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Jun 11. 2021

70넘은 인생에 단 10년 빛났던...

다산 정약용

백세 인생에서 당신이 10년 반짝 빛나고, 18년의 세월을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다시피 하여 유배생활을 하고 유배에 벗어나서도 제대로 인정받고 다시 컴백조차 하지 못한 삶을 지냈어야 한다면 당신은 그 삶을 동경할 것인가?


4살에 사서를 읽기 시작하고, 천재 소리를 들으며 시를 지었으며, 15살에 혼례를 치러 가정을 이룬 후, 20대에 시험에 합격하기 시작하였으나 27살이 되어서야 최종 대과 시험에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왕의 눈에 들어 그의 측근으로 학문의 활개를 펴고, 국정사업을 총 진두지휘하는 한편 암행어사까지 하며 탐관오리들을 정리하는 소위 잘 나가는 30대를 보냈다.


그러나 39세에 갑자기 자신을 총애하던 국왕이 승하하고, 의 승하와 동시에 그를 시기하던 이들의 모함과 정치적인 이유로 졸지에 죄인이 되어 유배되어 전라도 저 땅끝으로 유배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제는 물론이고 자신과 관련된 지인들까지 유배되는 치욕을 맛보게 된다.

금세 풀릴 것이라고 한낱 희망을 쥐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40대를 보내고 50대를 유배지에서 보낸다.

57세나 되어 18년의 긴 유배가 풀렸지만 중앙 정계로 화려한 컴백은커녕 그저 가장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나마 그는 18년의 유배생활을 꾸준한 저술활동으로 엄청난 수(통상 500여편의 저작이라고 함)의 저작을 배출하였으나 정작 유배가 풀리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회갑을 맞이한 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저술활동도 접는다.

그렇게 75세에, 60주년 결혼기념일에 세상을 뜨기까지 그는 그저 조용히, 그렇게 조용히 지냈다고 전해진다.


일반인들에게는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저술된 저서들이 엄청난 그의 업적으로 남았지만, 흔히,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그가 촛불만 켜고 불철주야 혼자서 그 많은 저술을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학자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하지만, 그는 당시 이미 공동 저술 시스템을 구축한 선지자였다.

30대를 중앙 정계와 학계에서 날리던 그가 이름도 모를 전라도의 땅끝으로 오게 되자, 중앙 정계로 진출하지는 못하였으나 그에게 학식 한 줄 얻어듣고 그의 제자로 학맥이라도 이어보겠다고 그 척박한 땅에서 나고자란 이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는 그들에게 학문을 가르친다는 명분 하에, 공동 저술 시스템을 구축하여 가동하기 시작했다.

자료를 빨리 읽는 제자에게는 자료 정리를 시켰고, 글을 빨리 깔끔하게 적는 제자에게는 그 작업을 시켰으며, 자신이 총감독으로서 저작물의 구성에서부터 토론 과정을 살핀다고 살피며 최종 감수 작업을 하였다.

어쨌거나 그 책은 공저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유명하고 책을 팔기에 가장 좋은 제1저자이자 유일 저자인 그의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그가 다시 중앙 정계로 들고 싶은 마음이 잔뜩 담겨있는 책에서부터, 자신이 정계에 있는 동안 놓쳤지만 새롭게 정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매우 방대하였다.

그 다양하고 방대한 저술을 종합 정리해보면,

그가 더 큰 야망과 포부를 가지고 펼쳤을 실제 정치판에 등판하지 못한 아쉬움과 서글픔이

모여들어 선생님이라고 칭송받는 사이 그가 가상으로 '제대로 된' 정치를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대한 시뮬레이션의 결정판이었을 것이다.


15살에 결혼하여 결혼한 지 60주년 결혼기념일에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그는,

실제 스무 살이 갓 넘은 23살, 성균관 유생이 되어 그의 고향집인 마현(현재의 남양주)에서 한양을 가다가 '이벽'이라는 이를 만나 서양의 종교와 학문에 대해 듣고 세상의 눈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경세치용, 이용후생의 실학을 정리했다고 추앙받는 다산 정약용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못했다.

20대에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성균관 유생이 되었고, 20대 말에 대과에 합격하여 초계문신이 되어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잘 나가는 듯하였으나 마흔이 되기도 전에 그 짧은 행복을 접어야만 했다.


더 큰 뜻을 품고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해 보겠다는 경세제민의 포부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고, 자신을 알아주고 지지해주던 국왕은 세상을 떠났으며, 형제 지인들이 모두 고초를 겪고 있는 상황.

자신 언제 끝날지 모를 귀양 생활을 하는 처지. 이제 뭔가 제대로 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장기적인 경세의 계획을 세웠던 그의 앞에 펼쳐진 빛이 사라져 가고 그 앞으로 창창하게 열려 있던 문이 야속하게 닫혀버리는 모습을 보며 정약용은 크게 낙담했을 것이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유배를 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제 사약이 날아올지, 유배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누가 내 몸에 칼을 담글지도 모르는 불안하고 무서운 시간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18년간의 유배를 마치고 3년이 지나 맞이했던 회갑에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지어 보이며 그때까지도 자신이 중용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부심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날이 지나고서도 15년을 그는 특별한 저술활동을 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

정작 고향에 돌아와서는 유배지에서처럼 공동 저작 시스템을 지원해줄 만한 제자들이 그에게 몰려들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후세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는 불세출의 천재였고,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였으며, 화성을 축조하는데 그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실제 10여 년간의 정치생활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사는 내내 고난을 겪고 죽은 후에 위인으로 추앙받는 것을 선뜻 선택한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저 위인들의 삶이 지난했던 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실패론에 첫 장으로 다산을 소개하는 것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좌절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숨을 몰아쉬고

눈물을 떨구고 있는 그대에게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함속에서

가장이라고 아버지 노릇을 곁에서 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가정마저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던 이가,

환갑이 다되어 집에 돌아와

15년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인생에 머물다가 떠났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거다.


지금 당신이,

그보다 더 힘들다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아니라면 다시 주먹 꽈악 쥐고

이를 악물고

일어나라.


당신에게는 아직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세력이 있지 않고,

당신이 뭔가 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세력이 있지 않으며,

아무런 수입도 없이 돈을 주지 않으면서

꾸역꾸역 죽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당신은 아직,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세상에

펴보지도 않고 지는 꽃은 없다.



  


이전 01화 거듭되는 실패와 밀려오는 좌절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