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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8. 2021

하나후다(花札)와 화투(花鬪) - 10월

단풍에 사슴 - 紅葉に鹿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439


일본에서 10월은 전통적으로 단풍놀이의 계절인 동시에 본격적인 사슴 사냥철이다. 수사슴과 단풍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계절의 특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슴을 의미하는 ‘鹿(しか)’와 단풍을 뜻하는 紅葉(かえで)간에도 말음(末音)과 두음(頭音)을 일치시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낮에는 홍엽(紅葉), 밤에는 홍등(紅燈)’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 그 색깔의 변화를 즐기는 일본인들의 풍취는 10월에 떠올리는 문화로 단풍놀이만 한 것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슴과 단풍의 조합이 된 것에는 그와 관련된 전설이 있어 주목할만하다.

 

옛날에 나라(奈良)의 코후쿠지(興福寺) 보리원(菩提院) 大御堂 옆의 서당에 산사쿠(三作)라고 하는 13세 소년이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당으로 한 마리의 사슴이 다가와서, 툇마루에 올라와서는 놓아두었던 소중한 붓글씨 연습 종이를 먹어 치웠다.

당시 이야기를 그린 이미 삽화

소년은 쫓아버릴 생각으로 문진(붓이라는 설도 있음)을 던졌다. 그러자, 공교롭게도 그 문진은 사슴의 콧등에 정통으로 맞으며 사슴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당시 법령에 의하면,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의 사슴을 죽인 자는 사형(石子詰め; 죄인을 구덩이에 넣고, 위에서 자갈을 채워서 죽임)에 처하는 것이 옛날부터 법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신사 경내에서 키우는 사슴을 죽인 죄는 면할 수 없었다.

 

결국, ‘산사쿠(三作)’라는 이 소년은, 1장 3척(약 3미터. 13세 나이에 맞춰 구멍의 깊이가 정해짐)의 깊은 구덩이 속에 죽은 사슴과 서로 포개어 넣고, 머리 위에서 멍석을 씌우고, 위에서 돌멩이와 자갈, 기와 등을 넣고 생매장되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소년이 사형당했다는 장소

어머니와 아이, 둘이서만 살았던 어려운 생활이었던 터라, 소년의 어머니는 미칠 듯이 슬퍼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결국 소년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 후 소년의 어머니는 죽은 자식의 공양으로 단풍나무를 심고, 소년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새벽 4시와 저녁 6시에 종을 치는 공양을 꾸준히 하였는데, 49일 만에 아들의 모습이 어린이 관세음보살을 빌어 나타났다.

소년의 엄마가 쳤다는 종

이것을 당시 시간 개념으로 말하면, 새벽 7시와 저녁 6시였기 때문에, 그 숫자만큼 종을 쳤다고 하여, 이 전설을 ‘13종(十三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일이 벌어진 장소도 현재 일본에 보존되어 있다. 그런 비극이 벌어진 무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현재 나라(奈良)현에 위치한 사루자와(猿沢)의 연못에서 동쪽에 있는, 관광객이 많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 비극적인 사건 이후 경내에 13층 목탑이 세워지고, 치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이 실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민 일본 문학의 형태인 ‘세세죠루리(世話浄瑠璃)’작품 <十三鐘>으로 발표하여 후세까지 유명해졌다.

치카마츠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

이 작품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절한 심정과 그 시대의 풍습의 참혹함 등의 요소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면서 에도의 거리에서 대인기의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화투의 도안을 하던 이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10월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꽃과 동물로 어우러지면서 ‘사슴과 단풍’이 10월의 하나후다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현재 일본어에서 ‘무시하다(しかとする)’라는 단어의 유래도 이 하나후다에서 유래했다.

‘무시하다’라는 의미로 일본어의 은어 ‘시카토(しかと)’는, 이 그림 패의 어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사슴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고 보여 유래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사슴이 ‘鹿(しか)’과 숫자 10의 ‘十(とお)’를 합쳐서 ‘鹿十(しかとお)’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도박꾼들만의 은어였으나, 이후 불량 학생들이 이 단어를 따라 쓰기 시작하면서 널리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 ‘무시하다(しかとする)’로 전성된 것이다.

단풍놀이는 우리에게도 세시풍속 중 하나였으나 정작 풍류를 즐기면서 가을을 만끽하는 즐거운 단풍철에 우리나라에서 사슴 사냥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7월의 멧돼지 사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한국 땅에 사냥을 할 정도로 사슴이 등장하지 않았던 탓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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