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 먼저 해주자면, 당연히 아니다. 보드카는 아무런 맛도, 냄새도, 향도 없을수록 최상품이다. 러시아인들이 이것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것은 그 특유의 무색 무미 무취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보드카가 그냥 알코올에 물만 탄 상태의 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리미엄 보드카 '벨루가'
알코올은 쓴맛과 악취가 강한 물질인데, 알코올이 40%나 섞였으면서도 무색, 무미, 무취라는 것은 정성 들인 발효와 여과 및 증류 과정을 통해서 알코올의 쓴맛과 악취를 가리는 미묘한 처리가 그만큼 잘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저 증류 알코올에 물 타서 마시게 되면 알코올 특유의 악취가 심하기 때문에 그대로 마시기 힘들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대강 만들어내는 싸구려 보드카도 현지에서는 시판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 공업용 알코올 같은 술이 판매되는 것과 같은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보드카는 왜 칵테일 베이스로 많이 사용되는가?
보드카는 진과 함께 칵테일 베이스로 많이 쓰인다. 클래식 칵테일을 비롯하여 현대적인 컨템퍼러리 칵테일 중에서도 보드카를 베이스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 역시 위에 살펴본 보드카 특유의 성질, 즉 다른 술에 비해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향(無香)’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스키처럼 고유의 강한 색, 향, 맛이 있는 술을 베이스로 쓰면 베이스의 색, 향, 맛이 이미 드러나버리기 때문에 하모니를 강조하는 칵테일의 묘미를 살려내기 어렵기 마련이다.
칵테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러시아인들을 제외하고는 보드카만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사람에 따라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에 중독되어 그 맛에 마시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예외이고, 미국 현지에서도 보드카를 마시는 이들을 보면, 늘 보드카를 살 때 함께 섞어 마실 무언가를 함께 구매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향(無香)이 보드카의 특징이지만 맛과 향을 살짝 가미한 보드카도 나와서 잠시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는데, 주로 그대로 마시지 않는 보드카 음주문화의 트렌드를 이용한 마케팅이었지만, 인기가 계속되지는 않았다. 미리 섞어두거나 화학적으로 섞은 것은 즉석에서 취향대로 섞어 마시는 것에 비해 뭔가 맛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애주가들로부터 외면을 당했기 때문이다. 한때 과일맛 소주가 인기를 잠시 끌었지만 결국 과일주나 직접 섞어먹는 신선한(?) 맛을 원하는 이들이 소주를 그대로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한 루트를 밟은 셈이다.
높은 도수의 술 중에서는 목 넘김이 가장 좋은 가성비 갑?
폴란드 프리미엄 보드카, '위보로바'
중국의 백주(白酒), 일반인들이 ‘고량주’라고 부르는 높은 도수의 술을 마실 때, 목 넘김이 힘들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보드카는 가격 대비 높은 도수의 술 중에서 목 넘김이 편한 술로 애주가들의 공인을 받은 술이다. 물론 러시아인들을 흉내 내면서 겁도 없이 처음부터 병을 들고 마시게 되면 그냥 느낌만 목이 타는 것이 아니라, 식도가 거의 부어올라 응급실행이 될 확률이 높으니 굳이 테스트해보지 말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원샷으로 들이키는 것을 권한다. 와인도 아니고 입술만 적시는 방식으로 홀짝거리다가는 이 글에서 읽은 내용처럼 ‘무취’라는 말에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역한 알코올의 뒷맛을 맛볼 확률이 커진다. 한 호흡에 작은 잔에 있는 양을 한 번에 목에 들이붓는다느 느낌으로 넘기되, 코로 알코올이 역류해서 사례 들리지 않도록 숨을 끝까지 참고 원샷하는 것이 보드카를 즐기는 첫 번째 방식이다.
보드카는 한국 주당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술?!
러시아 프리미엄 보드카, '짜르스카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브랜드 기준으로) 가격 대비 맛이 지극히 훌륭한 것과 별개로, 주흥을 목적으로 달리는(?) 폭음문화 한국식 음주에는 연료로 부적합하다. 도수에 비해 지극히 자극성이 적고 순한 만큼 주흥이 그만큼 빨리 올라오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생명의 ‘물’이고, 러시아 사람들이 이 술을 마시게 된 이유 자체가 취하는 것이 아닌 추운 날씨에 몸을 덥히기 위한 생존 목적이었기 때문에 죽자고 마셔야 하는 한국인들의 음주문화에는 적절한 술이 아닐 수 있다. ‘그러면 보드카는 마셔도 취하지 않아?’라는 꺼벙한 질문을 던질 이들이 있을까 싶어 조금 부연하자면, 주흥만 게이지가 일어나지 않을 뿐 체내 알코올의 흡수 정도는 똑같이 발동된다.
대량으로 흡수된 알코올은 그대로 뇌신경계 전반에 퍼져 당신의 두개골을 뒤흔들기가 똑같다는, 아니 훨씬 더 강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한국식으로 몇 번 원샷하고 ‘이거 목 넘김도 좋고 괜찮은데?’ 하면서 러시아 친구들과 원샷을 하며 달리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엄청난 현기증을 느끼며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 있다. 철없는 한국 대학생들이나 아저씨들이 보드카를 처음 접하고 이런 꼴을 당하는 모습을 현지에서는 적잖이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막강한 한국인의 주량이 러시아인들에 비해 딸려서가 아니다. 술을 적응하는 방식에 실패한 것이다.
보통 처음 멋모르고 마시는 방법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한국인들의 경우, 응급실 갈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숙취가 이틀 이상 가는 굉장히 힘겨운 부작용을 경험할 확률이 크다. 정리하자면 보드카는 술자리에서 취하려는 목적의 한국식 마인드로 마실 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보드카 무역전쟁이 터질 뻔했다?
보드카 전쟁의 주범, '시락'
앞서 간략하게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 제조방법에 대해 언급했지만, 보드카를 만드는 주원료는 곡물, 감자, 사탕무, 당밀 등이었다. 하지만 이외의 재료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거나 하는 금지 규정같이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럽 연합(E.U)에서 무역분쟁이 터질 뻔했다. 2003년 디아지오에서 프랑스산 포도로 만든 보드카를 내놓자 전통적인 보드카 벨트의 동유럽과 독일은 이것은 보드카가 아니라며 반발했고, 대표주자인 폴란드는 유럽 연합에 제소까지 감행했다.
이로써 보드카 전쟁이 촉발되었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싸움이었지만 선발주자와 후발주자의 싸움이기도 했다. 후발주자 중에는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도 포함되어 전 세계적인 무역분쟁으로 번질 수 있었다.
이 보드카 전쟁은 다행히도 독일의 정치인, 호르스트 슈넬 하르트가 제안한 협정이 타결되면서 극적으로 종료되었다. 슈넬 하르트 협정에 따르면, 발효만 제대로 된다면 어떠한 재료로도 보드카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곡물, 감자, 사탕무, 당밀 ‘외의’ 재료로 만든 보드카는 반드시 원재료를 표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폴란드에서는 이것이 보드카의 순수성을 저해하는 결정이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그렇게 문제를 제기했던 합리적인 근거는 포도로 보드카를 만들면 보드카 쪽보다는 ‘마르나 그라파’와 비슷해진다는 점이었다. 폴란드뿐만 아닌, 전통적인 보드카 제조국들이 반발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런 점이었다. 무엇을 가지고 보드카라고 하느냐의 정체성이 없어져버리고 희석되어버린다는 문제제기였다.
그러면 어떻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보드카란 말인가?
핀란디아 보드카
보드카를 만들려면 먼저 전분이 풍부한 곡물과 효소를 섞어 당화시킨다. 당화가 끝나면 효모를 추가해 발효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만들어진 밑술을 증류한 후 활성탄으로 여과하여 냄새와 맛을 없애게 된다. 바로 이러한 과정 때문에 실제 마셔보면 사카린이나 올리고당 등의 첨가물이 빠진 소주의 느낌에 가깝고 맛이 매우 깔끔한 것이다.
미국에서 주로 보드카를 섞어마시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은 것에 비해, 보드카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이 깔끔함이 보드카의 특징이라는 것을 깨달아, 뭔가 섞어 마시지 않고 스트레이트를 즐기게 된다. 이러한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보드카에 익숙해진 동유럽과 북유럽인 들은 술에 향미가 들어가는 와인이나 동양 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주랑 보드카랑 만드는 방식이 똑같다구? 그런데 왜 맛은...?
러시아 보드카, '미야코프 실버'
보드카는 연속 증류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제조방식에서는 희석식 소주와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마트에서 파는 대중적이고 저렴한 보드카에 물과 설탕을 적당히 섞으면 희석식 소주의 맛이 난다. 그래서 실제 미국에서 보드카를 마실 때, 아스파탐이 아닌 소다(사이다)만을 타서 당도를 맞추면 훨씬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술이 된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희석식 소주도 그 원료가 되는 주정(酒精)을 보드카처럼 연속 증류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증류주임에는 똑같다. 앞서 비교했던 것처럼, 보드카와 희석식 소주의 맛 차이는 희석의 여부와 감미료의 유무에서 오는 것뿐이다. 연속 증류가 아닌 단식 증류 방식으로 만드는 보드카도 있긴 한데, 이런 방식의 보드카는 프리미엄급으로 취급되며, 가격도 일반 보드카에 비해 상당히 고가에 해당한다.(개인적으로 보드카를 처음 시작할 때는 프리미엄급으로 시작하라고 권한다.)
서남 유럽을 대표하는 술인 와인이 ‘오래 숙성시킬수록’ 명품이고 가격도 고가로 올라간다면, 동북 유럽을 대표하는 술인 보드카는 ‘많이 증류할수록’ 명품으로 취급받는다. 실제로 증류를 많이 할수록 알코올의 순도가 더 순수해지기 때문에 알코올 특유의 역한 맛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서 더 마시기 수월해지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진다.
어떻게 마시면 맛있게 마신다고 소문나나요?
보드카를 마시는 가장 정석은, 일단 마시기 전 보관법에 비밀이 있다. 무조건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이다. 알코올 도수 40% 용액이 정확한 어는점은 –26.95 °C이다. 이것은 가정집 냉장고의 냉동실에 넣어두더라도 절대 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보드카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약간 점액질로 변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상태에서 꺼내 마시면 최고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최대한 차갑게 만들어서 마시는 보드카는, 단어의 어원 그대로 입과 목에서 생명의 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의 청량감을 갖게 하기 충분할 것이다. 어설프게 마트에서 사 온 것을 술 장식장에 뒀다가 마시거나 심지어 더운 날 후덥지근한 상태로 마신다면, 그저 식도에서부터 타들어가는 도수 높은 후끈거림과 코로 흘러나오는 알코올의 휘발만 느낄 뿐이다.
특히, 처음 보드카를 음미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냉동실에서 냉동한 상태로 마셔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개인적으로 권장하는 편이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난 뒤, 조금씩 실온에 가까워지는 보드카를 자신의 취향에 맞춰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짝퉁 보드카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여담이긴 한데, 처음 보드카를 마시는 초심자들에게 냉동실 보관을 추천하는 것은 최고의 상태에서 마시라는 이유 이외에도, 워낙 짝퉁의 저질 보드카가 많아, 그것을 구분하라고 알려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질 짝퉁 보드카들의 경우, 알코올 도수가 40%를 맞추지 못해서 다른 첨가물을 통해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냉동실에 넣고 한 시간이 지나면 ‘진정한’ 보드카가 아닌 경우, ‘얼어버린다.’
얼지 않는다고 싸구려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시기 전에 주의해야 할 사실. 얼지 않는 더 위험한 짝퉁이 있다. 더 심한 저질 짝퉁 보드카는 에탄올이 아닌 메탄올로 만든 물건이라면 그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결코 마실 수 없는 ‘물건’이다. 참고로 메탄올 제조주는 마실 경우, ‘운 좋아도’ 실명, 심각한 경우, 사람이 죽는다.
그러면 또 이 불안함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불을 붙여보면 안다. 불을 붙여봐서 불길이 빨갛기만 하면 바로 버려야 할 메탄올 확정! 그렇지 않고, 처음엔 불길이 빨갛다가 실험실 알코올램프에서 봤던 것처럼 파란 불길로 변하면 그건 제대로 된 보드카이니 즐기면 된다.
보드카와 궁합이 맞는 안주는 뭐가 있나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보드카는 러시아의 국민주이다. 그들의 먹거리 문화를 향유할 때는 온전히 그들의 먹거리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 최고이다. 먼저 보드카의 최고의 안주는 스트레이트라는 것이 주당들의 설명이다. 보드카 자체의 맛에 기대어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주가 있어야 술을 마시는 한국인들의 술 문화를 감안하여 안주를 찾아보자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보드카 중 하나인 '스톨리치나야'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은 냉동실에 잘 넣어 두었다가, ‘쌀로(돼지비계를 소금에 절여 만드는 우크라이나 전통음식)’를 안주로 하여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힌트 같은 것인데, 보드카의 도수나 술의 특성상 오래전부터 그 술을 즐겨온 동유럽 사람들은 안주로, 상당히 기름진 육류를 안주로 함께 먹을 때 그 풍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다고 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차갑게 마실 때의 보드카가 주는 청량함은 느끼한 육류의 기름진 맛을 확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냉동실에 넣지 않은 보드카의 경우에는 느끼한 육류를 만나게 되면 혀에서 알싸함을 만들어내며 그 느끼함을 상쇄시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미엄 보드카의 경우, 주로 파티에 나올 때, 캐비어가 안주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술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캐비어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다시 말해, 캐비어와 맞는 술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인데, 육류의 느낌함과는 또 다른 느낌의 느끼함이 있기 때문에 캐비어의 향미를 더 배가시키는 데에도 보드카가 상당한 엑셀레이터 역할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