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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9. 2021

하나후다(花札)는 어떻게 화투가 되었는가?

하나후다(花札)의 조선 상륙기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99


지난 연재 글을 통해 카르타가 변형되어 하나후다(花札)라는 형태로 일본화되었다는 사실과 그 배경에 대해 살짝 살펴보았다. 포르투갈 선원과 상인들에 의해 카르타가 전파되자, 일본 열도의 전국 방방곡곡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이 서양 장난감에 일본 국민들이 열광한 것은 물론이었고, 의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유럽 선교사의 수도 빠른 속도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 격노한 무사 정권 지도자들은 천주교의 범람을 막고자 국경을 폐쇄하고 시계, 안경 등의 서양 문물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수차례 발표했다. 금지품 목록에는 당연히 놀이용 카드도 포함되었다.

이에 이미 카드놀이에 맛을 알아버린 일본 국민들은 카드 금지령을 피하기 위해 모양 4개, 숫자 12개로 구성된 서양 카드 생산을 순순히 중단하고, 대신 한 해를 이루는 계절(역시 4개)과 달(역시 12개)로 구성된 카드를 만들게 된다.

하나후다(花札; はなふだ)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새로운 카드는 그림과 게임 규칙이 새롭게 바뀌었고 브리지나 마작처럼 더 복잡한 게임을 하기에도 적합했다. 결국 하나후다(花札)도 정부의 규제 금지품이 되었지만,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게임만으로도 19세기까지 명맥이 유지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1885년 조금 더 개방적인 정책을 펼치는 지도자가 정권을 차지하게 된 후, 도박이나 하나후다(花札) 생산에 대한 제한을 철회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나후다(花札)에 필이 꽂혀 있었던 것은 이미 전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토는 식민지 전후의 조선을 방문한 적이 있다.(도박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사실과 이토가 총 맞아 죽은 이유는 다르니 주의 요망.) 


그런데 그 이토가 청일전쟁 전후처리를 위해 1898년, 우리나라 고종을 알현하고 많은 친일파와 교류를 했을 때도 선물했을 수많은 선물 목록을 추정해보면, 특히나 조선으로 왔다 갔다 하는 무료한 일정에 이토 히로부미가 하나후다(花札)를 챙겨 오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때문에 선물용으로 준비해와서 친절하게 놀이 방법을 전수했을 가능성 또한 배재할 수 없다.


그가 직접 그런 과정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본에서 고관대작들이 교류를 빙자하며 함께 어울려 노는 문화라면 어떻게든 그 틈에 끼고 싶어 했던 친일파들에게는 MUST IT 아이템이었을 확률이 지극히 높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1910년 4월 16일의 조선의 신문에는 ‘総理大臣李完用氏가 牽引症이 深刻하다함은 旣報하엿거니와 苦痛을 忘却키 爲 하야 門客으로 더불어 花鬪碁局에 着心한다더라(총리대신 이완용 씨가 견인증(牽引症, 근육이 쑤시고 아픈 병)이 심각해 고통을 잊기 위해 문객들과 화투를 친다더라)’라는 기사가 실린다. 총리대신 이완용, 중추원 고문 이지용을 비롯한 대신들은 회합을 위해 주연을 열었고 거기에는 화투가 결코 빠지지 않는 일본 셀레브 따라잡기의 일환으로 판이 벌어졌다.


지금으로서는 도박을 광고하는 그런 기사가 왜 실렸는지 이해할 수 없겠으나 자칭 셀레브였던 친일파의 우두머리가 새로운 놀이문화를 즐겼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그 이전에도 이완용의 집, 산정에서 화투판을 벌인다는 기사는 버젓이 신문에 실린 바 있다.

한국에 그 정도로 하나후다(花札)가 유행하며 화투라고 이름까지 바뀌었을 때는 그 하드웨어를 제작하여 보급할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이야 인쇄기술이 발달되어 플라스틱으로 찍어내면 되지만, 당시에 그 많은 화투는 도대체 어디에서 만들어 냈을까?


현대에 들어오며 세계적인 게임기 업체로 명성을 날렸던 일본의 닌텐도는, 본래 교토에서 하나후다(花札)를 제조, 판매하던 ‘닌텐도 골패’사에서 시작된 회사였다. 1886년 골패의 제작, 판매가 합법화된 것을 계기로 공예가로 이름이 높았던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초대 닌텐도 대표이사)가 1889년 닌텐도의 전신인 야마우치 후사지로 상점을 교토에 설립해서는 하나후다(花札)를 비롯해 백인일수 등을 판매했다.

야마우치는 교토 심장부에서 몇 명의 직원들과 함께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에 부드러운 점토를 섞은 후 그 위에 딸기 같은 과일이나 꽃잎 등을 재료로 만든 잉크로 그림을 그려 넣어서 카드를 만들었다. 닌텐도 카드는 교토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중에서도, 겉면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그림이 새겨진 ‘대통령’ 시리즈가 특히 인기였다.

이러한 닌텐도의 승승장구는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가로막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며 제동이 걸렸다. 초기 몇 년간 잘 나간 덕에 이미 교토에는 하나후다(花札) 카드가 없는 집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 후 수요가 급감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수요가 절대 줄지 않을 곳, 바로 도박장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연기가 자욱한 일본 도박장에서는 큰돈이 걸린 게임이 벌어지면 새로운 판이 시작될 때마다 영화 타짜에서 이미 당신이 본 것과 같이, 매번 새 카드를 사용했다. 야마우치는 여기에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70여 곳의 도박장과 계약을 맺었다. 각 도박장이 매주 수백 개의 카드를 소비하면서 닌텐도의 수익은 급증했다.

야마우치는 이 시점까지 자신이 만든 카드를 닌텐도 가게에서만 판매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이름을 널리 알리려면 더 많은 고객과 만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때마침 일본 재무부가 운영하는 국영 독점 기업인 일본 담배 소금 공사와 계약이 성사되면서 닌텐도 카드를 널리 보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계약 내용은 담배 소금 공사에 소속된 전국의 담배 가게에서 닌텐도 카드를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수십 년간 엄청난 성공을 이어간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1929년 은퇴하면서 사위에게 닌텐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그 사위가 19년 후, 1948년 뇌졸중이 발병하면서 은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고, 당시 아들이 없던 그가 와세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던 손자에게 회사를 물려주었다. 손자는 개혁을 감행했다. 회사를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임명한 모든 관리자를 해고한 후 닌텐도의 보수적인 과거를 청산하고 진취적 미래를 여는 데 도움이 될 젊은 야심가를 대거 채용했다.

닌텐도의 포켓몬 캐릭터 하나후다(花札)

그가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하며 광적으로 노력한 덕에 닌텐도는 곧 현대화되었다. 1951년에는 교토에 있는 닌텐도 전 제조공장의 생산 속도를 크게 높였고 1953년에는 일본 최초로 플라스틱으로 코팅한 놀이용 카드를 제작했다. 그것이 한국의 현대화된 화투 제작의 탄생과 맞물리게 된 것이다. 1959년은 닌텐도가 ‘월트 디즈니사(Walt Disney Company)’와 저작권 사용 계약을 처음 맺고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닌텐도는 그 계기를 통해 아동용 시장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얘기가 너무 삼천포로 새기 전에 다시 이토 히로부미에게 하나후다(花札)를 선물 받은 구한말의 조선으로 돌아와 보자.


조선의 신문에서는 고관들이 심심치 않게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화투판을 벌이고 그로 인해 가산을 탕진한다는 이야기는 나왔지만,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거나 닭창차에 수갑을 차고 얼굴을 가리며 들어가는 기사는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화투를 국가차원에서 엄하게 금지했다던가 하는 기사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건대, 당시 화투는 그다지 엄격하게 금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나라가 망해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노름을 감시, 감독해야 할 고위층들이 먼저 나서서 화투놀이를 하는데 누가 누구를 나무라고 금지시켰을 것인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바로 이름이다. 일본의 하나후다(花札)는 등장 초기부터 그다지 높은 도박성향을 띤 놀이가 아니었다. 이러한 경향은 메이지 시대에도 비슷했다. 그러나, 승부욕 강한 것이라면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국에 넘어오면서 하나후다(花札)는 화투(花鬪)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이름이 바뀌면 본질도 바뀐다.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여자라고 연기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화투(花鬪)는 이 땅에 들어오면서 전편에서 살펴봤던 고대 신라부터 명맥을 이어온 노름의 대명사 수투(手鬪), 즉, 투전의 대용품으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화투의 불행은 이때부터 잉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안의 그림 모양은 수입된 지 100년 남짓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거의 바뀌지 않고 비슷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거의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쇠퇴한 반면 한국에서는 놀이문화로서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 <만엽집(万葉集)> 등의 상대 가집(上代歌集)에는 자연현상은 물론 꽃이나 새․ 동물 등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소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자연 소재를 미적 감각으로 선택한 경물 의식의 결과, 계절의 변화와 그에 따른 경물에

의해 자연 소재도 유형화 현상을 보여서, 봄에는 매화, 벚꽃, 버드나무, 여름은 귤, 병꽃, 가을은 싸리, 단풍, 겨울에는 동백, 매화 등 대체로 그 대상이 고정적으로 나타나고, 동물 소재도 봄에는 휘파람새, 여름은 두견새, 가을은 기러기처럼 고정화, 정형화되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자연 소재는 습관적으로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현상이 나타나서, 학과 소나무(鶴と松)라든가 매화와 휘파람새(梅とうぐいす)처럼 꽃이나 풀, 나무 등이 새나 곤충 동물들과 자연스럽게 짝을 이루는 이미지의 유형화 현상을 볼 수 있다. 한문학과 도교, 불교 등의 외래 종교의 영향 아래 ‘花·鳥 의식(여기서 花는 풀, 나무를 포함한 ‘花類’로 통칭되며, 鳥는 곤충, 동물을 포함한 ‘鳥類’로 통칭된다)’을 기반으로 사계(四季)문학이 성립하여 ‘화조풍월(花鳥風月)’이라는 일본인 특유의 미적 자연 전통을 배양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물 의식은 헤이안(平安) 시대의 귀족사회에 접어들어 비로소 계절감이 확립된다. 특히 만엽(萬葉) 후기나 팔대집(八代集)에 오게 되면, 미적 경물이 중심을 이룬다.

 

따라서 하나후다(花札)에 나타난 ‘화조풍월花鳥風月)’은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자연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 못해 생활화되어 있다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키요에 화풍으로 재탄생한 마블 히어로

그러므로 일본의 전통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만엽집(萬葉集)><팔대집

(八代集)>, <인고금집(古今集)>, <신고금집(新古今集)>, <후선집(後撰集)>, <습유집(捨遺集)>, <후습유집(後捨遺集)>, <금엽집(金葉集)>, <사화집(詞花集)>, <천재집(千載集)>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하나후다(花札)가 어떤 원리를 가지고 어떤 의도를 반영하며 만들어졌는지를 명확하게 해석해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일본 고전 시가 속의 ‘전통문화 기호’들은 에도(江戶) 시대의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화풍과 결합하여 18세기 하나후다(花札)속 그림의 원형을 갖추기에 이르게 된다. 그중 8월과 12월을 제외한 열 달에는 단(短: 한국인들이 ‘띠’라고 너무도 당연하게 표현하는 바로 그것)이 있는데, 이 ‘단’은 시가詩歌)를 적을 때 사용하는 단자쿠(短冊; 36cm×6cm)를 의미하며 시를 짓는(詩作)의 풍류를 상징한다.

 

그리고 1월, 3월, 8월, 11월, 12월의 다섯 달에만 광(光)이 배치된 것은 1월의 정월(正月), 3월의 꽃구경(花見), 8월의 중추절(お盆), 11월의 어린이를 위한 대표적인 명절인 시치고산(七五三), 12월의 세모歲暮) 등 일본의 대표적인 명절이 들어가 있다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후타(花札)는 4장이 한 달을 구성하면서 “광(光), 열(閱), 단(短), 피(皮)”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때 광은 다이묘(大名), 열은 무사계급, 단은 관료계층, 피는 평민을 뜻하며 에도(江戶)시대의 신분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1월부터 12월까지 총 4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개론적인 설명은 이쯤으로 해두고,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12개월에 대한 분석을 개월별로 나누어 그 의미가 어디에서 왔고, 본래의 일본 하나후타(花札)와 한국의 화투(花鬪)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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