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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3. 2021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5월

창포에 야츠하시 - 菖蒲に八橋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17


“唐衣(からころも) 着(き)つつなれにし 妻(つま)しあれば はるばる 來(き)ぬる 旅(たび)をしぞ 思(おも)ふ”

 

“중국옷 껴입듯 익숙한 아내를 두고 이 아름다운 꽃을 보니 멀리 떠나온 여정이 사무치도다.”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 권9에서 아리와라노아소미 나리히라(在邍朝臣業平)라는 일본의 51대 헤이제이 덴노(平城天皇)의 친손자 겸 생질이 읊은 시에서 유래하였다. ‘친손자 겸 생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버지인 아보노미코(阿保親王)가 자신에게 친고모인 이토노히메미코(伊都內親王)와 결혼하는 친족 간 형제 혼을 해서 그를 낳았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의 소설 《이세 이야기(伊勢物語)》 가운데 ‘아리와라노아소미 나리히라(在邍朝臣業平)’가 불륜으로 추방되어 동쪽으로 향하던 중 오늘날의 아이치 현(愛知県) 치류 시(知立市)의 ‘야쓰하시(八橋)’라는 곳에서 교토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이세 이야기(伊勢物語)》에서 야쓰하시는 “다리 여덟 개”라는 지명처럼 다리가 많이 놓여 있고 다리 사이사이에 창포꽃이 핀 곳으로 묘사된다. 미카와(三河)의 야츠하시가 5월에 완성되었고 다리를 완성한 여인이 죽어 붓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이치 현 치류 시는 지금도 붓꽃으로 유명하다.

운율은 '杜若(かきつばた)'이라고 부른 발음의 뒷부분 'かきつ'와 야츠하시(八ツ橋;やつはし)의 'やつ'를 맞춘 것이다.

실제 하나후다의 그림은, 제비붓꽃의 명소로 알려진 무량수사(無量寿寺;むりょうじゅじ)의 정원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난초라고 불리지만 실제 식물은 제비붓꽃으로 일본어로 카키츠바타(かきつばた, 杜若, 燕子花)라고 한다.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이다.


그림에 나오는 다리는 일본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야츠하시. 붓꽃을 구경하기 위해 정원 내 습지에 만든 산책용 목재 다리며, 3개의 작은 막대기는 목재 다리를 지지하는 버팀목이다. 일본인들은 이 목재 다리를 ‘야츠하시’라고 부른다.

식물은 제비붓꽃, 동물은 다리 끝에는 제비붓꽃을 감상하는 아리와라노아소미 나리히라(在邍朝臣業平)가 생략되었고 사물로는 야츠하시가 있다. 또 제비붓꽃을 뜻하는 카키츠바타와 야츠하시의 츠가 요운(腰韻)을 이룬다.

한국도 음력 5월 5일 단오에는 절기행사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속이 있었던 것처럼 5월에 창포가 나온 것은 음력의 절기에 오히려 더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앞서 설명했던 현재의 일본이 가진 태음력의 혼란 문제가 하나후다에도 반영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붓꽃이라고 말하면 잘 몰라도 요즘 세대들에는 ‘아이리스’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이 아이리스가 5월 제비붓꽃에 해당하는 꽃이다. 약간 종별 차이는 있지만 같은 붓꽃이다.

그 아이리스는 이탈리아에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이탈리아에 아이리스라는 미인이 있었다. 명문 귀족 출신으로 착한 마음씨와 고귀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로마의 한 왕자와 결혼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왕자가 병으로 죽고 만다. 홀로 된 아이리스에게는 청혼을 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 누구에게도 응하지 않고 항상 푸른 하늘만 마음속으로 동경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책길에 젊은 화가를 만났고, 그 역시도 아이리스를 사랑하게 된다. 화가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고, 결국 화가의 사랑에 감동한 아이리스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살아 있는 것과 똑같은 꽃을 그려 주세요.”

 

화가는 온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렸고, 아이리스는 그 그림을 본 순간 그 아름다운 자태에 감동했다. 하지만 이내 “이 그림에는 향기가 없네요.”라며 실망스러운 탄성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림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날개를 차분히 접고 꽃에 키스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아이리스는 감격에 차 눈을 반짝이면서 화가에게 키스했다. 그 이후 푸른 하늘빛의 꽃, 아이리스는 그들이 처음 나누었던 키스의 향기를 그대로 간직해 지금도 꽃이 필 때면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아이리스에 대한 프랑스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전한다.

 

아이리스 꽃이, 루이 7세(재위 1137~80)에 프랑스의 국장이 되는 일이 생겼었다. 그 이유는 프랑크 왕국의 클로우비스 1세가 쾰른 근처에서 고트인에게 공격당했을 때, 라인강의 강바닥에 이 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고 얕은 개울이라는 것을 알고, 전멸을 피했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꽃에 직위를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프랑스의 국화는, 흰 붓꽃. 즉, 아이리스이다.

그리스 신화에도 아이리스는 빠지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이리스는 여신 주노의 예의 바른 시녀였다. 주피터가 아름다운 그녀에게 집요하게 사랑을 구애해오자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수 없는 마음에, 영원히 무지개로 변하여 주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고 하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 때문인지 유럽인들은, 이 꽃이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거나,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함초롬이 피어오를 때 가장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한국에도 토종 붓꽃의 한 종류가 있다. ‘각시붓꽃’이라고 하는데, 이 꽃에도 전설이 있다.

삼국시대가 끝날 무렵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에서 죽은 ‘관창’이라는 화랑에게 ‘무용’이라는 정혼자가 있었는데, 관창이 이미 죽었음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죽은 자와 영혼 결혼을 하고 어린 각시가 무용은, 관창의 무덤에서 슬픈 나날을 보내다 홀연히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람들이 그녀를 측은히 여겨 관창의 무덤 옆에다 그녀를 묻어 주었다.

그런데 그 이듬해 보랏빛 꽃이 그녀의 무덤에서 피어났고, 피어난 꽃이 각시의 모습을 닮았고, 함께 피어난 잎은 관창의 칼처럼 생겼다 해서 ‘각시붓꽃’이라 이름 붙여 주었다고 한다. 일본의 붓꽃에 대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사랑과 관련된 내용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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