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잠시 설명했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브랜디가 완성되기 전 상태이니 브랜드라고 할 수는 없는 제품이지만 브랜디로 통칭한다. 갓 증류하고 숙성을 거치지 않은 화이트 스피릿 상태를 말한다. 피스코나 포머스 브랜디(그라파 등) 또는 포도 이외 과일(자두, 체리 등)로 만든 브랜디는 숙성 없이 판매하는 경우도 많으며, 아르마냑도 이 단계부터 판매하기도 한다.
앞서 보드카 편에서 나왔던 프랑스의 고급 보드카를 표방한 문제(?)의 제품 ‘시락(Ciroc)’도 백포도를 원료로 한다는 이유로 오드비로 분류되기도 한다.
2. 프렌치 브랜디
(1) 꼬냑(Cognac)
프랑스 샤랑트(Charente) 지역의 꼬냑 지방에서 생산하는 와인 베이스 브랜디이다.
왜 꼬냑이라고 부르게 되었나요?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된 발포 와인만이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듯이 지리적 표시제가 적용되어 엄밀히 따지자면, 꼬냑 지방에서 생산된 브랜디만이 ‘꼬냑’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꼬냑의 정식 원산지 호칭은 꼬냑, 오드비 드 꼬냑(Eau-de-vie de Cognac), 오드비 데 샤랑트(Eau-de-vie des Charentes)다.
‘꼬냑’이란 단어는 1638년 영국인 루이스 로버츠(Lewes Roberts)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꼬냑은 청포도의 일종인 ‘위니 블랑(Uni Blanc)’으로 만든 가볍고 거친 화이트 와인이었다. 40년이 지난 1678년, 《런던 가제트(London Gazette)》에 ‘꼬냑 브랜디’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참고로,'꼬냑'이라는 도시는 한국의 대구처럼 전형적인 분지지형이기 때문에 여름이 상당히 고온다습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름에 보통 45℃까지 올라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코프리카 프랑스 전국에서 가장 더운 지방으로 워낙 유명한데, 그 뜨거운 여름의 열기 덕분에 포도를 비롯한 과일들을 대량 재배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며 과일의 당도 또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보르도의 와인이 세계 최고의 와인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는 것에 반해, 보르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북쪽의 꼬냑 지방 화이트 와인은 산도가 매우 높고 굉장히 떫은 맛이 강해 와인으로서는 평균 이하의 수준으로 하등품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 와인을 증류하여 오크통에 넣어 몇 년 기다린 뒤(최소 2년 이상) 이 원액들을 한데 모아 블렌딩 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술이 탄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꼬냑’이 되는 것이다.
꼬냑의 역사
16세기경 네덜란드 상인들이 꼬냑 지방에 소금, 목재, 와인을 사기 위해 들렀는데, 장기 항해 중 와인이 변질되는 걸 막기 위해 이 꼬냑 와인을 증류하게 된 것이 꼬냑의 기원이다. 이때 네덜란드인들은 이 증류주를 ‘브런드뱅(brandewijn)’이라 불렀고 그것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brandy-wine’으로 차용되었고 변성되어 ‘브랜디(brandy)’라고 불리게 된 것은 앞서 설명한 브랜디의 어원의 유래이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꼬냑의 잠재력을 한 번에 알아봤다. 또한 꼬냑의 샹파뉴(파리 북동부의 샹파뉴 지역과는 다른 지역이니 구별할 것) 지역에서 양조되는 질 좋은 와인을 증류하면 훨씬 경제적 가치가 커짐도 깨달았다. 그래서 스웨덴 광산에서 구리를 사서 꼬냑 와인 생산자들에게 팔았다. 구리는 통째로 증류소를 설치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번에는 증류소에서 나온 브랜디를 다시 추운 나라 스웨덴에 다시 팔았다. 스웨덴과 프랑스 사이에서 양쪽으로 거래를 모두 성공시켰던 것이다.
17세기엔 이 와인을 2중 증류(double distillation)하여 오드비(eau-de-vie; water of life, 주정 상태의 원주)로 만드는 법을 개발했고, 곧 리무쟁(Limousin) 숲의 참나무를 깎아 만든 오크통에 이 오드비를 숙성시켜 오드비와 완성품 꼬냑의 풍미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지금도 꼬냑은 대부분 리무쟁의 오크통에 숙성시키며 드물게 트롱세(Tronçais)숲의 오크통에 숙성시키기도 한다. 위스키 편에서 공부했던 바와 같이, 일반적인 다른 브랜디와의 비교를 불허하는 꼬냑의 풍부한 향미는 이 리무쟁의 오크통 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작 꼬냑을 세계화시킨 것은 영국이었다?!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꼬냑이 상업화되었지만, 정작 꼬냑의 우수한 품질을 알아보고 생산을 진작시킨 자들은 영국인과 아일랜드인들이다. 백년전쟁 이후 영국으로 수출되는 프랑스 와인 값이 무척 비싸졌다. 프랑스 수입 와인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비싸진 프랑스 와인 탓에 밀수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영국해협을 건너기만 하면 되는 프랑스로부터 정식 수입을 하는 상인들은 거의 없었다. 프랑스 코앞에 있는 저지 섬(Jersey Island)이 밀수꾼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저지 섬은 말이 영국령이지 거리상으로는 프랑스에 훨씬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섬의 밀수꾼들은 당연히 밀수 과정을 통해 더 큰 이익을 궁리했고, 곧 와인보다는 브랜디가 훨씬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브랜디는 적은 부피에 비해 상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밀수품이었다. 따라서 저지 섬은 꼬냑을 밀수하여 영국 주류시장을 개척한 이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장 마르텔(Jean Martel)이었다. 그는 저지섬 출신으로 꼬냑으로 직접 건너가 꼬냑 회사를 세웠다.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꼬냑으로 이주하여 증류소를 설치하였는데, 그중 아일랜드인 리처드 헤네시(Richard Hennessy)는 1765년에 보르도에서 꼬냑으로 넘어와 오늘날의 헤네시를 일군 전설을 만들어내게 된다.
꼬냑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오늘날 꼬냑 제조는 법으로 정한 특정 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샤랑트와 샤랑트 마리팀 두 지역만이 인정받은 지역이다. 이곳에서 엄선하여 재배한 포도 품종을 원료로 한 화이트 와인만을 사용하며, 증류도 해당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현존하는 여섯 개의 주요 아펠라시옹 원산지 지역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그랑드 샹파뉴(Grande Champagne) 지역(꼬냑과 스공작 주변)은 섬세한 맛과 풍부한 향을 지닌 최고급 브랜디를 생산한다. 프티트 샹파뉴(Petite Champagne) 지역(남서쪽과 동쪽으로 그랑드 샹파뉴를 감싸고 있다)의 브랜디는 섬세함과 밸런스가 좀 떨어지며 숙성이 더 빠르다.
보르드리(Borderies) 지역(그랑드 샹파뉴 북쪽에 위치)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더 감미롭고 부드러운 풍미를 지닌다. 이 세 지역을 둥글게 감싸는 모양으로 위치한 펭 부아(Fins Bois), 봉 부아(Bons Bois), 부아 오르디네르(Bois ordinaires) 지역은 좀 더 토속적이며 투박한 스타일의 브랜디를 생산하는데, 실제로 이 지역 명칭을 달고 판매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편, 특별한 명칭인 핀 샹파뉴(fine champagne)는 그랑드 샹파뉴와 프티트 샹파뉴를 블렌딩 한 것으로, 그랑드 샹파뉴의 비율이 최소 50% 이상이다.
구체적으로 제조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가을에 수확한 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양조한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은 콜롱바르(Colombard), 폴 블랑슈(Folle Blanche), 쥐라송 블랑(Jurancon blanc), 위니 블랑(Ugni Blanc) 등이 있다.
그렇게 만든 와인을 겨울에 증류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오드비를 얻는다. 오드비를 얻는 과정은 늦어도 3월 31일까지 완료해야 한다. 꼬냑의 특징은 두 번 증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폿 스틸(Pot Stills)’이라 불리는 증류기로 와인을 한번 증류하면 알코올 도수가 27~32도가 된다. 이것을 다시 한번 증류하여 순도 높은 오드비를 얻는다.
그렇게, 4월 1일부터는 두 번 증류한 오드비를 오크통에서 숙성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2년 이상 숙성하면 VS(Very Special) 혹은 콩트 2(Count 2)가 된다. VSOP(Very Special Old Pale) 혹은 리저브(Reserve) 혹은 콩트 4(Count 4)는 혼합된 브랜디 중에서 최소한 4년 이상 숙성된 것이어야 한다.
나폴레옹(Napoleon) 혹은 XO(Extra Old) 혹은 오르 다주(Hors d’Age)는 최소한 6년 이상 숙성된 것이다. 숙성 기간은 최소 기간만을 정한 것이므로 꼬냑 회사별로 자체적으로 설정한 숙성기간에 따라 기준보다 훨씬 오래 숙성한 꼬냑을 출시하기도 한다.
꼬냑은 지역별로 맛, 향기, 숙성력이 구별된다. 가장 우수한 꼬냑이 양조되는 그랑 상파뉴의 특징은 브랜디의 질감이 아주 세련되었으며 복합적인 향이 있다. 오랜 숙성을 요하는 단단한 구조이지만 느낌은 가늘고 분명하며, 꽃향기가 두드러진다. 반면 가장 평범한 꼬냑인 부와 오르디네르는 거친 질감과 과일 향기가 난다. 그리 오랜 숙성을 요하지 않는다.
꼬냑은 숙성연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꼬냑은 위스키나 테킬라 같은 다른 증류주처럼 숙성연도를 명시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브랜디, 또는 꼬냑 하우스는 여러 개의 증류장과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포도밭과 증류장에서는 각각 오드비(eau-de-vie, 주정)를 만들어 따로 숙성시킨다.
각 증류장의 오드비들은 숙성 이후 풍미가 조금씩 달라지게 되는데, 꼬냑 하우스의 마스터 테이스터(maître de chai)들은 이들 오드비들을 모아 블렌딩 한 후 꼬냑을 완성하게 된다. 각각의 오드비들이 다른 오드비에겐 없는 풍미를 상호 보완하여, 완성된 꼬냑이 완벽에 가까운 풍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오드비들의 숙성연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의 규정은 주류에 숙성연도를 표시하려 할 경우, 사용된 주정 중 가장 짧은 숙성을 거친 주정의 숙성연도를 완성품의 숙성연도로 표기하라고 명시했다. 이는 앞서 위스키의 블렌디드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4년짜리 오드비와 100년 숙성 오드비를 블렌딩 해 만든 꼬냑이더라도 이 꼬냑의 숙성연도는 4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규정에 따르게 되면 장시간 숙성을 거친 고급 오드비들의 가치가 숫자 하나 때문에 가려지게 될 것이었기에 함부로 숙성연도를 붙일 수가 없었다.
이에, 1865년 헤네시(Hennessy)가 이 숫자를 별표로 치환하여 뒤틀어버렸다. 별 하나는 최소 숙성 2년의 오드비가 들어간 제품, 별 둘은 4년, 별 셋은 6년의 최소 숙성 오드비가 들어간 제품이었다. 나중에 헤네시는 이 등급체계를 VS, VSOP, Napoleon, XO로 변경했고,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이것이 어제 글 말미에 설명해줬던 브랜디의 등급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적용된 것이다.
참고로 꼬냑은 연수 개념을 ‘콩트(compte)’라고 표기한다. 기준은 매년 4월 1일.(그래서 앞서 이 날짜가 중요하다고 설명한 것이다.) 한 바퀴 돌아오면 이를 1 compte라고 한다.
등급을 맞추기 위해서는 각 등급이 요구하는 최저 숙성 연도를 만족시켜야 하며, 이 외에도 등급을 매길 경우엔 묵시적으로 블렌딩 한 오드비 숫자, 그리고 이 오드비들의 평균 숙성 연도를 따지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꼬냑에는 빈티지가 없다. 원액들을 각각 따로 평가하고 상기 범위 내에서 블렌딩을 정하기 때문.
꼬냑 제조 시 첨가물에 대한 논란
앞서 잠깐 언급했던 색깔을 균일하게 맞춘다는 명분(?)하에 꼬냑을 만들 때에는 물과 캐러멜 색소, 설탕 시럽은 허용된다. 즉, 도수 희석, 색 보정, 가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헤네시에서는 색소가 상당히 인위적으로 맞춰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오면서 ‘부아제(boisé)’라는 첨가물을 집어넣는 업체들이 많아지면서 꼬냑 마니아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부아제는 설탕 시럽에 오크 칩을 넣고 끓인 것으로, 이것을 꼬냑에 섞으면 오래 숙성된 듯한 오크 향을 인위적으로 낼 수 있다. 즉, 인위적으로 에이징 된 듯한 향을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 단가는 내려가지만, 실제로 에이징 된 원액에 비하면 향이 뭔가 인위적이면서도 무엇보다도 고객에게 사실상 사기를 치는 행위라는 비난이 일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형 브랜드 산 꼬냑들이 부아제 함량이 많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