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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2. 2021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 4월

등나무에 두견새 - 藤に不如帰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13


“わが 宿(やど)の 池( いけ)の 藤波(ふじなみ )咲(さ)きにけり 山郭公(やまほととぎす) いつかき鳴(な)かむ”

 

“내 묵는 곳 못의 등나무꽃 물결 피어 일렁이는데, 묏 두견새 언제 와서 울려나.”

심지어 이 사진에도 첫장을 제외한 화투는 뒤집혀 있다.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서 여름을 대표하는 노래로 꼽히는 이 노래 때문이다. 4월인데 왜 대표적인 여름 노래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일본의 양력 변화이 뒤죽박죽되는 바람에 섞인 음력의 의미로 보면 음력으로 4월은 이른 여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 말이면 일본에서 등나무 꽃 축제가 열리기 시작한다. 등나무는 일본에서 각종 행사 시 가마에 장식하거나 가문의 문양으로 쓰이는 등 친숙한 식물이다.

일본의 전통 시(詩)에는 계절마다 쓰이는 시어인 계어(季語)가 있는데, 등나무는 초여름을 상징하는 계어이다. 실제로 <만엽집(萬葉集)>에서는 4516수와 <팔대집八代集> 9502수중에 109수나 등장하는 화류(花類)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이걸 ‘흑싸리’로 생각하기 때문에 줄기가 아래에서 위로 솟은 모양으로, 즉 거꾸로 든다. 그렇기 때문에 두견새가 졸지에 배면비행을 하는 기행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이 패는 원래 등나무의 잎과 꽃이 아래로 축 늘어진 모습을 본뜬 것이고, 한국 화투에서는 인쇄에서 연보라색이 빠져서 이게 도저히 꽃으로 안 보이는 것이다.


때문에, 7월의 싸리와 똑같이 배치하곤 하지만, 원래 의미라면 이 식물은 ‘등나무 꽃’이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려지게 배치되어 7월의 싸리꽃과 상하 대칭을 이루는 것이 원래의 정위치 되시겠다.

4월의 등꽃과 7월의 싸리. 왼쪽부터 차례로 20세기 전반의 하나후다, 현재의 닌텐도 하나후다, 우리 화투, 하나후다와 트럼프의 결합 카드

그리고 여담이긴 하지만, ‘흑싸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빗자루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의 색깔은 녹색이며, 가을철에 그것을 베어 햇볕에다 말리면 갈색으로 변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싸리처럼 보이는데 검은색이라, 그것을 뭐라 부를지 몰랐던 한국인들이 노름판에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일본에서도 등나무(藤;ふじ) 대신에 검은 콩(黒豆;くろまめ)이라고 부르는 지방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절개가 없는 덩굴식물이라고 하여 등나무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고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러한 이유로, 4월의 패에 등장하는 화류(花類)는 등나무 꽃이고, 조류(鳥類)의 자리에 등장한 새는 두견새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될 또 한 가지 사물이 바로 붉은 초승달이다. 놓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달밤의 두견새는 ‘원조(怨鳥)’라고 하여 불길한 징조를 상징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민화에서조차 두견새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에서 두견새는 유명한 일화도 있는 새로서, <만엽집(萬葉集)>과 <팔대집(八代集)>에 무려 399수나 등장할 정도로 가장 빈도수가 높은 조류(鳥類)이다.

 

그렇다면 한밤의 두견새는 어디에서 끌어온 소재인가?

두견새는 ‘접동새’라고도 하는데, 한자어로는 두견(杜鵑) 외에도 자규(子規)·두우(杜宇)·두백(杜魄)·망제(望帝)·불여귀(不如歸)·귀촉도(歸蜀道) 등으로 불리어 애상을 상징하는 새로 시문에 많이 인용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흔히 소쩍새라고도 되어 있으나 소쩍새는 올빼미과(두견새는 두견이과)에 속하는 새로 두견새와는 생김새가 다르다.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不如歸去(불여귀거)’라고 들리기 때문에 불여귀새라고 부르고, 하나후다의 시에도 ‘不如歸(ほととぎす)’라고 일본어 독음을 붙여 그래도 읽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 그 존재가 보이는 것은 《사기(史記)》 〈蜀王本紀(촉왕본기)〉에서이다.


먼 옛날. 중국 대륙의 촉(蜀: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문산(汶山)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 내려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기이하게 생각되어 그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과 전답을 주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의 모든 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릴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충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 모두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고 정권을 휘둘렀다.

그때에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이에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 일을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앉아 나라에 관한 정사는 전연 관여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로 나날을 보내는 사이에 망제의 장인인 별령은 자기의 마음과 뜻대로 정사를 주무르다 못해 역모를 꾀하여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후일 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라고도 하고, 두우(杜宇)라고도 하며, 귀촉도(歸蜀途) 혹은
망제혼 (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넋이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 전설로 인해, 두견새는 ‘촉나라 망제(望帝)의 넋’이라고 한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밤마다 이산 저산을 옮겨 다니며 처절하게 운다는 것이다. 두견새는 밤에 우는 새다. 그것도 깊은 한밤중에 삼라만상이 잠들어 있는 그 시각에 홀로 깨어 우는 것이다.


길게 여운을 그리며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 처량하고 구슬픈 울음 속에는 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서러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본래 중국에서 유래한 이 두견새가 등장하면 반드시 짝을 지어 등장하는 꽃이 있다. 당연히 일본에서 등장한 등나무 꽃은 아니다. 바로 진달래꽃이다.


두견새는 울 때마다 피를 토하고 그 피를 또 도로 삼킨다고도 한다. 두견새가 토해낸 그 원한의 피가 진달래 꽃잎에 떨어지면 그 꽃잎은 빨갛게 물이 든다고 한다. 또는 한 번 울 때마다 한 송이씩 빨갛게 피어난다고도 한다. 두견새가 토한 피로 물들여진 꽃, 그래서 다른 이름으로 ‘두견화’라는 별칭같이 붙여졌다.

두견새와 두견화는 이와 같이 피로 이어진 인연이기에 두견화에는 두견새의 한이 서려 있고 두견새의 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원한의 상징이듯 그 피로 물들여진 진달래꽃도 정한(情恨)의 꽃으로 문학에 등장한다. 그리하여 두견새와 진달래꽃은 서로 짝이 되어 오랜 세월을 두고 시의 소재가 되어 수없이 읊어져 왔다.

 

一自寃禽出帝宮,

궁중에서 쫓겨난 원한의 두견새여

孤身隻影碧山中.

깊은 산중 외로운 신세 처량하구나

假眠夜夜眠無假,

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오지 않고

窮恨年年恨不窮.

해마다 짙어만 가는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

두견 울음 그친 새벽이면 산마루 달은 희미하고

血流春谷落花紅.

피눈물진 골짜기엔 떨어진 꽃잎 붉게 물들었구나

天聾尙未聞哀訴,

애달픈 하소연을 하늘은 어이 못 듣고

何奈愁人耳獨聽.

어찌 한 많은 사람에게만 들려 슬픔을 더하는고.

 

이 시는 《장릉지(莊陵志)》 실린 작품으로, 단종(端宗)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땅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 유배지에서 두견새의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다.


이러한 중국에서 온 정서는 현대시에까지 이어져 서정주의 〈귀촉도〉역시 촉(蜀)나라 망제(望帝)의 전설을 배경으로 임 없음에 통곡하는 청상(靑孀)으로서 망부(亡夫)의 한을 눈물겹게 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소개가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가면서 소재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일본스럽게 그 형태가 조금 바뀌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문학작품에서 이 소재를 찾아보면, 도쿠후지(德富盧花)의 소설로 유명했던 작품 불여귀(不如歸)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야나가와(柳川春葉)가 각색하여 연극으로 1901년 무대에 올리게 되는 작품이 바로 연극 <불여귀(不如歸)>이다.


이 내용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유명한 레퍼토리로서, 1901년 오사카(大阪)의 아사히좌(朝日座)에서 초연된 연극인데, 20세기를 맞으며 일본에서는 가부키(歌舞伎)를 ‘구파(舊派)’, 지금의 연극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신파(新派)’라 부르며 구분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눈물 짜는 신파’ 어쩌고 하는 단어는 모두 연기라는 식의 비아냥으로 일제 식민지에 들여온 일본 연극이 대개 그러한 내용이었기에 유래한 말이다.

한국에 번역된 소설 《불여귀(不如歸)》

실제로 일본에서 히트를 친 이 작품은, 일제 식민지 시기였던 1912년 3월, 문수성(文秀星)에서 처음 한국에서 공연된다. 이후, 여러 극단에서 레퍼토리로 채택되면서 한국에서도 유명해진다. 문수성 공연은 조일재(趙一齋)의 번안으로 <신혼여행궐수지장(新婚旅行蕨狩之場)>을 서막으로 <낭자임종(良子臨終)>까지 10막으로 구성되었다.

 

내용은, 육군 중장 가다오카(片岡)의 딸인 나리코(良子)는 계모 슬하에서 자라나 해군 중위 다케오(武男)에게 시집을 갔으나, 남편은 청일전쟁과 항해생활로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고 혼자 고독하게 지낸다.

이후 나리코는 폐결핵으로 몸이 쇠약해지자 남편과 절연을 결심하고 요양하게 되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요양지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나 이미 때는 늦어 그녀는 죽어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신파극 중 가정문제를 다룬 멜로드라마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신파극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중국의 설화에서 시작된 두견새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현대화되어 하나후다와 멜로드라마의 전형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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