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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4. 2021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 6월

모란에 나비 - 牡丹に蝶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21


6월의 시가는 하나후다의 어디에도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지방의 하나후다에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본래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6월의 그림에 나오는 화류(花類)는 모란꽃이다. 모란은 고귀한 이미지로, 일본인들의 가문을 나타내는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꽃과 나비 하면 모란꽃을 떠올릴 정도로 동양 사회에선 모란꽃을 ‘꽃의 제왕’으로 쳐준다. 실제로 중국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탓인지 설총의 <화왕계>에서도 모란은 꽃들의 왕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한자 그대로 읽어 ‘목단’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긴 한데, 잘 모르는 이들은 장미나 동백꽃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국과의 차이라면 한국에서는 선덕여왕의 일화(당 태종이 신라의 선덕여왕에게 보낸 모란꽃의 그림에 나비가 없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듯 중국 전통적인 그림에서부터 인해 모란꽃에 나비를 같이 그리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나비가 등장한다.

여기서 당신이 흔히 들어왔던 선덕여왕의 일화는 조금 정확하게 정리할 사실관계가 있다.

본래 선덕여왕의 공주 시절(당시 당태종 시기) 때 당나라에서 온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는데, 동봉된 모란 씨를 심었더니 실제로 향기 없는 꽃이었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이 일화의 다른 구전에서는 선덕여왕이 여왕인 시절에 이 꽃씨와 그림을 받았다고 나오며, 당태종이 남편이 없는 자신을 비꼬기 위해 보낸 것을 간파해낸 지혜로움을 돋보이는 일화로 전성되었다.

 

하지만, 이는 당나라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중국의 법식이었다. 당시에 중국에서 모란을 그릴 때는 나비와 고양이를 함께 그렸다.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며, 고양이는 ‘모(耄)’로 70세를 상징하며, 나비는 ‘질(耋)’로 80세를 상징한다. 즉, 모란과 나비, 고양이를 함께 그리면 부귀 모질이란 뜻이 되어 70~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모란에 나비만 함께 그리지 않는 것은 나비의 한자음이 80을 의미하는 한자의 음과 같아 부귀영화를 80으로 제한하는 의미가 있어 함께 그리지 않았다. 굳이 그려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모란과 고양이 나비를 함께 그려 7, 80으로 이어 계속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의미로 그린 것이다.

위의 법식대로 그려진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당나라의 시인인 위장(韋莊)은 백모란 꽃을 읊은 시에서 모란의 향기를 칭찬했는데, 실제로 모란에서는 아주 좋은 향기가 난다. 다만, 품종에 따라 향기가 없는 것도 있긴 하기 때문에 위의 일화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서는 모란이 개화하는 시기가 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아름다운 모란꽃을 찾아다니며 감상하는 게 세시풍속으로 유행했다. 유행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장안성의 관청, 사찰, 저택 등 저마다 특색 있는 모란을 키우고 있어서 감상하기 알맞은 장소가 문자 그대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모란은 뿌리의 껍질에 소염, 진통, 지혈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일본에 전해지면서부터 알려져 왔기 때문에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당시 전쟁에 대비하여 성이나 저택 등에 심어, 비상시에 대비했었다고 전한다. 물론 실용성뿐만이 아니라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꽃의 화려함에서 ‘백화(百華)의 왕’이라는 중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한때 중국의 국화(國花)로 꼽힐 만큼 사랑받았던 모란은, 당시 중국 문화와 함께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1185~1333)에 선(禅) 사상과 함께 일본에 건너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 그대로 수용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일본의 현지화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일본 문화라고 봐야 할 부분이 많다.

예컨대 앞서 언급했던 나비가 모란과 함께 그려진 것을 봐도 그렇다. 중국의 전통 그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나비가 일본의 그림에는 등장한다. 나비를 장수, 행운의 상징으로 여긴 중국의 사상은 일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알-유충-번데기-우화-성충으로 변태 하는 모습에서 회생,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나비를 신격화하는 경향이 짙어진다. 실제로 신분이 높은 가문의 문양으로도 사용되었고, 전국 시대에는 투구에 꽂는 장식물로 나비의 디자인을 쓰는 장수도 있었다. 생사가 결정되는 전쟁이 일상이었던 전국 시대에 갑옷과 투구는 단순히 몸을 지키는 장비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니라, 죽을 때의 수의 역할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앞서 언급했던 나비가 갖는 상징성을 담아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부하에게 자신이 나비가 아로새겨진 갑옷과 투구를 사용하여 불사신과 같이 죽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의도도 다분하여, 아군의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독특한 장식물은 그 상징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당시의 분위기는 하나후다에서 나비가 ‘이노시카초(猪鹿蝶)’의 한 축을 담당하게 한 것이다.(<나루토>에서 나왔던 이 세 발음이 닌자들의 이름에 쓰는 것도 하나후다에서 출발한 것이다.)

<나루토>의 쵸지, 이노, 시카마루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여러 사상 속에 묻혀 죽게 되더라도 자신의 새로운 환생이나 부활을 바랐던 마음이 그 나비를 통해 다시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마음들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나비의 의미는 ‘죽어서도 되살아난다’, ‘새로 태어난다’는 부활과 재생의 의미와 상징으로서 상서로운 징조로 여겼다.

부활을 상징하는 나비와 꽃의 왕이라는 모란이 함께 그려진 6월의 하나후다가 갖는 의미는 결국 매우 경사스러운 소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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