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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4. 2021

열 번째 차 - 몽정차(蒙頂茶)

쓰촨 성의 명산과 아안현의 몽산에서 나는, 최초의 공차(貢茶)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83


                          몽정차(蒙頂茶)

몽산차(蒙山茶) 혹은 몽정산차로 불리는데, 쓰촨 성의 명산인 몽산(蒙山)의 정상에서 재배된 차로 생산된다. 몽정(蒙頂)이란 몽산(蒙山)의 정상을 일컫는 말이다.

 

당나라 현종 때(742년)부터 공물로 황실에서 하늘과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진상용 차로, 청나라 말기까지 천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매년 공물로 바쳐왔던 차이기도 하다. 그래서 ‘황제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녹차류에 속하는 감로(甘露), 만춘은침(萬春銀針), 옥엽장춘(玉葉長春)이 있고, 황차(黃茶)류에 속하는 황아(黃芽), 석화(石花) 등이 있다.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지며 옛날부터 선차(仙茶)로 불려 왔다.


감로(甘露)는, 일심(一芯) 혹은 일심일엽(一芯一葉)의 눈아(嫩芽)를 고온에서 살청, 덖음(炒), 비빔(揉捻), 홍(焢), 정형의 공정으로 만들고, 향은 진하고 상쾌하다.

아(黃芽)는 살청(殺靑) 후 민황(悶黃)의 공정을 거쳐 포장하여 만든다. 황색의 차로 맛이 향기롭고 순하다.

굳이, 최초의 인공재배차이자, 최초의 공차(貢茶)인 몽정차(蒙頂茶)를 중국 10대 명차의 가장 마지막에 소개하는 것은, 중국 명차의 시작이 곧 마지막으로 이어져 결코 그 심오한 차의 세계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여기 10대 명차로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중국 각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과 학자들이 즐겨 마시며 그 흥취를 노래한 수많은 명차들이 아직도 자기소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대당공차원 전경

앞서 아홉 개의 명차를 소개하며 공차(貢茶)라는 개념이 몇 번이나 나왔는데, 이제 마지막 차 이야기이니, 최초의 공차가 나온 김에 조금 정확하고 자세하게 한번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공차(貢茶)’는 옛날 중국 황실에서 황제와 황족들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하여 조공한 차를 의미한다. 이는 ‘중국 차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하나의 특이할만한 역사적 흐름과 함께하고 있어, 결코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차 문화 공부에는 아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으며, 당연히 중국의 역사와 함께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황제에게 바쳐진 조공한 명차들은 그야말로 모두 정사에 기록된 역사적인 명차(名茶)에 속한다.


허접한 타이완의 2006년 설립된 브랜드를, 공차코리아를 차린 눈치 빠른 한국인이 2017년 아예 매입해버려 젊은이들의 달짝지근한 싸구려 입맛에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을 보면서, ‘공차(貢茶)’라는 이름을 아주 버려놨구나 싶어 한탄했더랬다.

대당공차원 전경

본래 ‘공차(貢茶)’에서, ‘공(貢)’의 의미는, 『상서(尙書)』에 주석에서 공영달(孔穎達)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아래에서 위에 바치는 것’을 일컫는다. 상대적인 의미로 ‘부(賦)’라는 것이, ‘위에서 아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구분된다. 다시 말해 ‘부(賦)’라는 것은 국가에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지방에 ‘내놓으라고’ 징세하는 것이며, 지방에서는 이것을 이행해야 할 법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진공(進貢)’이란 각 지방에서 중앙정부에 ‘자발적으로’ 그 지역의 생산품이나 특산품을 바치는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그 수량의 제한이나 품종의 규정이 없으며, 대체로 다른 지방에서 구하기 힘든 그 지방의 희귀하고 진귀한 품목들이 대부분 조공으로 바쳐진다. 이것이 진정한 ‘공(貢)’의 의미이니, 정말로 그 지역에서만 나는 진귀한 가치를 가진 것을 황제에게 바쳤다는 의미이다.

진(晋)나라 때, 상거(常璩)가 저술한 『화양국지(華陽國志)』 「파지(巴志)」에 보면,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을 정벌하고, 파국(巴國)에 있는 주나라 종진(宗姬)에게 아들의 작위를 주어 ‘파자국(巴子國)’이라 칭하고 왕으로 봉하였다. 그때 파국(巴國)에서 조공을 받았는데, 거기에 ‘차(茶)’가 조공 품목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차(貢茶)’에 대한 최초의 공식 기록이다.

루쉰이 소장하고 있던 청궁차고

주나라 무왕이 은(殷)을 정벌한 시기가 기원전 1,066년이므로 ‘공차(貢茶)’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전촉(前蜀:907~925년) 때, 모문석(毛文錫)이 저술한 『다보(茶譜)』에, “양주(揚州)의 선지사(禪智寺), 수나라의 옛 궁궐, 사침(寺枕)의 촉강(蜀岡)에 차밭이 있는데, 그 맛이 달고 향기로운 것이 몽정차(蒙頂茶)와 같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미 수나라 때에도 몽정차(蒙頂茶)가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청대 금과공과차(보이차)

공차(貢茶)는, 특히 당나라 때에 이르러 일반적인 토공(土貢)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 정식으로 조공하는 품목인 ‘정공(正貢)’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관배(官焙)’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각종 공차(貢茶)의 모든 제조과정을 관부에서 직접 관리, 감독,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당나라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황제와 황실에서만 전문으로 음용하는 공차(貢茶)의 품질뿐만 아니라 품종과 차의 빛깔까지도 상당히 섬세하게 품평하였다. 이러한 역대 공차(貢茶)의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한 창조와 발전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제다기술의 발전을 촉진시키면서 6대차류 모두 그 특상급에 이른 차종은 공차(貢茶)에 올라가는 현상을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전통 있는 중국의 차관에 가면 가끔씩 오래된 현판이나 족자를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심심찮게 ‘양자강중수(揚子江中水),몽정산상차(蒙頂山上茶)’이란 글귀를 접하게 된다. 이는 천하제일천으로 꼽히는 양자강 중령천(中泠泉) 물을 끓여 몽정산(蒙頂山)에서 나는 차를 끓이게 되면, 그것이 극상의 차라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몽정산 입구

‘몽정(蒙頂)’이라는 의미는, ‘몽산(蒙山)의 정상’을 의미한다. 간혹 몽정산(蒙頂山)과 몽산(蒙山)이 서로 다른 산이라는 기록도 보이기도 한다. 몽산은 현재 쓰촨 성 성도(成都)에서 110㎞떨어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지역은 ‘명산현(名山縣)’과 ‘아안현(雅安縣)’에 걸쳐 있다.

몽산(蒙山)에는 기이한 봉우리와 고차수(古茶樹)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차를 가장 마셨을 법한 스님들이 계신 오래된 불교사원도 자리 잡고 있다.

몽산은 사천 분지의 남서부 쪽에 위치해있는데, 산세는 북고남저(北高南低)의 형세이고,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걸쳐 있으며 야안 시내까지 뻗어있다. 산의 길이는 약 10㎞, 폭은 약 4㎞이고, 오봉(五峯)이 있는데, 상청(上淸), 능각(菱角), 毗罗(비라), 정천(井泉), 감로(甘露)라 부르고 연꽃처럼 배열되어 솟아 있다. 최고봉은 상청봉으로 해발 1456m이다.


우무몽말(雨霧蒙沫; 비와 안개가 거품처럼 덮여있다)라는 말에서 산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 강우량이 2,000㎜이상으로 많고, 사철 안개가 자욱하고 구름이 많은 기후적 특징 때문에 거의 일 년 내내 온 산이 비와 운무(雲霧)로 뿌옇게 덮여져 있다. 연 평균 기온은 15℃정도이고, 서리가 없는 날이 연중 평균 300일이나 되고, 비가 내리는 날이 200일 가량 된다. 그래서 몽정산을 여행할 때는 우비가 필수일 정도이다. 이는 차를 심고 재배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천연적인 환경조건을 구비하고 있어 가히 하늘이 내리신 땅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곳이다.

몽정산 다원(茶園)

사료(史料)에 의하면 몽산에서 차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인 서한(西漢) 때부터였다고 한다. 중국 쓰촨 성 몽산 일대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 구전에 의하면 서한 감로(甘露:B.C. 53년~ B.C 49년) 연간에 감로사(甘露寺)의 보혜선사(普慧禪師) 오리진(吳理眞)이 직접 일곱 그루의 차나무를 심었는데 그 품질이 특이하여 사람들은 이를 ‘선차(仙茶)’라 부르게 되었다.

몽산 정상에 가서 보게 되면, 그 아래쪽에 위치한 ‘차사박물관(茶史博物館)’ 건너편 산기슭에 정방형의 돌난간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일곱 그루의 차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입구에 ‘황다원(皇茶園)’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본래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차사박물관(茶史博物館)’이라고 이름만 있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볼품없기 그지없었는데, 최근에 와서 ‘세계차문화박물관(世界茶文化博物館)’이란 이름으로 개명하면서 대대적인 개축 작업을 통해 중국스러운(?) 화려한 규모를 변모하였다.

세계차문화박물관(世界茶文化博物館) 내부

몽정차는 당(唐)나라 때부터 청(淸)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 동안 ‘공차(貢茶)’로 지정되어 매년 황실에 바쳐졌다. 이조(李肇)가 저술한 『당국사보(唐國史補)』에는 “검남(劍南)에는 몽정석화(蒙頂石花), 소방(小方), 산차(散茶)가 있는데 으뜸이라 하겠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세 가지 언급된 차 이름 모두가, 몽산에서 나는 차를 일컫는 말이다.


매년 황제에게 바쳐지는 공차는 ‘정공(正貢)’과 ‘배공(陪貢)’의 두 종류로 나뉜다. 황제나 황족이 음용에 바쳐지는 ‘정공(正貢)’은 바로 ‘황다원(皇茶園)’에서 재배된 일곱 그루에서 나오던 선차(仙茶)이고, 조정 대신이나 귀족들의 음용에 쓰이는 ‘배공(陪貢)’은 몽산 오봉(五峯)의 곳곳에서 나는 찻잎을 채취하여 제다한 것이었다.

몽정산 정상 아래의 다신전(茶神殿), 오리진의 모습이 보인다.

매년 공차(貢茶)를 제조할 때엔 몽산다원(蒙山茶園)에서는 개원(開園)의 예법과 의례가 엄중하고 성대하게 거행했다고 한다. 먼저 길일(吉日)을 택하고 모든 이들이 목욕재개하고 ‘찻잎을 따는 승려[採茶僧]’와 ‘차를 만드는 승려[製茶僧]’의 역할 분업을 엄격히 구분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몽정차는 채다에서 제다에 이르기는 모든 공정(公廷)에서부터 일반 차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그 품질에서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많은 문인(文人), 아사(雅士)들의 아낌없는 극찬과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당대(唐代)를 대표하는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금다(琴茶)』라는 시에서 “거문고 곡(曲)에는 오직 ‘녹수(淥水)’만이 들을 만하고, 차 중의 오랜 벗은 몽정산 차뿐일세.(琴裏知闻唯渌水,茶中故舊是蒙山.)”3)라고 몽정차를 극찬하였다. 또, 당대(唐代) 여양왕(黎陽王)은 〈몽산백운암다(蒙山白雲巖茶)〉라는 시(詩)에서 “만약에 육우로 하여금 공론을 주최하게 한다면, 마땅히 (몽정차를) 인간세상의 제일 차라 할 것이다.”라고 몽정차(蒙頂茶)를 극찬하였다.

몽정차는 그 역사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했지만, 현대에 와서 제대로 복원되었다고 인정받는 몽정차는 ‘몽정석화(蒙頂石花)’와 ‘몽정감로(蒙頂甘露)’의 두 종류가 있다. 몽정석화는 납작하고 곧은 형태로 ‘불 쬐이기(홍배:烘焙)’와 덕음(초청:炒靑)과정을 거친 녹차(綠茶)이다. 청명(淸明)전(한국 기준으로는 우전(雨前)과 동일)에 어리고 여린 싹(일창, 一槍)을 채취하여 만든 것으로 외형은 납작하고 곧으며 하얀 솜털(백호, 白毫)이 덮여 있다. 그 형상이 마치 산석(山石) 위에 핀 석화(石花)와도 같고 맛은 감미롭고 신선하며 여린 맛이다.

 

‘몽정감로(蒙頂甘露)’는 구불구불하게 말린 형태의 초청(炒靑)녹차이다. 차명을 ‘감로’라고 이름 지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서한(西漢) 때 선제(宣帝) 유순(劉詢)의 ‘감로(甘露:B.C53년~B.C50년)’연간에 몽산 감로사의 보혜선사 오리진(吳理眞)이 몽산에다가 최초로 차를 심고 인공 재배하였다고 해서, 후대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연호인 ‘감로’로 차의 이름을 명명하였다. (범어로 ‘감로’는 ‘시조를 떠올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차의 맛이 아주 신선하고 부드러운 것이 마치 감로와 같고 차의 품질이 일반 여타의 차들보다 월등함을 상징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몽정감로’의 외형은 구불구불 말려있고 하얀 솜털이 매우 많으며 그 색이 녹색 윤이 난다. 향기는 아주 깔끔하며 맛이 순후하고 감미로우며 싹 잎이 마치 꽃봉오리 같다.

이외에도 황차 종류에 속하는 ‘몽산 황아(黃芽)’도 상당히 유명한데, 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모든 차 중에서 가장 묘하고 심후한 맛이었다. 워낙 접하기 어려운 차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맛보는 순간 향은 그윽하기 그지없는데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이 거의 없는 듯하여 마시는 이로 하여금 그야말로 선차(仙茶)를 마시는 묘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몽정감로를 기준으로 보면, 차를 우리는 물의 온도는 80~85℃정도가 적당하다.

선차(仙茶)라는 별칭 때문인지 노화방지와 피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현지에서는 홍보한다.

몽정황아

차는 인생과 같다

이로써 중국 10대 명차에 대한 이야기가 총 13편의 이야기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편씩 연재하였고, 단행본 3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을 기준으로 사진을 빼면 조금 부족하고 사진을 넣으면 훨씬 넘는 분량의 책 한 권 분량이 맞춰졌네요.


13일 만에 책 한 권 쓰기, 참 쉽죠? 쿨럭~

요즘 무슨 책 찍어내는 공장이냐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

미친 듯한 집필에 대해서는 다음 주말 이후에 브런치 5개월 중간보고에서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죠.


사실, 차와 관련된 당대 문인들과 학자들의 이야기도 좀 넣으려고 하였으나 그런 내용 넣지 않고 이렇게 간략하게 줄여도 두꺼운 책 한 권이 되어 나오는 바람에, 외전을 따로 엮을지에 대해서는 생각 중입니다.


프롤로그에서도 밝혔지만, 본래는 차에 대한 단행본이 아닌 차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한 시장조사였습니다. 물론 본인이 좋아하는 호사 취미이고, 무엇보다 중국 각지를 다니며 그곳에서 만났던 차농들과 만남과 인연이 더 좋았죠.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분들에게, 차의 세계와 함께 마치 그곳에 다녀온 것 같은 랜선 여행도 겸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도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쩌면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여, 특집 교양 프로그램 시리즈로 변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그쪽 국장들에게 밑밥을 던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작이 들어가게 되면 그때 따로 또 중간 보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버거운 중량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마감일에 딱 맞추겠다고 썼는데 정말 맞췄네요. ^^;

차를 처음 배우고자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흥미로운 가이드가 되었기를 바라고, 차 마니아들에게는 차 공부를 한번 정리하는 계기가, 중국 여행이 갈급하여 금단현상이 생기신 분들에게는 광활한 중국 전역의 랜선 여행 가이드가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그럼 남은 가을 운치 있게 보내시고

또 새롭고 황당한 내용의 시리즈로 조만간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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