는 시호를 얻은 것은 이 때문일 뿐이다.

맞다. 공문자가 보인 행동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지 않는, 하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주자의 설명처럼 좀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자는 더 배우려 들지 않고, 지위가 높아지면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 뭘 물으려 들지 않는다. 그것이 부끄러운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상황에는 변함이 없다. 바라보며 운치를 논하던 달에, 우주에 직접 날아가는 세상이 되었어도 사람의 머릿속은 어쩌면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던가 보다. 만약 공자가 주자가 뒷문단에서 다시 해석했던 것처럼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했다’ 고만했다면 어려웠을 것을 꼭 짚어서, ‘명민함에도’, ‘자신의 신분이 높았음에도’라는 말을 넣은 것은 단순한 설명 차원이 아닌 꼭 짚어 설명하고자 했다는 것임을 의미한다.


주자의 말처럼 사람이 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실천해 보인 것만으로도 시호에 ‘文’이라는 글자를 받을만하다고 말이다. 그를 평가함에 있어 공(功)이 있다고 하여, 그의 허물을 없는 듯이 하지도 말 것이나, 허물이 있다고 하여 그의 선(善)함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함을 가르침으로 주기 위함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정말로 자공이 그 정도를 몰라서 공자에게 물었을까?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대선배 소씨(蘇轍)가 왜 자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질문하였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공문자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공문자(孔文子)는 태숙질(太叔疾)로 하여금 본부인을 쫓아내게 하고는, 자기의 딸인 공길(孔姞)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그 후 태숙질이 본부인의 여동생과 정을 통하였다. 이에, 공문자가 노하여 장차 태숙질을 치려 하면서 공자에게 묻자, 공자는 대답하지 않고 수레를 재촉하여 떠나셨다. 태숙질이 쫓겨서 송나라로 달아나니, 공문자가 태숙질의 아우인 遺로 하여금 孔姞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 공문자는 사람됨이 이와 같았는데도 (죽은 뒤에) 文이라는 시호를 받으니, 이 때문에 자공이 의심하여 물은 것이다. 공자께서 그의 선한 점을 없애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더라도 文이라고 시호 할 수 있는 것이다.”하셨으니, 經天緯地의 文은 아니다.

소씨의 설명에도 나오지만,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자공은, ‘이런 비난받을만한 행위를 했던 공문자에게 어찌 그런 대단한 시호를 주고 인정한다는 말입니까?’ 라고 반문한 것이다. 소씨의 설명 중에 방점은 마지막 문단이다. 공자는 그의 선한 점을 없애지 않고 그 공은 작은 것이 아니라면 인정해주었다는 것이다.

위 사건의 설명 중에서 태숙질을 치기 위한 의견을 공문자가 공자에게 묻기 위해 공자를 찾았을 때, 공자는 대답 없이 떠나버렸다. 실제로 위 사건은, 위나라에서 대접을 받고 있던 공자와 그 제자들이 위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된다. 그 경험을 같이 하였기에 자공은 당연히 스승 공자가 공문자를 괘씸하다고 평가할 줄 알았는데, 스승은 그의 장점, 그것도 다른 이들이 실행하지 못했던 큰 장점만큼은 공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평가한다.


소씨가 가장 마지막 문구에서 ‘經天緯地’라고 쓴 말은, ‘天地의 道를 밝히고 造化를 돕는다.’는 의미로, 춘추시대 역사서인 <국어(國語)> ‘주어(周語) 하(下)편’에 나오는 말로, 본래의 구절은 고대 치국을 잘한 성인 중 한 사람인 주(周) 나라 문왕(文王)의 바른 문덕을 기리는 의미로 사용한 말이다. 여기서는 그 정통을 계승한 최고의 성인인 공자를 문왕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최고 경지에 이른 이를 말할 때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공문자가 그 정도 수준으로, 모두 다 잘했다고 그 시호를 받은 것이라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어쩌면 소씨도 자공의 불만에 대한 변호를 하고 싶었던가보다.

하늘을 우러러 아무런 부끄럼이 없으려 한다며 더 가지려는 자의 부정을 치려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공평함을 제공하려고 했던,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던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제대로 대학도 나오지 못했던 고졸 출신의 그가 대선후보로 막 선언을 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여론조사도 조사였지만, 그가 정말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상대측에서 그를 흠집 내며 그의 장인이 보였던 문제 있는 과거 이력을 물고 늘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제 처를 버려야겠습니까? 대통령 되겠다고 제 처를 버려야 옳습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 다운 호소였다.

사실,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떨어져 낭인 신분으로 절치부심하고 있던 때, 나는 그가 자주 만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동네에 살았던 이유만으로, 차가 아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길 좋아하던 그와 자주 마주쳤다. 심지어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낯이 익어버려 오가다가 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버렸었다. 시비를 가리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며 자신이 했던 공부를 하던 내게 그는, 다른 경성제대 출신들처럼은 절대 살지 말라는 진담 같은 농담을 하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가 청와대에서 나와서 얼마 되지 않아 이루 견디기 어려운 모욕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병원에 있다가 정작 환자에게서 듣고서 경악하며 TV를 켰었다.

경악하면서도 그 과정을 보아왔기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닌, 설마의 설마가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나, 그는 단지 검찰 따위의 모욕을 참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존심을 가진 자가 아니었다. 그저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가족의 옳지 못한 행위를 스스로 단속하고 인지하지 못했다는 그 자존심에 결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혼자서 조심스레 추측하고 그가 가는 길에 그가 즐겼던 술을 한잔 올렸다.

그런 그의 노력과 성과와 그가 그의 삶 전반을 통해서 보여줬던 실천을, 모든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것을 감히 부정하고 그가 자기 배 불리겠다고 정치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살았다며 함부로 욕할 수 있는 자들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설사 자신의 가족을, 측근을 더 엄하고 강하게 단속하여 올바르게 훈육하였더라면 끝이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는 별도로 그의 삶이, 그의 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가 꿈꾸던 더 강하고 국민 모두가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엔 아직 한참은 모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어디서 들어오는지 이미 뻔한 뒷돈을 받아가며 확성기에다가 대고, 박통 때의 나라가 제일 좋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심지어 대통령을 하고 싶다며 선거판에 뛰어든 자가, 광화문의 그들도 한 표라며 그 표라도 챙기겠다는 알량한 욕심에, 박통이 죽은 틈을 비집고, 총 들고 멀쩡한 사람들 죽이며 권력을 잡은 작자를 평가하며, 그가 정치는 잘했다고 봐야 하지 않냐는 망언을 듣고야 말았다. 한참 귀를 씻어야만 했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것을 떠들든 말든 자유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와 방종은 엄연히 다른 말이고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자의 말은 그 말의 무게가 곧 그가 갖는 책임이 되어야 한다고 공자는 수천 년 전부터 확성기 없이 소리소리 질러왔다. 그 말을 한 자의 무게가 딱 고 정도인 것이라는 말이다.


이 장에서 공자가, 자신의 올바른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실수를 했던 공무자에 대해 높은 평가를 거두지 않았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공이 바르게 평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자도 누구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문구의 행간을 읽을 수 있는 깜냥이 되는 이들만이 공통적으로 이해하는 한 가지가 있다. 기준이다. 어떤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공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


그런데 그 기준은, 공문자에게서 보는 것과 같이 너무도 명료하고 간단하다.

일반 사람이 감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해내는 자.

그런 사람이 많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을 해낸 자가, 지 배불리겠다고 뒷돈 받고 돈 불리고, 사람들을 거침없이 죽이고 자신의 공적을 스스로 떠벌일 일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왜 하나같이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하는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도 하나같이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 그런 범죄를 저지른 죄인으로 갇혀 있느냔 말이다.

정치 보복이라고? 억울하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정말로?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아무리 돈벌이로 핸드폰 앞에 앉아 쓰레기 유튜브 영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호도하는 것들이 발에 채이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이들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나는 아직 우리나라가, 이 사회가 제대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을 글로 옮긴다. 글을 통해 잠들어 있던 당신들의 양심이 깨어나 함께 사회를 변혁시킬 그날을 꿈꾸며 지금은 혼자라도 묵묵히 앞으로 걸어갈 때라 믿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