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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30. 2021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 1월

소나무에 학 - 松に鶴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03


총 12개 월의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의 그림 분석에 들어가기 전에, 전반적으로 몇 가지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왜 이렇게 그림의 느낌이 달라졌는가에 대해 먼저 이유를 살필 필요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제작비 절감에 있다. 두 나라의 패에 나온 이미지를 일견 하더라도 하나후다(花札)에 비해 한국의 화투(花鬪)가 이미지가 단순화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한국의 화투(花鬪)

왜 한국의 화투(花鬪)는 이미지가 단순화되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미지 단순화의 원인은 조판에 있다. 원래 일본 화투(花鬪)의 조판은 적, 흑, 녹, 황, 자(보라)의 5색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에 유입될 때 보라색 판을 청판-흑판으로 적절히 로컬 라이징하고 녹판은 아예 넣지도 않고 빼버리고 흑판이랑 합쳐서 4판으로 인쇄를 하는 과감한 단순화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그림의 디테일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하나후다(花札)

결국 비용 절감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고는 하나, 일본의 세시풍속이나 그 의미를 알 턱이 없는 업자들이 닌텐도에서 공들여 그림의 디테일을 버리지 않는 일본스러움을 과감히 무시해버리고 대강 모양만 보면 되지 않냐는 식의 제작을 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왜 한국의 화투(花鬪)에만 ‘광(光)’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나?

 

일본 화투(花鬪)의 광(光)은 글씨가 적혀 있지 않고 그림만 있지만, 한국 화투(花鬪)에서는 한자로 광(光)이라 적힌 동그란 표시가 구석에 들어간다. 그래서 일본 화투(花鬪)는 광(光)이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일부 있긴 하지만, 표시만 없을 뿐 일본 화투(花鬪)에도 광(光)이라는 이름과 기능이 분명히 있다. 하나후다(花札)를 가지고 노는 일본인들이 굳이 표시를 하지 않아도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표시를 하지 않았던 것을, 그 안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한국인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 매뉴얼격으로 표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 학습(?)의 결과로, 한국 화투(花鬪)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하나후다(花札)를 가지고 놀이를 하더라도 일본인들처럼 광(光)의 의미는 몰라도 그것이 광(光)인 것을 알고 있다는 웃픈 전제가 성립한다.

 

‘띠’에 적혀있는 문구가 왜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며, 없던 청단은 왜 생겼나?

 

전술한 바와 같이, 조판의 단순화로 인해, 색상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 가장 웃픈 현실은 새로운 게임의 룰까지 만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단(短)이라고 하는 띠의 변화이다. 원래 하나후다(花札) 에는 한국인이 홍단(紅短)이라고 부르는 띠에는 ‘あかよろし’나 ‘みよしの’ 같은 글자가 쓰여 있고, 청단은 아예 글자가 없었으며 심지어 원래 보라색이었다.


즉, 홍단이나 청단은 원래는 없었던 단어이고, 그림에 나와 있는 띠는 탄자쿠(短冊, 단책)라는 것이었는데, 한국의 4색 조판으로 변형되면서 푸른색이 나오면서 청단(靑短)이라는 말이 새로 생기게 된 것이다.

 

화투(花鬪)는 플라스틱에 뒷면에 붉은색밖에 없는데, 하나후다(花札)는 왜 다른가?

하나후다(花札)

일본은 주로 종이로 만들어서 두껍고, 패 테두리와 뒷면은 붉은색 또는 검은색이다. 그에 비해 한국 화투(花鬪)는 플라스틱 재질이며, 패의 뒷면이 붉고 쥐기 쉽게 오돌토돌한 질감이 들어가 있다. 이 역시 오래 사용하고 구기거나 도박을 하게 되면서 많이 상하게 되면 단 몇 개가 상해도 전체가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이유 때문에 역시나 판매를 위해 비용을 최소화 하는 기계식 작업으로 이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


반면, 일본의 하나후다(花札)는 아직도 종이 내에 석회가루를 넣어 만드는 전통적 방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며(최하 1000엔대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격렬하게 내려치는 한국의 방식으로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팔이 저릴 정도로 내려치다 보면 종이가 터져서 안의 석회가루가 터져 나오는 경우가 있다.

 

하나후다(花札)는 없던 특수패라는 것이 왜 화투(花鬪)에만 있는가?

 

구한말에도 없던 특수한 패들이 화투(花鬪)가 전문적인 도박화되면서 판돈을 크게 키우기 위해 만든, 일종의 ‘폭탄제’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화투(花鬪)에만 있는 한국인의 성향에 맞춤 개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월

常磐(ときは)なる松(まつ)のみどりも春(はる)くれば今(いま)ひとしほの色(いろ)まさりけり
변치 않는 솔의 푸름도 봄이 오니 이제 더욱 짙어지네.

 

매월마다 상징하는 일본 고전문학의 시가가 있기 때문에 먼저 해당 월을 상징하는 시를 소개한다. 위 시구는 913년 경에 설립된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이란 칙찬(勅撰)가집(歌集)에서 귀족이자 가인(歌人)인 미나모토노아소미 무네유키(源朝臣宗于)가 읊은 시에서 따왔다.

 

1월을 봄이라고 여기는 민족이 있을 리가 없다고 의아해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은 오래전부터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후다(花札)의 모순이 발생한다. 동지를 11월에 넣는 동아시아 전통식 태양 태음력에서는 절기상 양력 1월에 입춘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력을 사용했던 일본에서는 1월이 절기상 봄으로 간주되는 모순된 코미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광에 그려져 있는 것은 동물로는 ‘학’, 식물로는 ‘소나무’, 사물로는 ‘해’가 있다. 해는 ‘새해 일출’을, 학은 ‘장수와 가족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마지막으로 소나무는 정초에 집 앞 대문에 세워두는 장식물로 이를 '가도마츠[門松]'라 한다.


이는 일본의 대표적 세시풍속이기도 한데, 설날부터 1주일 동안 조상신과 복을 맞아들이기 위해 대문 양쪽에 소나무를 걸어두고 학 등 경사스러운 그림의 족자를 걸어둔다는 일본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을 나타낸다.


화투(花鬪)에 그려진 소나무 문양의 표현 기법은 일본의 전통의상이나 전통극인 노오(能)의 배경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문양 양식이기도 하다. 한국의 화투(花鬪)는 도저히 이것을 소나무라고 확인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그 형태만 남아버렸다.

 

그런데 왜 소나무와 학이 같이 그려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실제로, 학(鶴)은 발가락의 구조와 몸무게 등으로 소나무를 올라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소나무에 올라타고 있는 것은 사실 황새로 봐야 한다는 일설이 나온 적이 있었다. 옛날의 화가가 황새를 학으로 착각했다는 이설도 있었다.


황당한 지적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본의 고어(古語)에는 학(鶴)이라는 의미를 쓰려고 할 때, ‘츠루(つる)’와 ‘타즈(たづ)’의 2가지 단어를 모두 사용했고, 실제 시(詩)에서는 ‘타즈(たづ)’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타즈(たづ)’란, 대형 물새(水鳥)를 가리키며 학, 황새, 백조, 백로 등이 ‘타즈(たづ)’의 총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 한 방의 논리적인 근거로 인해 명확하게 학(鶴)을 의미하는 용어로는 ‘츠루(つる)’가 맞다는 것으로 이미 종결된 바 있다. 왜냐하면 2월과 3월로 이어지는 하나후다(花札)의 사용되는 단어의 말음(마지막 발음)으로 말잇기 놀이처럼 이어가는 전통적인 센류(川柳)의 방식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나무를 의미하는 마츠(松)의 말음을 이어서 학을 의미하는 츠루(鶴)로 연결시키는 센류(川柳)의 전통기법을 성립시키려면 ‘타즈(たづ)’는 올 수가 없기에 황새론은 그저 뭘 잘 모르는 도박꾼들이 ‘~카더라 일설’로 떠들어댄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학(鶴)을 신성시하게 된 그림의 문화적 근거이다. 이는 중국으로부터 온 회화(繪畵)의 관습이 일본 화풍에 영향을 끼치면서 본래 중국에서 의미하던 불로장수의 도가사상 그대로 옮겨왔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학은 조류 중 제일의 지위로 여겨 ‘일품조(一品鳥)’라고도 불릴 정도의 신선이 타고 다니는 고귀한 새였다. 실제 <일품당조(一品当朝)>라는 회화작품을 보게 되면, 학이 파도가 밀려오는 바위 위에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을, 출세를 의미하는 경사스러운 그림이라는 해설을 붙이곤 한다.

그리고 소나무에 올라타지도 못하는 학을 왜 같이 그렸는가에 대한 1월 하나후다(花札)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으로 方西園의 <松鶴遐齢圖>가 지목된다.

'송학장춘도(松鶴長春圖)'라는 별칭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에서는, 학이 소나무에 자리 잡은 모습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장춘(長春)’은 장춘화(長春花), 즉, 월계화(庚申薔薇;こうしんばら)라고 불리는 일 년 중에 몇 번이고 꽃이 피는 상록수로, 여러 번 꽃이 피는 것에서 인생에서도 몇 번이고 또 피고, 또 피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중국에서도 선호되는 나무로 해석된다.

‘하령(遐齢)’은 단어 그대로 ‘장수불로(長寿不老)’를 의미한다.


하나후다(花札)의 도안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다양한 경위에서 변천하여 갔는데, 에도 시대 중기부터 회화의 세계에서는 모방의 시대가 이어지고, 새로운 모티브를 찾는 일도 적어지거나 거의 없어지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이미 완성된 테마의 물건을 자신의 작풍(作風)에 의해서 개성을 내면서 그리는 화가가 많았다. 그들의 모티브는 대개 중국에서 넘어온 그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한다.

소나무의 경우는, 중국의 신선사상과는 또 별도로, 전국 시대(戦国時代)에 오면서 농성전(籠城戦)에 대비해, 소나무 껍질과 열매가 식용이 된다는 사실을 활용하게 되면서 성의 뜰에 소나무를 심었고 그것이 일본화되면서 분재로 예술화되는 변화과정을 겪게 된다.

소나무에 적단(松に赤短)

하나후다(花札)에서는 띠에 일반적으로 ‘あのよろし’라는 다섯 글자가 적혀 있는데, ‘明(あき)らかに良(よろし)い’라는 의미로 ‘분명히 좋다’라는 뜻이다. か 자리에 있는 게 얼핏 보면 の처럼 보이는데, 사실 可를 초서화해서 쓸 경우 이렇게 'の'의 위에 점이 찍혀 있는 것처럼 쓰는데, ‘か’의 또 다른 형태로 ‘헨타이 가나’라고 하는 방식이다. 띠 안에는, ‘一月’이나 ‘宇良す’, ‘うらす’ 등이 적혀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잘 보면 한국의 홍단에도 ‘し’를 길게 늘여 쓴 것처럼 보이는 글씨체나 심지어 미쳐 원본에서 지우지 못한 ‘し’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1월의 경우는, 모두 복과 건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정서를 나타내며, 유일하게 하나후다(花札)의 ‘전통 문화 기호’ 화투(花鬪) 일치하는 달이기도 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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