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자산(子産)을 두고 평하셨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나 있었으니, 몸가짐이 공손하며, 윗사람을 섬김이 공경스러우며, 백성을 기름이 은혜로우며, 백성을 부림에 의로웠다.”
자산(子産)이라는 인물에 대한 공자의 평가이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던 것과 사뭇 다름을 금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군자의 도가 네 가지나 있었다고 하면서 그 네 가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은 일반인과 같지 않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특히 유의해서 살필 필요가 있다.
자산(子産)은 공자보다 1세대가 빠른 정치가였다. 자산(子産)이 죽었을 때 공자는 불과 서른에 불과한 후배였다.
먼저, 자산(子産)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의 삶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정(鄭)나라 대부였던 ‘공손교(公孫僑)’라는 인물로, 정 나라 목공(穆公)의 직계 후손인 6목(穆)의 한 사람이던 공자 발(發), 자국(子國)의 아들이니, 정 목공(鄭穆公)의 손자이다.
자산(子産)의 초상화
재상이던 자사(子駟)가 희공(釐公)을 독살하고는 희공(釐公)이 갑자기 죽었다고 부고하고 간공(簡公)을 세우자, 자사(子駟)가 독살한 사실을 알게 된 희공(釐公)의 형제들이 규합하여 자사(子駟)를 죽이려 하자, 이를 눈치챈 자사(子駟)가 역습하여 공자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그리고, 이듬해 자사(子駟)가 간공(簡公)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공(公)의 자리에 오르려 하자, 자공(子孔)이 위지(尉止)를 시켜 자사(子駟)를 죽이고 위지(尉止)를 상(相)이 되게 하고서, 본인이 공(公)의 자리에 오르려고 한다.
그러자 자산(子産)은 ‘자사(子駟)가 불가(不可)하고 하여 죽여놓고는 그를 본받으려 하면 이 난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따끔하게 간언하자 자공(子孔)이 그의 말을 따라, 임금이 되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상(相)의 자리에 올라 정치를 전횡하게 된다.
간공 12년에 상(相)이던 자공(子孔)의 전횡에 화가 난 간공(簡公)이 자공(子孔)을 죽이고, 자산(子産)을 경(卿)으로 삼으니, 그때야 비로소 정 나라의 정치에 자산(子産)이 전면에 등장하여 정 나라의 정치를 회복하고 안정을 찾게 된다.
간공 22년에 오나라 사신 연릉계자(延陵季子)가 정 나라에 와서 자산(子産)에게 이르기를, “정나라의 정치가 교만하고 사치스러워 재난이 곧 닥칠 것이고, 정권은 그대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대가 정치를 맡으면 반드시 예를 지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정 나라는 패망할 것입니다.”라고 조언해주었고, 두 사람은 우정은 마치 오래된 친구 같이 이어진다.
공자 역시 일찍이 정(鄭)나라를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와 형제 같았다고 하며, 성공(聲公) 5년(BC 496년)에 자산(子産)이 죽자. 정(鄭)나라 사람들이 마치 친척이 죽은 것처럼 통곡했다고 전한다. 그는 어질고 사람을 사랑했으며, 군주를 충성으로 모셨다고 전해지는데, 공자는 자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며 “옛 유풍처럼 어질고 사랑을 알았던 사람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진다.제나라의 안영(晏嬰), 진(晉)나라의 숙향(叔向) 등과 함께 춘추시대 중후반기에 손꼽히는 현인(賢人)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정리하자면, 그는 자타가 공인했던 명재상이었고, 강대국 틈에서 제대로 힘 한번 펴보지 못했던 정(鄭)나라를 키워냈던 훌륭한 정치가였다.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당시 공자의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공자보다 한 세대 위의 정치가로 1세대 선배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자신이 존경하는 마음을 보였던 정치적 롤모델 선배, 자산(子産)에 대한 평가를 공자가 내리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장이다. 이 장에 대해 주자가 어떻게 해설했는지 한번 살펴보자.
“恭은 겸손한 것이요, 敬은 삼가는 것이요, 惠는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백성을 부림에 의롭다는 것은 예를 들면, 도시와 지방에 따라 법도의 차이가 있으며, 계급의 상하에 따라 복장이 다르며, 토지에는 두둑과 도랑을 두고, 사는 집과 마을에는 다섯 가호씩 서로 조가 되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군자로서 갖춰야 할 네 가지 도를 갖췄다는 의미의 각 키워드에 대해 설명하되, 마지막에 백성을 부림에 의로서 하였다는 의미를 구체적인 예까지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자산(子産)이 집정하고 있던 정(鄭)나라는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양대국이 쟁강하던 시기였다. 그 두 강국 틈에 끼어 정(鄭)나라는 잦은 침략과 부침에 나라가 부강하기는커녕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위기와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나라였다.
그 사이에 끼어 자산(子産)은 박식과 웅변, 그리고 탁월한 임기응변의 수완을 발휘하여 나라의 평화를 도모하였다. 자산은 강국인 두 나라를 주선하면서, 비굴하지도 않았고, 자만하지도 않았으며, 정나라로 하여금 존경과 안전을 얻을 수 있게 만들었다. 자산(子産)은 농지의 구획정리를 행하여 세(稅)를 증수(增收)하였고, 군사세로서의 구부(丘賦)를 실시하여 국가경제를 재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불만세력을 억누르기 위하여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형서(刑書)를 주조하여 국내에 공포하였다.
중국사에서 흔히 자산(子産)을 법치주의의 선구자로서 언급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법치는 법가의 법치와는 결이 달랐다. 철저하게 민본에 근본을 둔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것이다.
공자가 실제 정치에서 자신의 뜻을 100% 구현하지 못했지만, 공자가 현실적인 롤모델로 삼았던 몇 안 되는 구체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자산(子産)이었다. <논어>의 ‘헌문편’에서는 공자가 자산(子産)을 평하면서 ‘惠人’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 장에서 말하는 4가지 군자의 도 가운데 해당하는 ‘혜(惠)’의 의미로 백성들에게 베푸는 국가가 갖춰야 할 복지의 기본자세를 한 글자로 나타낸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간공 19년에 자산(子産)에게 여섯 개의 읍을 봉해주었으나 자산(子産)이 사양하고 세 개 읍만 받았고, 23년에 여러 공자(公子)들이 간공(簡公)의 총애를 다투면서 서로를 죽이고, 또 자산(子産)까지 죽이려 하자, 그중 한 공자(公子)가 “자산(子産)은 어진 사람이다. 정(鄭) 나라가 아직 존재하고 있는 것은 자산(子産)이 있기 때문이니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라고 하여 자산은 난(亂)을 면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 정도의 롤모델 선배였으니 공자가 그에 대해 높게 평가한 내용임은 확실하게 알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이 이리도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그 숨은 의도를 잘 살펴볼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누구나 그렇게 했다면 칭찬하지 않았을 것이고, 누구나 그렇게 했다면 굳이 그렇게 나열하여 군자의 도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들이 없으니 그 본을 받으라고 군자의 개념을 가져오면서까지 정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올바른 사례를 들어 보인 것이다.
칭찬은 여러 가지 목적을 갖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의 하나로 분류된다. 상대를 그저 좋게 평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그 칭찬을 들을 대상이 이미 없음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아주 구체적으로 나열할 때는 살아서 그것을 듣고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의도가 당연히 더 크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 볼 것은, 그 시대의 타이밍과 왜 그 칭찬이 나왔는지에 대한 배경을 읽는 것이다.
이 장에 대한 숨은 진의를 읽어낸 오씨(吳棫)가 다음과 같이 이 장을 정리한다.
“그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꾸짖는 것은 그의 선한 점이 많은 것이니, 장문중(臧文仲)이 仁하지 못한 것이 세 가지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 세 가지라 한 것이 이것이다. 그 일을 하나하나 열거하여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미진한 점이 있는 것이니, 자산(子産)이 군자의 도가 네 가지나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오늘날 혹 한마디 말로써 한 사람을 총평하거나, 한 일을 가지고 한 때를 단정 지으려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잘못이다.”
오 씨의 해설 중 방점은, 가장 마지막 문장에 있다. 한 번 했던 말로 그 사람을 총평해서는 안되며, 한 가지 일만 가지고 그 사람의 공과를 단정 지어 결정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 앞서 공문자의 불치하문(不恥下問) 고사가 담긴 이야기를 공부하면서도 나왔던 공자의 진의를 다시 한번 풀어 말하며 강조한 것에 다름 아닌 내용이라 하겠다.
여기서 비난의 대상으로 예를 삼은, 장문중(臧文仲)의 이야기는 이틀 뒤 공부하게 될 내용에서 구체적으로 나오니 그 부분에서 더 자세히 논하겠지만, 이 해설 속에서, ‘仁하지 못한 것이 세 가지’란 현자였던 전금(展禽)을 등용하지 않은 것과 여섯 개의 관문을 廢한 것과 妻妾을 시켜 갈대 자리를 짜게 한 것이며, ‘지혜롭지 못한 것이 세 가지’란 쓸데없는 기물을 만든 것과 잘못된 제사를 바로잡지 않은 것과 ‘원거(爰居)’라는 새에게 제사한 것으로, 이 내용은 <<春秋左傳>> 문공 2년조와 <<國語>>의 <魯語>에 자세히 보인다.
군자의 도를 네 가지나 갖췄다고 설명하였지만, 결국 여기서 공자가 강조했던 것은 국정운영의 밸런스였다. 공자가 자산(子産)을 가장 높게 평가한 가장 큰 이유는, 자신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마음이었고, 조그맣고 힘없던 자신의 나라를 위해 온 몸을 다 바쳤다는 진심이 그의 운신에서 모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국정운영의 가장 핵심은 바로 밸런스였다.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 이것을 이 장에서는 ‘기른다(養)’라는 표현을 썼고, 백성들에게 부역을 지우게 하는 것, 이것을 ‘부리다(使)’라는 표현을 썼다. 국민에게 마냥 좋은 복지만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정치인가 그렇다고 엄격하게 법률을 적용하고 박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부역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은 정치인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그렇지만, 수천 년 전인 당시에도 늘 논란거리였다.
실제로 죽음을 앞두었던 자산(子産)은 자신의 후계를 이을 자태숙(子太叔)을 불러 자신이 평생 일궈온 국가경영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여기서 나오는 공자에게 존경을 받을만한 자산(子産)으로 인정받았던 그의 관대함과 엄격함의 밸런스, ‘관맹상제(寬猛相濟)’이다.
이제까지 내가 설명했던 자산(子産)의 전체 삶을 관통하는 그 긴 이야기를, 그의 평가를 하면서 뜬금없어 보이던 군자의 4가지를 모두 갖추었다고 칭찬하는 듯하면서 강변한 내용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후계자를 양성하는 정치제도의 미덕은 그 누구에게서도 그 어떤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후계자는 고사하고 제 앞가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제 배 불리거나 세를 불리거나 하는 따위의 정치가 고작이다. 앞서 언급했고 앞으로의 공부에도 또 나오겠지만, 자기가 부족하면서 제대로 된 자를 등용하지 못하여도 욕을 먹을 정도로 공자의 평가는 기준이 높고 엄격하여 날이 바짝 서 있었다.
그것은 공자가 엄격하거나 턱도 없이 눈만 높았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위정자라는 위치는 그저 부역을 당하는 백성의 입장과 다르고, 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위상이 바뀌고 국가의 존망이 결정될 정도의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가?
지 배 불리겠다고 하는 놈들이 지 자식을 통해서 돈을 챙기고, 그렇게 챙긴 돈으로, 올바른 의식은 고사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해서 빌빌 거리는 자식한테 돈 대줘서 외제차 타고 다니고, 그 쉬운 사법고시도 합격을 못해서 돈으로 로스쿨보내서 가업을 계승하네 어쩌네 한다. 그래서 그나마 돈으로 맨투맨 과외시켜 경성제대 들여보내고 그렇게 돈으로도 되는구나 싶으니까 사법고시 족집게 과외까지 시켜 사법고시를 패스시켜 귀족 검사라는 신조어 그룹을 만들어놓고 목에 깁스를 하고 다니며 정치합네 나서서 또 나라의 기둥을 파먹고, 그런 악순환을 지속하고 반복하면서도, '나 하나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어?'라는 겁 없는 짓거리를 한다. 아니, 갈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나만 잘 살 수 있다면 나라는 상관하지 않는 지경까지 막나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미 처절히 경험한 바 있다. 복지부동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안일한 공무원과 지 배만 불리겠다는 정치인들이 결탁해서 나라 전체를 휘청거리게 하고 팔아먹으려고 하는 짓의 일환으로 벌였던 외환위기니, 금융그룹의 국제매도니 하는 일들을 말이다. 당시에 국민 모두가 그 휘청거림에 흔들거릴 때, 그 위기가 기회였다면서 빈부의 차를 벌릴 수 있을 때 벌여야 한다며 이용했던 자들은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기대하고 있단다.
그것이,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고 그 기회에 자신의 배를 불리겠다고 나대던 매국노들이 판치던 시대와 과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들의 후손이니 그 선조가 한 짓을 그대로 하는 것인 매국노 DNA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뻔뻔한 항젼이라도 할 셈인가?
그래서는 안되지 않냐고 수천 년 전의 똑같은 망국의 짓거리를 하는 것들에게, 막연한 형이상학적 비유를 하는 대신에, 실존했던 자산(子産)이라는 롤모델을 칭찬하는 듯하면서 후려치고 죽비가 부러지도록 정수리를 날리는 내용이 바로 이 장의 정수이다.
우리에게 지금 자산(子産)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 자신이 자산(子産)이 되려고 노력하고, 당신의 자식을 자산(子産)처럼 제대로 키우라고 수천 년 전부터 저렇게 말씀해주신 것을, 그 의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어디서 눈먼 돈을 챙길 일이 없을까 눈을 희번덕거리며 다녀야 하겠는가?
그러지 말란 말이다. 수천 년 전에는 그나마 왕족과 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만의 리그가 정해져 있어 그랬다 치자, 지금은 다르다.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그들은 당신들의 허락이 없이 그런 힘을, 그런 뻔뻔함을 자행할만한 칼자루를 쥘 수 없단 말이다.
당신들이 눈 크게 뜨고 쭉정이를 걸러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단 말이다.
더 이상 그것들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상관없다는 망령된 생각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죽비가 박살이 나서 먼지가 날 정도로 내려치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