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에 안게 된 '말초성 얼굴마비'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왼쪽 얼굴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왼쪽 눈꺼풀은 이미 잔뜩 내려앉아 쌍꺼풀을 집어삼켰고, 왼쪽 입꼬리는 멈춰 있지 못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닌, 오른쪽 입꼬리만 과하게 올라가 일명 ‘썩소(썩은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나는 점점 웃음을 기피하고 싶었다.
웃음이 나오는 상황에는 두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거나 몸을 잔뜩 숙여 웃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너무 이질적이라 금방 웃음이 머졌기 때문에.
이대로 얼굴이 굳어 버릴까 봐, 진짜 내 입꼬리를 되찾지 못할까 봐, 조금은 무서웠다. 근육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예쁘게 웃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서럽던지. 활짝 웃었던 때를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내가 살면서 웃음을 잃게 될 줄은 몰랐다.
서울 중심가의 한 신경과에 방문하고 나서야 안면마비에 걸리게 된 경로이자 그 원인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작은 혓바늘이 나기 시작한 2주 전부터 시작해 그동안 돌아다닌 병원에서 받은 진찰 결과와 내가 겪은 통증의 정도를 자세히 설명드렸다. 구내염도 이런 구내염이 없었다고. 혀에 물만 닿아도 아팠고 입으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사실(찬 공기가 혀에 닿으면 어찌나 따갑던지)을 말씀드렸다.
신경과에서 들은 이야기는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나는 혀 중에서도 왼쪽 정확히 혀의 반쪽만 붉어져 아팠고 혓바늘 같은 하얀 것들이 났으며, 이후 통증이 사라지고 왼쪽 얼굴의 마비증상을 보았을 때, 단순 구내염이 아닌 ‘대상포진’이었던 것 같다고 재판정해 주신 것이다.
즉,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3차 신경을 침범하면서 말초신경인 안면신경의 문제로 생긴 ‘말초성 안면마비’라고.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안면신경(7번 뇌신경)이 손상되어 발생하는 증후라고 한다.
대상포진이란 ‘면역력’의 영향을 받는 병으로 젊은 사람에게는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면역력이 약한 50세 이상의 성인에게 주로 발병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과로’,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면역력이 쉽게 떨어지는 젊은 20-30대 청년들에게 유행한다 더라.
위와 같은 이유로 안면마비는 ‘쉼’이 가장 중요한 병이다. 원인이 스트레스와 과로, 낮아진 면역력이라 그런지 처방도 너무 단순했다. 신경과 의사 선생님께서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체력 보충에 힘을 쓰라 하셨다. 모두가 한 입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으로부터 2주간은 왼쪽 얼굴이 더 무너질 거니 너무 충격은 받지 말라고 하셨다. 보통사람 기준으로 6개월 정도의 완치 기간이 걸린다고 하셨다. 지레 겁먹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건만, 실제로 어제보다 오늘 더 무너진 왼쪽 얼굴을 보니 다가올 2주가 두렵게 느껴졌다.
단순 구내염으로 알고 방치한 그 일주일이 큰 타격이었던 것. 대상포진이나 안면마비의 골든타임은 72시간. 발진이 생긴 날부터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더 빠른 시일에 치료가 가능하다는데. 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나면 말초신경의 끝인 귀 뒤쪽에 반응이 생겨 귀의 통증, 청력 소실, 이명, 어지럼증 등의 증상과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발진이 난 후 안면신경 손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미각소실 및 신경통이 수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고.
많은 이들이 제대로 진료받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친 것에 대해 참 안타깝게 생각했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안면마비는 ‘람세이헌트증후군’이라 불리는데, 증상이 단순 안면마비보다 일반적으로 중증도가 높다고 한다. 람세이헌트증후군으로 인한 안면마비로 나의 경우와 같게 눈을 감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어 안구통과 시력장애를 초래하는 각막 손실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이러한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인공눈물도 함께 처방해 준다.
‘람세이헌트증후군’은 대상포진이나 수두에 걸린 적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50세 이상의 성인이 접종 대상이지만 오늘날 젊은 청년들도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아 람세이헌트증후군을 비롯한 대상포진의 발생 위험을 낮추길 바란다. 이러한 정보를 대상포진에 걸려 후유증까지 안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되어 비록 나는 원통했지만. 대상포진을 앓은 사람도 완치 후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지난 후 예방접종을 하면 재발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마비를 느꼈던 당시 왜 아버지가 나에게 바로 응급실이나 큰 병원부터 가라 했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로도 계속해서 아버지의 물음은 끊이질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봐. 근래에 무슨 일 있었지?.”
나도 궁금했다. 분명 지금보다 더 힘들 때도 많았는데 말이지. 왜 평안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몸은 뒤늦게 반응하는 걸까. 스트레스였던 순간들과 사람, 관계들이 하나의 필름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몸과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해 왔던 행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간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 거나 제대로 된 숙면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 평소 체력 관리에 소홀했던 점,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인간관계, 과민한 시기에 역류성 식도염으로 먹고 쉽게 구토하던 습관 등.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이 병의 다이내믹한 탄생기를 만들어 버렸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대학교 4학년인 내게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인생에 불필요하고 겪지 않아도 될 경험으로 인해 시간과 신경을 쏟아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이 많아졌다고 느낀 것.
그래서 나는 신께 묻고 싶었다.
“몸이 지치고 힘들다고 느꼈을 땐 강제로라도 빨간불을 켜주지 않으셨으면서, 초록불을 켜고 달리고 싶은 현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