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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9. 2021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 11월

버드나무에 오노노미치카제 - 柳に小野道風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41

 

일본에서도 11월의 패는 하나후다(花札) 연구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이다. 한국의 화투(花鬪)에서는 11월이 오동(한국의 화투(花鬪)에서 이른바 ‘똥’)으로 되어 있고, 12월이 지금 비(雨)로 되어 있는데, 본래 하나후다(花札)에서는 그 반대이다. 굳이 순서가 바뀌게 된 이유가 있는가?


없다. 그렇게 된 원인은 이 11월과 12월의 상징이 순서와 상관없는 플레잉 카드의 조커 패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11월은 본래의 하나후다(花札)에서 의미하는 비로 순서를 바로잡아 설명한다.

 

11월의 하나후다(花札)에서는 비 내리는 배경에 수양버들, 오노노미치카제, 개구리, 라쇼몬 등 상당히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어느 것도 한 겨울에 돌입하는 11월의 소재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버드나무(일본어: 야나기)는 원래 나라 시대(奈良時代)부터 ‘나기라(奈伎良)’라 불렸던 식물로, 습기가 많은 것을 좋아하고, 강인하면서 잘 견디는 뿌리를 가졌고, 쓰러져 매몰되더라도 다시 그 상태에서 발아하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는 식물로,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 강가 등에 많이 심어졌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버드나무가 강변에 심은 것도 일제 식민지에 이루어진 식수(植樹)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버드나무의 꽃은 봄에 핀다. 11월은 신록의 계절이나 한여름의 파릇파릇한 잎의 계절도 아니다. 그림 속의 개구리도 11월은 동면에 들어가는 시기라, 이 그림들은 11월의 계절과 벗어나도 아주 크게 벗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버드나무와 개구리가 11월의 하나후다(花札)를 상징하게 되었는가?

지금부터 그 비밀을 풀어보도록 하자.

 

일본의 경우 음력 11월에 배치한 것은 일본의 기후 탓에 그즈음의 나라현에는 비가 내리는 시기이고 파란 풀이 월동할 만큼 온난한 지역이므로 이러한 배치의 연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피의 문짝 모양은, 실제로 헤이안 시대, 헤이안쿄(平安京)에 있었던 커다란 문으로, 일본인들의 민간신앙에서 저승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라쇼몬(羅生門)’되시겠다.

수양버들(柳)의 ‘なぎら’와 제비(燕) ‘つばくら’의 음운을 맞춘 것은 기존의 원칙과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개구리(蛙)의 ‘かえる’와 우산(傘)의 ‘かさ’로 두운(頭隕)을 맞출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비광에서 갓쓴 선비로 나오는 사람은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 894~967)’라는 일본의 귀족으로서 약 10세기경에 활약했던 당대 최고의 서예가이다. 그는 헤이안 시대의 일본 귀족으로 10세기의 유명한 서예가이다. 한국 화투(花鬪)는 갓 모양으로 왜색을 지운 형태로 변형한 것으로 의상은 일본의 것 그대로이다.

 

헤이안(平安) 시대의 귀족이자 서예가였던 오노노미치카제(小野道風)는 중국적인 서풍에서 벗어나 일본풍 서예의 기초를 닦았다고 인정을 받는 인물로, 당시 활약한 서예가인 후지와라노 스케마사(藤原佐理; ふじわらのすけまさ)와 후지와라노 유키나리(藤原行成; ふじわらのゆきなり)와 더불어 당대 일본 서예계의 ‘산세키(三積)’라 불리는 유명한 인물이다.

오노노미치카제(小野道風)

그는 글씨 쓰기 공부에 몰두하던 중 자신의 실력이 더 늘지 않은 탓인지 자신의 이름이 유명해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글씨의 길에 뜻을 두었건만, 언제까지고 내 이름은 유명해지지 않을 거야.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재능 따위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늘지 않는 실력과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현실을 비관하여 무작정 떠나기로 하고 비 오는 어느 날 방랑길을 떠나게 된다. ​

자괴감과 자기부정에 시달리던 그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그저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버드나무와 그 옆에 폴짝거리는 개구리 한 마리를 보게 된다. 개구리는 연신 버드나무 잎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뛰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이 개구리는? 그렇게 멀어진 버드나무잎에 네가 날아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하는 개구리의 모습을 보며, 미치카제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버드나무가 크게 휘어지면서 개구리는 자신이 뛰어 붙으려던 버드나무로 날아가 이동하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 그것을 계속 지켜보던 미치카제는 순간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개구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떠했는가? 자신을 연마하고 노력하지도 않고서 그저 재능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비겁하게 눈앞의 길에서 도망치고 있었던 것뿐 아니었는가?”

 

그렇게 미치카제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당대 ‘서예의 신(書道の神)’이라고 칭송을 받을 정도의 서예에 일가를 이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요즘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빠져버렸지만,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교과서에 실려있던 유명한 설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왜 뜬금없이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를 그렸는가에 대한 유래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해소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하나후다(花札) 연구자들도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여기에 숨겨져 있다. 사실 11월 하나후다(花札)의 주인공은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가 아니었다. 하나후다(花札)가 나왔던 헤이안 시대에는 11월의 하나후다(花札)의 표제어는 ‘버드나무에 우산’이었다. 또는 ‘버드나무에 우산을 쓰고 달리는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 おのさだくろう)’였다.

이것이 메이지 시대에 정리가 되면서 갑자기 디자인을 바꿔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가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또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는 어디서 나온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카무라 나카조(中村仲蔵)가 처음으로 연기했던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

위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는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歌舞伎)에 등장하는 악역 낭인(浪人)의 인물 이름이다.


몇 명의 가부키 배우가 이 낭인 배역을 연기해 왔지만, 처음으로 이 배역을 소화해서 당대의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는 바로 나카무라 나카조(中村仲蔵;しょだい なかむら なかぞう)라는 배우였다. 그때 그는 이미 이때까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낭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요염하고 아름다운 사무라이 이미지로 거리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이후 오노 사다쿠로를 자신이 만든 이미지로 배역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느냐고?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라는 역할을 굉장한 씬스틸러 역할인지라, 극 중에 관객들이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휙~하고 우산을 오므리고 나타나서, 무대에서 확~하고 우산을 펼쳐 허세를 부리고 사라지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후세의 연출에서는 갑자기 무대에 하얀 손이 불쑥 튀어나와 돈을 훔치는 등 다양한 씬스틸러라 불릴만한 연출로 등장했다.

극 중에 이 파격적인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의 스타일을 초대 나카무라 나카조가 초연했던 것이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였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그의 외모에, 그의 등장을 상징하는 우산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후다(花札)에 그의 그림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의 그림으로 바뀌게 된 것이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2)인 것이다.


왜 바뀌게 되었느냐구?

놀이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계속 접하게 될 캐릭터가 산적이자 낭인이었던 인물로 나오는 것에 대해 교육적으로도 안 좋고 위정자들에게 찍힐 것을 우려한 사전작업의 일환이었다고 추정한다.


산적이자 낭인보다 나름 교훈적인 메시지까지 담고 있는 인물을 찾다가 상징적인 소품인 우산을 들고 있는 일화에서 서예가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가 나왔고, 생각하고 보니 오노 사다쿠로(斧定九郎)의 오노(斧)와 오노 노 미치카제(小野道風)의 오노(小野)의 발음이 똑같다는 점까지 유사하여 인물이 대체되었고, 인물이 대체되면서 메시지를 넣으려고 보니, 배경에 해당하는 버드나무와 개구리를 함께 그려 넣게 된 것이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니, 비가 내리는 그림이 필요했고, 비가 내리려면 벼락이 내려칠 것이 연상되었던 것이니 11월의 하나후다(花札)의 상징인 ‘비(雨)’가 나오게 된 것이다.

벼락이 나오니 또 연상되는 것이 비와 바람을 몰고 다니는 신들이었다.

완쪽이 라이진(번개의 신), 오른쪽이 후진(바람의 신)

위 그림에 나오는 벼락을 몰고 다니는 신과 바람을 몰고 다니는 신이 가지고 있는 손에 들린 물건을 잘 보면, 하나후다(花札)의 그림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일단 문처럼 생긴 그림은 ‘라쇼몬’이라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죽은 사람을 내보내는 일종의 문’으로 저승에 들어가는 문이다. 그 쌍피 뒷면으로 보이는 것은 저승 세계이며, 번개가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라쇼몬 쪽에도 라이진(雷神)의 태고(太鼓)와 그것을 주우려는 오니(鬼)의 손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이 그림들은 주인공이 바뀌고 연상이 확장되면서 그려진 산물인 것이다.

 

비 띠는 은근히 위아래를 뒤집어 인식하는 사람이 많은데, 버들잎처럼 위에서 아래 방향이 패의 위쪽이다. 비 쌍피는 한국판에서는 위 오동처럼 시커멓게 먹칠을 해 가려져 있지만,  검은 것은 원래 앞서 살펴보았던 라쇼몬이다.

한국 화투(花鬪)는 하나후다(花札)에 나오는 인물의 외모가 너무 왜색이 짙다고 하여 정부의 압력에 의해 고쳐지면서 선비의 갓 모양으로 일부 변형시키게 된 것이다. 또 쌍피의 문양이 ‘라쇼몬’이라는 점에서, 이 피가 쌍피로 대접받게 되는 이유가 나오는데, 이 문에 붙어 있는 귀신을 대접한다는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왠지 화투(花鬪)패 중에서는 이 11월의 패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완성되지 못한 고약한 취급을 받는 편인데, 일단 광의 경우, 비삼광이라 그냥 삼광보다 점수가 하나 낮다.

이것 역시 하나후다(花札)의 룰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후다(花札)에서는, 3광부터 효력이 있는데, 비 삼광은 아예 족보로 인정도 해주지 않고, 사광 달성시에도 비가 포함된 사광이면 ‘비사광(雨四光;あめしこう)’이라 하여 한국의 비 삼광처럼 사광보다는 낮은 족보로 취급한다. 게다가 띠도 띠 점수 말고는 그 어떤 족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열 끗도 초열끗과 함께 일본이든 한국이든 부가 족보가 없다.


다만 한국의 고스톱에선 저승 세계를 나타내는 쌍피는 상당히 귀한 패로 취급이 되며 광도 3개일 때는 비 삼광으로 2점밖에 안되지만 4광부턴 다른 광들과 똑같은 효력을 지니고 대망의 오광을 이룰 때엔 비광도 필요하기에 이렇게 유용한 쌍피와 광을 가진 비는 없어서는 안 될 패로 인정을 받는다.

내일 마지막으로 살펴볼 12월의 화투(花鬪)도 오동나무와 중국의 상상의 동물 봉황이라는 것을 보면, 12월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11월과 12월의 하나후다(花札)가 갖는 의미는 조커 역할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의 어떤 지방 화투(花鬪)를 보면 4인용 화투(花鬪)에 13월짜리 광 화투(花鬪)에 용과 연꽃, 14월 열끗짜리에 대나무에 호랑이도 그려진 것도 있다. 6광과 용호(용과 호랑이)가 추가된 룰인 셈이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 탓에, 11월과 12월의 하나후다(花札)는, 카드의 잭 퀸 킹을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11월과 12월이 음력상 한겨울이기 때문에 대표할만한 실제 하는 식물도 없었기 때문에 버드나무와 전설의 벽오동 등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마지막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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