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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Apr 21. 2024

혓바늘이 쏘아 올린 작은 포

번아웃의 잔잔한 신호


2023년 3월, 모든 시즌의 시작. 대학교 4학년을 맞이한 나는 어느덧 20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다. 반이나? 반 밖에? 사람마다 체감은 다르니. 어느 것이 정확한 시간 흐름의 개념인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빠르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새내기로 들어 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화석이라 불린다.


새해 3월이 시작되었지만 작년의 나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지내던 나날들. 그러나, 내 몸이 예민(銳敏) 반응을 거세게 내비치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때는 3월 17일.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운 입꼬리가 포인트였던 나는 웃음을 잃었다. 그것도 한쪽만. 워낙 입꼬리가 눈에 띄던 얼굴 상이던 터라 왼쪽 입꼬리가 점점 쳐지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일명 ‘구안와사, 벨마비, 안면마비’라 다양하게도 불리는 것에 걸린 것이다. 왜 걸렸냐 하면, 바로 일주일 전 작은 혓바늘로 간주했던 대상포진으로부터 시작된 후유증이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왼쪽 혀에 작은 통증으로 시작되어 여느 때와 같이 혀 앞부분에 작은 혓바늘이 났구나 싶었다. 그래서 최근 사람 만나는 자리도 많았고 다시 시작된 학기 생활에 적응 중이라 조금 피곤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고통이 남다르긴 했다. 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싶어 진통제와 비타민 약을 몇 알 챙겨 먹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별스럽지 않게 생각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날수록 점점 고통이 심해지더니 혓바늘이 왼쪽 입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편도까지 붓고 염증이 생기더니 물만 마셔도 아팠고, 숨 쉴 때마다 바람만 닿아도 혀가 따가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던 고통을 느끼고 나서야 평소에 자주 다니던 이비인후과에 방문했다.


첫 번째 진단은 단순 구내염으로 판정. 의사 선생님은 내 혀에 검은 약을 시커멓게 발라주셨다. 약으로 인해 입술까지 까매진 나는 집 가서 바로 간단한 빵조각에 약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계속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 약 효과가 나면 금방 나을 줄 알고.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눈을 감아 보았다. 하지만, 다음날까지 통증은 지속됐다. 아니 계속해서 더 거세졌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두 번째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은 거리가 좀 있는 구강 내과. 두 번째 진단은 심한 구내염으로 판정. 일주일 후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구강작열감으로 판정하겠다고 하셨다. 스테로이드 가글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그래도 통증이 점점 심해져 일반 진통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5알 정도. 한 번 먹으면 2시간 정돈 버틸만했다. 3일 정도 지나니, 진통제까지 소용이 없었다.


점점 두려움이 몰려와 인터넷 검색을 좀 해보았다.

“나 설암은 아니겠지..”

술을 즐기고 종종 담배를 피운 내가 운이 좋지 않게 설암에 걸린 건 아닌지 쓸데없는 잡생각까지 시작했다.


걱정을 한 바가지 안고 세 번째 병원으로 향하던 길.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터져 나오는 설움을 참지 못해 꺽꺽거리고 말았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며. 캠퍼스 벤치에 잠시 앉아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걱정에 재차 정신을 차리고 다른 이비인후과를 갔다. 세 번째 진단도 구내염으로 판정받고 말았다. 병원에서 준 약을 먹어도 진통은 멈추지 않았고. 울면서 죽 하나 제대로 먹지 못했다. 고통에 온몸을 움츠린 채 그날의 새벽을 버텨야만 했다.


결국, 다음날 일정을 모두 뒤로 한 채 아침 일찍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다. 신속하게 하루 입원 절차를 밟고 항생제며 영양제며 수액을 엄청 맞으며 당일 낮부터 밤까지 잠을 취했다. 고통이 조금씩 사그라들긴 했다. 아예 혀를 마비시켜 사라지게 한 느낌이 강했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통증이 좀 가라앉자 바로 퇴원했다. 입원 보단 수액실에서 휴식을 취하는 느낌으로 다녀온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 화장대 거울을 보며 아픈 곳을 확인하고 보니 약을 너무 많이 투여했나 싶었다. 마비된 기분이 자꾸 세하게 들었기 때문. 나는 이상한 기분을 뒤로한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평소처럼 휴대폰 카메라를 켰다. 얼굴 상태를 확인하며 씩- 미소를 지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좀 어색하다.


나는 마지막 웃음을 뒤로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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