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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8. 2021

화투, 과연 어디로부터 온 건지 알고 계셨나요?

화투, 꽃들의 전쟁 - 그 기원에 대하여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95


요즘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가 뜨겁다. 그 안에 등장했던 게임들이 새로운 놀이를 찾아 헤매이던 전세계의 SNS 세대들 사이에서 급속히 전파되면서 그 놀이를 따라 하겠다고 놀이의 재생산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전에 <오징어 게임>을 분석 비평한 글 한 편을 통해, 그 안의 게임과 그 드라마가 얼마나 창조 의식을 갖지 않고 적당한 짜깁기와 카피로 점철한 작품인지 적나라하게 파헤친 바 있다.

https://brunch.co.kr/@ahura/304


하지만, 오리지널리티와는 관계없이 잘 카피해서 오리지널이 누려야 할 게임판세를 우리나라에서 독차지할 수 있었다면, 다음에도 또 그런 짜깁기로 성공할리 만무하다는 깨우침만 있어, 제대로 된 우리 창의성으로 다듬어진 작품을 통해, 이왕 우리에게 온 흐름을 만든 판, 우리의 기치를 올릴 계기로 삼는 것은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이다.

 

화투 이야기한다고 해서 클릭했더니만, 도대체 또 무슨 엄한 소리를 하려고 <오징어 게임>으로 포문을 여는 것이냐고 살짝 짜증을 내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워워~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 잠시 그 짜증, 넣어두시라.


화투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만 할 '흐름'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을 좀 하고자 꺼낸 이야기이다. 이왕 공부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알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이제까지 화투에 대해 풀어 설명한 유튜브나 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글이나 말을 적당히 짜깁기해서 소개하는 가벼운 글쓰기 따위 하겠다고 내가 이 귀중한 시간을 여기에 할애했을 거라고 생각지 않고, 믿어주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이제까지 언급되었던 자료들에서 당신이 전혀 보지 못했을 이야기들을 해주려고 한다.


지금까지 화투에 대해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대개, 화투가 일본의 하나후다(花札)의 형태와 워낙 유사하기 때문에 그것의 의미를 그저 ‘4장씩 48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12개월을 상징하며 빗댄 일본의 놀이문화’라고 정의내리고 시작한다.

근대화된 하나후다(花札)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근대화된 하나후다(花札)를 보면 그 그림의 형태까지 우리의 현재 화투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긴 또 모른다. 누군가 <화두>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만들면, 일본에서 하지 않는 게임이니까 그것도 우리 문화라고 우기는 어이없는 녀석들이 튀어나올지)


그런데 말이다.

거꾸로 되지 않았나?

 ‘하나후다(花札)’라는 게임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본래부터 민족적으로 창의성이 퐁퐁 넘치는 일본애들이 자신의 힘으로 그 어려운 48장이나 되는 화투장을 계획하고 그 안을 충실하게 자신들만의 문화콘텐츠로 채웠을까?


질문에서 눈치챘겠지만, 그렇지 않다.

원조? 원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지널리티가 하나후다(花札)에 있지 않고 다른 카드놀이에서 영향을 받아 일본화된 게임이라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본래, 문화인류학적 특성상, 그리고 게임이라는 놀이문화가 갖는 특성상, 기본이 되는 놀이의 특성은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화투에 가장 가깝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일본의 하나후다(花札)에 대한 재미난 분석은 잠시 다음회로 넘기고, 도대체 그럼 그 하나후다(花札)는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후다(花札)는 ‘와카’라고 불리는 일본의 전통 시를 조개나 종이에 그려 넣어 짝을 맞추던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전통적인 짝맞추기(合わせ) 놀이와 서구 카드가 만나 탄생했다. 유럽인들이 향신료, 도자기, 은, 직물 등을 구하기 위해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해 가던 1543년, 포르투갈 상선이 규슈의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표류하게 되면서 다양한 서양 물품들이 일본에 유입되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유럽산 카르타

장시간 배를 타야 했던 포르투갈의 선원들이 즐겨하던 카드놀이 ‘카르타(Carta; ‘카드’를 포르투갈어로 이렇게 부른다)’가 이때 전해지면서 하나후다(花札)의 형태가 탄생하게 된다.


‘카르타(Carta)’의 기원과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막부의 눈을 피하려고 일본의 우타(歌)라는 고전시문학과 일본화의 주 소재인 꽃과 새, 자연물, 즉, 화조풍월의 세계를 합쳐 만든 것이 ‘하나 카르타(花カルタ)’라는 이야기들을 겁없이 하고 있지만, 현존하는 하나후다(花札)의 모습과 ‘하나 카르타(花カルタ)’의 그림만 비교 해보더라도 그 추론이 얼마나 엉성한지 금새 확인할 수  다. 특히, 당시 하나후다의 가격이 고가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관련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를 반증하듯 초대 총리대신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이토 히로부미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총리대신의 카르타’에는 에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48장의 화투 중 12장에 일본 전통 시 와카가 삽입된 형태로 제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후다(花札)

그렇다면, 당시 유럽에서 즐기카드 문화인 포르투갈 선원들이 즐기던 카르타(Carta)가 전래된 것은 일본 뿐이었을까? 당시 우리나라에 포르투갈 배가 표류되거나 쳐들어온 일은 없으나, 그 넓디넓은 중국에 닿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누가 원조인지 확인할 필요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점잖게 앉아서 하던 노름 문화의 영향과 맞물려 중국을 휩쓸었던 노름의 원조들이 등장하신다.

중국의 마조(馬弔), 골패(骨牌)와 조선의 수투(數鬪)가 서로 화투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동양 노름 문화의 원조격으로 등장한다. 당연히 이 노름 문화들은 당시 시대의 골칫거리로 수많은 문헌과 기록에 등장한다. 여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하나후다(花札)의 성립까지, 그들은 크게 작게 카르타(Carta)를 원조로 하여 파생된 놀이 문화이다. 심지어는 역으로 카르타가 이 동양의 게임들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설도 학계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1950년대, 자신들의 놀이 문화였던 하나후다(花札)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전된 바 있다. 당시의 연구를 살펴보면, 하나후다(花札)의 원류는 1350년경 이탈리아에서 놀이로 유행했던 카르타(Carta)라고 보았다. 그것이 포르투갈을 통해 총포와 함께 무로마치 시대에 일본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의 연구에서는 그 내용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그 카르타(Carta)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플레잉 카드(PlayingCard)가 아니라 타로(Tarrot)였다고 주장하였다.

현존 최고(最古)의 타로카드

2000년대 들어서는 연구자들이 다시 플레잉 카드라고 1950년대 연구를 뒷받침하는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주장하는 것을 봤을 때,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카드 게임이 한 종류가 아니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즉, 일본 연구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연구 자료들에 의하면, 16C 중반부터 일본에 유입되기 시작한 카르타는 남유럽산 한 종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깊이 들어가면 화투로부터 너무 멀리 날아간다고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 있으니, 유럽산 카르타의 기원에 대해서는 당시의 동방에 해당했던 페르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설과, 중국 황제의 후궁들이 놀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마조(馬弔)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설까지만 설명하는 것으로 정리하자.

 

여기서 말하는, 마조(馬弔)는 약 B.C. 2000년경 중국 우(禹) 임금 때, 궁중에서 ‘파림(巴林)’이라는 패를 사용하여 놀던 것이 시초다. 마조(馬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으나 중국에서 발생하여 세계로 퍼진 놀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으나, 이후 조선시대에 유입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규경의 『오주연 문장 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마조를 간략화한 골패에 관한 내용이 있고,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도 이에 대한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기록 이전에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마조(馬弔)

또한 기록 안에 마조(馬弔)를 간략화한 골패라든가, ‘마조강패(馬弔江牌)’라는 연구(連句)로 마조와 골패를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조와 골패는 비슷한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골패 모양은 오늘날의 마작과 비슷하다.

 

이처럼 마조와 비슷한 놀이로 인식하고 있던 골패(骨牌)는 백낙천(白樂天)이 하늘에 떠있는 27개의 별을 본 따서 만들었다는 설과 송(宋)의 사마광(司馬光)이 만들었다는 설 외에, 『정자통(正字通)』(1120년)에 따르면 송(宋)나라 때 아패(牙牌)와 계점(計點)으로 별자리 배열을 살피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골패(骨牌)

여기서 반전의 소식 하나. 오히려 유럽산 카르타가 조선의 수투(數鬪)에서 기원하였다는 연구도 서양의 학자들에게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B.이네스(B.Ines)는 『타로(Tarrot)』에서 「조선의 뒷면에 화살 도안이 있는 80장 1조의 카드」에 주위를 집중하며 동방에서 귀환한 병사가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라고 하였다. 아쉽게도 이 연구는 뒷받침할만한 근거자료가 박약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 C·P.휴그렙(C·P.Hugh Grape)은 『플레잉 카드의 역사』에서 조반니.코페르트오(Giovanni Coperto)라는 연대기 편자가 카드가 전해진 과정을 서술한 것을 언급하며, 조선의 카드(수투) 도안에 그려져 있는 화살 모양이 플레잉 카드 도안과 많이 닮아있음을 지적하면서, 카르타(Carta)에 관한 최초 서술은 14C 말경의 유럽이라고 추정하였다.


이 연구를 이어, P.아놀드(P.Arnold)는 『도박 백과사전』에서 화살 그림을 그린 갸름한 카드, 곧 수투가 플레잉 카드의 시조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조선의 카드 기원설에 대한 근거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놀이를 연구 조사한 브루클린 박물관장 스튜어트 컬린의 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스튜어트 컬린은, 19C 말경 저술한 저서를 근거로 한국의 수투가 11C경 서양에 전파되어 카르타가 되고, 이것이 일본에 유입되어 하나후다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4세기 이전부터 도박계의 한류가 있어, 고대 신라시대 나온 수투라는 노름이 서양의 카드에 영향을 미쳤고, 그 유럽의 카르타가 다시 일본의 하나후다에 영향을 미쳐 탄생하게 하였고, 그 하나후다의 영향을 받아 현재 한국의 화투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어마어마한 '고대 한류 뫼비우스 띠식' 연구의 결과를 지금 당신은 보고받고 있는 것이다.

수투(數鬪)

수투(數鬪)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잠시 소개하자면, 사극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노름 ‘투전’으로 당신들이 들어봤음직한 그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한국 도박이 바로 수투(數鬪)이다.

이 수투는 당(唐)대 중기의 엽자희(葉子戱)를 모방한 것이라고도 하고, 원(元)나라 때 제작된 마조가 임진왜란 당시 명(明)나라 군사를 통해서 유입된 것이라는 『조선상식(朝鮮常識)』의 기록도 있다. 또 다른 자료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희구변증설(戱具變症說)에 따르면, 조선조 숙종 때, 장현(張炫, 당상통역관(堂上通譯官))이 숭정(崇禎)말에 연(燕)나라에서 가져온 마조 패 120개를 80개로 간략화한 것이라고 하는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마조와 골패를 수투(數鬪)의 도안 형태와 비교하면 수투가 모티브를 중국의 것에서 얻었다고 보기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다만 놀이의 방식이 골패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던 놀이를 재정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 영향관계를 표로 한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대표선수로 언급되는 수투(數鬪) 패의 구성을 살펴보면 80장의 목 앞면에 사람(人), 물고기(魚), 새(鳥), 꿩(雉), 노루(獐), 별(星), 토끼(兎), 말(馬) 문형 여덟 종류와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문자도 기호도 아닌 난이한 형태를 먹으로 흘려 적어 끗수를 표시한다. 그리고 각 수투 목 뒤에는 초서(草書)로 ‘낙엽(落葉)’이라고 휘갈겨 써서 이를 펴 들어도 상대는 내용을 알 수 없다.


수투(數鬪)의 도안과 형태가 비슷한 일본의 도박계통 지방 후다(札)는 아래 사진의 데모토비키(手元引き)가 있다. 데모토비키와 같은 가부계통의 하치하치(八八)는 데모토비키 도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이지만 현재의 하나 후다 도안 형태와는 아주 흡사하다. 그러니 이 물고 물리는 영향관계에서는 누군가가 우위를 점한다고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데모토비키(手元引き)

현재 도안과 거의 흡사한 하나후다가 만들어진 것은 1818∼1843년(文政初~天保14)으로 추정되며,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투와 거의 비슷한 모양의 하나후다 도안은 쇼와(昭和)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전술했던 바와 같이, 이 하나후다의 도안이 현재의 한국 화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분명한 사실에 대해서는 다음회에 하나후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세세하게 뭐가 닮았길래 똑같다고 하는지, 그리고 정작 지금 우리의 화투가 한국적인 놀이문화로 우리만의 것으로 변모된 것을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화투, 말이 참 예뻐요,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

                                                    영화 <타짜> 중에서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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