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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Apr 24. 2024

지킬 앤 하이드 탄생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다음날 아침, 화장대에 딱 앉은 순간. 노래 하나가 생각났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뭐지. 지킬 앤 하이드인가. 나는 왼쪽 광대가 마비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앉아서 왼쪽의 모든 기관을 확장시켜 보곤 했다. 눈의 깜빡임에도 오른쪽과 찰나의 차이가 있었고, 웃음을 지어도 입꼬리는 오른쪽만 올라가고, 코에 힘을 주면 짱구에 나오는 부리부리 대마왕처럼 오른쪽 콧구멍만 커지면서 벌렁거릴 수 있었다. 왼쪽의 눈, 코, 입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왼쪽 혀는 이제 아프지 않은 대신에 완전히 마비된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혀를 꾹꾹 눌러도 보고, 이로 살짝 물어도 봤지만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잠시 약기운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라고. 약 과다 복용이 문제일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깊은 생각에 빠질 틈도 없이 수업을 들으러 갈 준비를 해야 했다. 학교로 향하던 길, 나는 친한 언니를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내 어색한 얼굴 상태를 상대가 먼저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이것 좀 봐라! 나 지킬 앤 하이드 됐다~."

나는 한쪽만 올라가는 광대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입은 살짝 가리며 웃음을 유지해야 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함께 강의실로 온 친구는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렸던 걸까. 수업을 들으면서도 계속해서 내가 얼굴에 신경을 쓰고 있단 걸 눈치챈 듯했다. 친구는 병원에 얼른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나를 걱정해 주었다. 어느새 왼쪽 눈은 직접 손으로 누르지 않으면 감기지 않을 정도로 마비가 되어 수업을 듣는 내내 자연스럽게 손이 왼쪽 눈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는 쉬는 시간 10분을 이용해 종합검진센터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는데, 아버지로부터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듣고야 말았다.


"지금 당장 주변 큰 병원이나 응급실로 가."


빠르게 뛰는 나의 심장소리가 전화기 너머까지 전해졌던 걸까. 내가 불안해할 것을 충분히 알아차린 아버지는 차분히 절대 무서운 병이 아니라며 나를 다독이기 시작하셨다. 그때의 아버지 목소리는 나보다 더 떨리는 듯하였지만.


혼자는 못 가겠다며 수업은 다 듣고 아버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응급실 대신 먼저 야간진료까지 하는 주변 한의원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몸집만 다 컸지 이런 상황에서 병원도 혼자 못 가는 내가 어찌나 우습던지. 결국 수업은 제대로 다 듣지도 못한 채 강의실을 나왔다. 자취방에 도착하자 다시금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버지다. 내 얼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 통화를 거신 것이다. 아버지의 근심 가득한 표정을 마주하니 눈물이 살짝 맺히긴 했지만 덤덤하게 통화를 이어가려 노력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나를 깊은 생각에 빠트린 아버지의 한 마디. "딸 무슨 일 있었지? 아빠한테 말 못 한 일들 있었지? 대체 무슨 일에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았는지 아빠한테 이제 말해줘."


'그러게 나는 무슨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았을까. 몸에 적신호가 울릴 때까지.'




나는 역시나 한의원에서 '구안와사'를 판정받았다. 아버지가 미리 예견해 주신 덕에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이 상황 자체가 적잖이 충격적이긴 했다. 한의사 선생님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환자인 나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해 주시는 모습에 얼른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장기치료가 필요하지만 초기에 잘 잡아서 후유증 없게 회복하자고, 다시 활짝 웃을 수 있다며 함께 응원해 주셨다. 그 순간만큼은 안심이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처방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매일 같이 약 2시간 정도씩 받아야 하는 침치료와 도수, 추나치료 등을 설명해 주셨다. 두 번째로는 신경과를 방문해 약물치료를 병행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절대 스트레스는 받지 말 것, 휴식을 취할 것을 강조해 주셨다. 세 가지 중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우리가 병원문을 나설 때까지도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앞으로 치료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은 한 바가지. 진찰을 받았던 한의원은 거리가 멀어서 학교 근처로 다시 병원을 알아봐야 했고, 다음날 방문할 신경과도 찾아보아야 했다. 분명 스트레스받지 말고 이것저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내가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병 자체가 나를 스트레스받게 하는데,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니. 이 모든 순간 자체가 병든 날 더 곪아지게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자취방에 나를 내려주시면서 절대 안정을 여러 번 외치셨다.


폭풍같이 지나간 하루가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하루였을지도. 그동안 신경 쓰지도 않았던 '스트레스'라는 주제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이미 잊고 살았던 것들을 옆에서 괜찮다며 계속 잊으라고 언급할수록 더 그 생각에 잠겨 버리는 그런 거. 그제야 나에게 스스로 물었다.


"무엇이 널 그렇게 힘들게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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