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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May 01. 2024

인생 첫 입원기(1%)

“삐빅- 배터리 교체기입니다.”


몸에서 보낸 강렬한 신호 덕에 인생 첫 입원을 결정했다. 안정과 휴식이 중요한 병이기에 3일만 푹 쉬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직전 3개월 간 헬스를 다니며 식단까지 조절하는 생활을 이어왔는데 이 마저도 당연히 중단해야 했다. 잠시 아르바이트와 근로근무 등도 멈춰야 했다. 다행히 학기 초라 과제나 시험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다. 무엇보다 예전처럼 체력을 쓰면서까지 놀지 못할 것 같단 생각에 더욱 암울했다. 이 나이에 실컷 놀아야 하는데 그 마저도 브레이크 걸려버린 기분이었다.


이런 내 심정을 당연히 모를 동아리 친구들에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락이 왔다. 개강총회 참석여부를 묻는 문자였다. 이에 재밌게 놀라고,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조심히 들어가라고 전해지지 않을 씁쓸한 웃음과 함께 답변을 전송했다.


나는 병실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동안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알기에. 노트북으로라도 할 일들을 찾아 시간을 알차게 보내보기로 했다. 모든 일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한 채. 그렇게 작성하게 된 투병일기.


왜 주부로 계신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아프신 와중에도 집안일을 놓지 못하셨는지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이라 생각했다. 내 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와 신경이 더 크기 때문. 이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일상으로 자연스레 들어가고 싶었다. 이런 것들을 쉽게 놓질 못하니, 그래서 아픈 거겠지 싶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내게 또 다른 병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쉬어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병.


"몸에서 제발 쉬라고 '배터리 교체기'를 줬구나."


입원실에 들어선 순간, 대상포진에 더블로 안면마비까지 안게 된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일기나 쓰며 내 세상인 것처럼 쉬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병원에서 1인실을 쓸 수 있던 터라 새로운 쉼터를 얻은 기분이었다.


입원 첫날 저녁, 아버지가 퇴근 전에 내가 좋아하는 시장 만두를 사다 주셨다. 계속해서 필요한 게 없냐고 어찌나 신경 써주시던지. 빨리 이 감사한 마음을 활짝 핀 웃음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회복되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으며 생활하겠다고 다짐하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거 몇 개월간 건강한 음식을 먹고 금주하며 생활패턴을 깔끔하게 고치리라 결심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나니 금세 검게 물든 밤, 나는 감기지 않는 왼쪽 눈 때문에 병원에서 주신 안대를 끼고 잠에 들었다.




증상 3일 차, 안면 근육이 더 단단하게 뭉쳐진 느낌이 났다. 물을 마시니 입 왼쪽에서 조금씩 물이 세기 시작했다. 억지로 감았던 왼쪽 눈은 살짝 충혈된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수시로 손을 사용해 눈을 감으며 수분이 빠지지 않게 신경 써야 했다.


아침부터 반가운 손님이 병실로 들어왔다. 아침 일찍이 손녀의 입원 소식에 직접 만드신 뼈다귀 감자탕을 들고 오신 할머니. 눈물이 살짝 머금어졌지만, 아침부터 호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참아 본다. 따뜻한 할머니의 음식을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더라.  


자신 있게 고기를 한 입 물었으나 왼쪽 턱은 쉽게 아물어지지 않았다. 왼쪽의 위아래 어금니들이 서로 쉽게 닿지 않아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저작운동'을 할 수 없었던 것. 턱 근육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니 왼쪽 볼에 모인 음식물들 또한 직접 손으로 밀어 넣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왼쪽을 많이 활용해 고기를 씹으려 노력해 봤다. 이대로 굳어질까 봐 오른쪽 턱만 너무 발달해 비대칭 턱이 될까 무서워 왼쪽을 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온 얼굴이 찡그러지고 그 반동에 목을 가만히 두고 씹고 있지 못하는 나의 이질적인 상태가 괴상하게만 느껴졌다.


밥 먹는 내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결국 울컥하셨다. 상상도 못 했던 내 모습에 나 자신도 놀라 눈물이 계속 고였지만, 나는 숟가락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 채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맛있다. 할머니."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를 기피하고 싶어졌다. 당분간 친구들도 못 만나겠구나 싶어 밥 약속은 최대한 줄이기로. 앞서 처방받은 위 보호약이랑 스테로이드 약 12알 정도를 먹어야 했다. 매일 아침마다 스테로이드를 줄여가며 일주일 간 먹어야 한단다. 스테로이드 부작용만은 없길 바라며 한 알 한 알 배불리 먹어 본다.


한가한 낮에는 오랜만에 낮잠도 청해보고, 들고 온 책도 읽고, 노트북을 켜서 파란만장했던 일주일을 요약해 일기를 적어 보기도 했다. 꽤 시간이 지났겠지 싶었으나 창밖은 계속 밝았다. 침대를 올렸다 내렸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금세 나가서 바람 쐬고 싶어졌다. 당시에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푸르른 학교 운동장을 돌고 싶었다. 새벽 공기를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걸을 수만 있었다면 더욱이 바랄 게 없었지. 그것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이제 나도 건강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는 것. 어른들이 젊을 때부터 몸관리하고 신경 쓰라고 하신 말씀에는 다 뼈가 있었던 것.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정말이었다. 스트레스 관리도 자기 관리였다는 걸 그간 왜 몰랐을까.


무엇보다 내가 아픈 건 가족한테 더 미안한 일이라는 점. 하루종일 나를 신경 쓰시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일찍 독립해 따스운 집을 나와 혼자 살 거면 건강하게 잘 지냈어야 했는데 말이다.


"난 정말 개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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