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Feb 09. 2022

위스키, 좋아하시나요?

스피리츠(Spirits;증류주)에 대해서 조금 알고 갈까요?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774


스피리츠(Spirits;증류주)가 뭐죠?

영어로 스피리츠(Spirits)는 원래 ‘증류주(蒸溜酒)’라는 의미로, 앞서 술의 기원에서 공부했던 양조주를 증류기에 넣고 분별증류를 통해 정제한 술을 통칭한다. 알코올 도수는 일반적으로 35~60%, 높으면 90% 전후일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흔히 스트레이트, 그러니까 그냥 마시기도 하고 칵테일의 밑술로 사용하기도 한다. 앞서 가장 먼저 공부했던 보드카가 이 증류주에 해당한다.

 

앞서 다시 길었던 맥주 편에 이어 이제 위스키와 꼬냑, 그리고 데킬라, 진 등 증류주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앞서 스피리츠(Spirits; 증류주)에 대한 개념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하여 약간의 설명을 하고 위스키 편에 들어가고자 한다.

 

증류주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종류가 세분화되기는 하지만 앞서 공부한 바와 같이 술을 담그는 기본적인 원리는 효모(이스트)가 무기 호흡을 통해 당분을 에탄올로 바꾸는 작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한 전통적인 양조법은 알코올 도수를 20도 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상이 되면 에탄올 때문에 효모가 사멸해버리기 때문에, 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 외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드는 가장 단순 무식한 방법은 술을 얼리는 것이다. 에탄올은 물보다 더 어는점이 훨씬 낮기 때문에, 중앙 아시아나 아메리카 지역 같은 겨울이 확실해서 얼음을 구하기 쉬운 지역에서는 술을 얼려서 위에 얼음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술의 도수를 높였다.


이러한 방식을 전문용어로 ‘jacking’이라고 하는데 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냉동 증류주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그 이름을 그대로 따온 미국의 ‘애플잭’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냉동 증류법은 얼음이 얼지 않는 지역에서는 당연히 쓸 수 없었다.


게다가 단순히 얼린다고 그냥 자연스럽게 도수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에탄올 이외에도 물보다 어는점이 훨씬 낮은 물질(메탄올, 알데하이드류 포함)들을 따로 걸러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방식으로 알코올의 도수만 높인 술은 잔여 성분들도 인해 엄청난 숙취를 필수적으로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바로 증류주였다. 즉, 술을 가열해 증류하여 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연금술 연구하다가 증류주 양조법을 알아냈다구?!

최초의 증류주는 연금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미필적 고의(?)에 의한 발명물(?)이었다. 왜냐하면, 술을 엄격하기 금하던 이슬람 문화에서 증류주는 술이라기보단 연금술에 쓰이는 물질이나 약재 정도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의 기독교권으로 증류 기술이 퍼지고 나서야 비로소 증류주가 술의 모습을 인정받게 되면서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은 상당한 이후의 일이었다.

 

아라비아의 증류 기술은 헬레니즘 지역에서 받아들인 것을 ‘자비르 이븐 하이얀(8~9세기 활약했던 아라비아의 연금술사)’ 등이 발전시킨 것인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의 혼란한 시대에 그리스인들의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아라비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지 자리를 이어받았던 것도 지식의 이동 경로를 감안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증류법’이라는 기술 자체는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이미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술이 아닌 향수를 만드는 데 쓰였다고 기록에 전한다.

 

증류주의 어원은 어디에서 왔나요?

워낙 신비에 둘러싸인 학문이던 연금술이 과학의 근대적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지대했다. 특히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가면 화학사에 있어서도 그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던 영향 때문인지 증류주의 라틴어 명칭은 ‘생명의 물(aqua vitae)’이다.


그 영향을 받은 탓인지 증류주를 대표하는 위스키도 이것을 그대로 켈트어로 번역한 ‘usquebaugh’, 혹은 갈리아어 ‘uisce beatha’의 발음에서 변형을 거치면서 전성된 것이다. 프랑스어 표현인 ‘오드비(eau de vie)’나 북유럽의 증류주 아쿠아비트(akvavit)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서 언급했던 영어의 ‘spirit’도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음이 있는 명명, 되시겠다.

 

증류주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앞서 공부한 것처럼, 증류주는 숙취를 일으키는 요인들이 증류법에 의해 자연스럽게 제거되는 과정을 거쳐 사라지기 때문에, 알코올 도수는 양조주에 비해 훨씬 높지만 숙취가 훨씬 덜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럼처럼 향료 등의 첨가물이 별도로 추가되거나, 기본적으로 여과나 숙성이 잘 안 된 것들 사용한 것은, 같은 증류주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숙취를 남기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여 마실 필요가 있다.

 

증류주는 일단 병입된 후에는 유통이나 보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40도 이상의 증류주는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영구보관 및 음용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는 식용이 어려운 재료라도 일단 발효시켜 알코올(에탄올)을 만들고 나면 증류주로 만들 수 있으므로, 싸구려 재료를 이용해서 저렴하게 대량으로 술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이나 항해 및 행군 등 장거리 이동 시에 수분 보충을 목적으로, 대량으로 오래 보존해 보급하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화나 소설에서 해적들이 배 위에서 마셨던 럼주, 되시겠다.

 

같은 증류주인데 왜 그렇게 종류가 많고, 맛이 다 달라지죠?

증류하기 전에 빚은 양조주의 향을 그대로 살리는 증류주가 많지만, 보드카처럼 증류만 해서는 특유의 강한 알코올 향 때문에 마시기 곤란할 경우 숯 등의 촉매로 한 번 걸러내 악취를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스카치 위스키나 럼같이 목탄 향이나 과일 향 등의 추가적인 향신료를 첨가하여 특유의 향이나 맛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다만 앞서 공부했던 바와 같이 뭔가 첨가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숙취도가 심해진다는 위험부담은 감수해야만 한다.


위스키, 그 역사의 시작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미 증류 기술을 가지고 향수를 만들었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록도 남아 있지만, 술을 위한 증류 기술의 시초는 B.C. 3500년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러한 증류 기술이 어떻게 물 건너 영국 등으로 전파되어 위스키를 만드는 기술로 전해졌는지 정확한 경로에 대한 기록이나 구체적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가장 신뢰받고 있는 설은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째는, 무어인(Moors)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졌다는 설과, 둘째, 432년경, 기독교 전도사였던 세인트 패트릭이 아일랜드인에게 증류 기술을 가르치고 전파했다는 설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설 이외에도, 동방의 증류법 기술이 중세 십자군 전쟁을 통해 서양에 전래되었고, 뒤에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에 전파되었다는 설도 있긴 하다. 어찌 되었든 위스키의 증류법 기술이 중국, 즉 동양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유럽 쪽 학자들도 암묵적 동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증류 기술이 유럽 대륙에서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로 전해지면서 맥주를 증류하여 독한 술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이름을 ‘생명의 물’이라는 의미의 ‘아쿠아 비테’를 고대 켈트어인 게일 어로 직역하여 ‘우스게 바하(Uisge Beatha)’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위스키의 최초 명칭이며, ‘우스게(Uisge)’에서 ‘우스키(Uisky)’로 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의 ‘위스키(Whiskey)’로 확정된다.

 

위스키의 종주국은 어디인가?

아일랜드에서는 앞서 살펴본 한 일설에 따라, 432년 중동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한 뒤 아일랜드로 온 세인트 패트릭이 자신이 배워 온 증류 기술로 ‘우스게 바하’를 만들어 출시하면서 위스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한다.


아일랜드에서는 세인트 패트릭을 ‘위스키의 아버지’로 여기고 매년 3월 17일에 세인트 패트릭 데이를 기념하여 전통적인 축제를 벌인다. 위스키에 관련된 기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172년 영국 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했을 당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증류한 술, ‘아쿠아 비테(Aqua Vitae)’를 마셨다는 기록이다.

 

한편, 스코틀랜드 재무부의 문서 기록에 따르면, 1494년 린도레스 수도원의 수도사인 존 코어가 약 500kg의 보리로 증류주를 만들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결정적으로 아일랜드에서 주장하는 설을 모두 인정하되, 세인트 페트릭이 아일랜드인이 아닌 스코틀랜드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들이 위스키의 종주국임을 강조한다.


사실 세계적으로 ‘스카치 위스키’가 유명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만한 것도 전혀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긴 하다. 이렇듯 위스키의 역사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기원 논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스카치 위스키의 눈물겨운 완성기?!

통상 주류업계에서 위스키라고 부르는 것은 ‘스카치 위스키’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만큼 스카치 위스키는 상당한 전통과 긴 역사를 자랑한다. 그 근거로 대표적인 것이 세무 당국과 증류 업자들 간의 끝없는 전쟁이다. 세관원들은 불법 증류를 막기 위해, 증류 업자들은 생계를 위해 서로 쫓고 쫓기며 목숨을 건 싸움을 하였고, 이러한 유구한(?) 투쟁의 역사적 과정을 배경으로 오늘날의 황금빛 액체가 탄생하게 된다.

 

아이리시 위스키의 선조가 있었다구?!

아일랜드에서는 위스키 이전에 ‘포틴(Poteen)’이라는 증류주가 있었다. 17세기부터 불법적으로 위스키를 증류하여 만들어진 포틴은 아일랜드에서 유래되어 아이리시 위스키의 선조 격이라고 할만한 위치에 있는 술이다. 영국은 1661년 크리스마스에 술에 대한 세금을 1갤런 단위로 부과했는데, 이때부터 아일랜드에서의 증류는 불법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단아 ‘포틴(Poteen)’이 만들어졌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1세기가 지났을 때, 영국 정부는 나폴레옹과 전쟁을 준비하려고 다시 술에 대한 세금을 올려 재정을 확보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세관원들의 엄격한 과세 때문에 오히려 불법 증류는 절정에 달했다. 결국 금주법을 주장하는 압력이 거세지고서야 불법 증류가 수그러들었다.

 

포틴은 통에서 숙성시키지 않은 최초의 위스키였다. 몰트를 건조하는데 피트를 사용하였고, 곡물 대신 감자를 써서 발효하였는데, 당밀과 사과를 써서 발효를 촉진하였다. 지금의 위스키와는 많이 달랐지만, 당시 술로서는 충분한 역할을 할 만했다.

 

아메리칸 위스키, 19세기 전성기를 누리다.

17~18세기가 아이리시와 스카치 위스키의 시대였다면, 19세기 말은 아메리칸 위스키의 전성기이다. 독립 전쟁 이후에는 미국에 780개의 증류식 양조장이 있었다. 하지만 1920년 금주법이 발효되면서 미국 위스키 증류 업자들은 된서리를 맞았고, 수많은 증류식 양조장이 문을 닫아 결국 12개만 남게 되었다.

 

현재 위스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위스키 생산국가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이다. 물론 뒤에 상술하겠지만 종류가 위스키일 뿐 각 나라마다 위스키에 대한 관련 정의와 제조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한국의 위스키 역사

지금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위스키를 생산했던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위스키의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국산 주류 개발 계획을 세워 스코틀랜드 몰트 위스키 함량 30%의 국산 위스키를 개발하고 시판하였다.


아마도 위스키를 즐겨 마시던 박정희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되는데, 이후 1983년에는 위스키 산업의 육성, 품질의 고급화, 외화 절약 등을 위해 ‘국산 위스키 개발 계획’을 마련하여 몰트 위스키 제조 시설을 완비하였고 본격적인 국산 몰트 위스키 제조가 시작되었다. 1987년부터는 국내 위스키 3사가 국산 위스키 원주와 수입 위스키를 섞어서 ‘국산 특급 위스키’를 개발하고 시판하였다.

 

그러나 많게는 10여 년의 숙성기간이 필요한 까다로운 과정과 재고관리의 어려움 등을 이유와 결정적으로 훨씬 질 좋은 수입 몰트 위스키와의 가격 경쟁력 문제 등으로 실익이 없어지자 국산화를 포기하고 1991년부터는 생산이 중단되었다. 현재는 위스키 대부분 완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782


이전 10화 맥주에 거품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다구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