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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Apr 28. 2024

안면마비, 그 원인을 찾아서

20대 초에 안게 된 '말초성 얼굴마비'


하루가 지날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왼쪽 얼굴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왼쪽 눈꺼풀은 내려앉아 쌍꺼풀을 집어삼켰고, 왼쪽 입꼬리는 멈춰있지 못해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내가 원해서 지어진 웃음이 아닌, 오른쪽 입꼬리만 과하게 올라가 일명 '썩쏘'를 짓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나는 점점 웃음을 기피하고 싶었다. 웃음이 나오는 상황엔 두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거나 몸을 잔뜩 숙여 웃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너무 이질적이라 금방 웃음이 머졌기 때문에.


이대로 얼굴이 굳어 버릴까 봐 진짜 내 입꼬리를 되찾지 못할까 봐 조금은 무서웠다. 근육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게 예쁘게 웃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서럽던지. 활짝 웃었던 때를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내가 웃음을 잃게 될 줄은 몰랐다.




서울 중심가의 한 신경과에 방문하고 나서야 안면마비에 걸리게 된 경로이자 그 원인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작은 혓바늘이 나기 시작한 2주 전부터 시작해 그동안 돌아다닌 병원들에서 받은 진찰과 내가 겪은 구내염의 정도를 자세히 설명드렸다. 구내염도 이런 구내염이 없었다고. 혀에 물만 닿아도 아팠고 입으로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사실(찬 공기가 혀에 닿으면 어찌나 따갑던지)을 말씀드렸다.


신경과에서 들은 이야기는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나는 혀 중에서도 왼쪽, 정확히 반쪽만 붉어져 아팠고 혓바늘 같은 하얀 것들이 났었다. 그리고 왼쪽 얼굴만 마비된 것을 보았을 때, 단순 구내염이 아닌 '대상포진'이었던 것 같다고 재판정해 주신 것이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3차 신경에 침범하면서 말초신경인 안면신경의 문제로 생긴 '말초성 안면마비'라고 하셨다.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안면신경(7번 뇌신경)이 손상되어 발생하는 증후라고 한다.


대상포진이란 '면역력'의 영향을 받는 병으로 젊은 사람에게는 드물게 나타나고 대개는 면역력이 약한 50세 이상의 성인에게 주로 발병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과로’,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젊은 20-30대 청년들에게 유행한다 더라.


위와 같은 이유로 안면마비는 ‘쉼’이 가장 중요한 병이다. 원인이 스트레스와 과로, 낮아진 면역력이라 그런지 처방도 너무 단순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스트레스받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체력 보충에 힘을 쓰라 하셨다. 나에게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미션.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주간은 왼쪽 얼굴이 더 무너질 거라고 하셨다. 완치는 보통사람 기준으로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셨다. 지레 겁먹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건만, 실제로 어제보다 오늘 더 무너진 내 왼쪽 얼굴을 보니 다가올 2주가 두렵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골든타임 놓친 것을 참 안타깝게 생각했다. 단순 구내염으로 알고 방치한 그 일주일이 큰 타격이었던 것. 대상포진이나 안면마비의 골든타임은 72시간이다. 발진이 생긴 날부터 72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더 빠른 시일에 치료가 가능하다는데. 이 골든타임을 놓치고 나면 말초신경의 끝인 귀 뒤쪽에 반응이 생겨 귀의 통증, 청력 소실, 이명, 어지럼증 등의 증상과 합병증이 동반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발진이 난 후 안면신경 손상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미각소실 및 신경통이 수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고 한다.


대상포진으로 인한 안면마비는 '람세이헌트증후군'이라 불리는데 안면마비 증상이 단순 벨마비보다 일반적으로 중증도가 높다. 람세이헌트증후군으로 인한 안면마비는 나의 경우와 같게 눈을 감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어 안구통과 시력장애를 초래하는 각막 손실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람세이헌트증후군'은 대상포진이나 수두에 걸린 적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50세 이상의 성인이 접종 대상이지만 오늘날 젊은 청년들도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아 람세이헌트증후군을 비롯한 대상포진의 발생 위험을 낮추길 바란다. 대상포진을 앓은 사람도 완치 후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지난 후 예방접종을 하면 재발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얼굴의 마비를 느꼈던 당시, 아버지가 나에게 바로 응급실이나 큰 병원부터 가라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 병원에 다녀온 후로도 계속해서 나에게 묻는 아버지.

"솔직하게 말해봐. 근래에 무슨 일 있었지?."


나도 궁금했다. 분명 지금보다 더 힘들 때도 많았는데 말이지. 왜 평안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몸은 뒤늦은 반응을 하는 걸까. 스트레스였던 순간들과 사람, 관계들이 하나의 필름처럼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 몸을 생각하지 않고 해 왔던 행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간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거나, 제대로 된 숙면 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 광고회사 인턴생활로 인해 시작한 흡연,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연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과민한 시기에 구토하던 습관 등과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보니 이 병의 다이나믹한 탄생기를 만들어 버렸다.


또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 이제 곧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이 시기에 나는 또 한껏의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인생에 불필요한, 겪지 않아도 될 경험으로 인해 시간과 신경을 쏟아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이 많아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신께 묻고 싶었다.


"몸이 지치고 힘들다고 느꼈을 땐 강제로라도 빨간불을 켜주지 않으셨으면서, 초록불을 켜고 달리고 싶은 현재. 왜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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