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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마비된 얼굴 그리고, 해방된 시간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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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수다떠는 옌 May 01. 2024

인생 첫 입원기(1%)

“삐빅- 배터리 교체기입니다.”

몸에서 보낸 강렬한 신호 덕에 인생 첫 입원을 결정했다. 안정과 휴식이 중요한 병이기에 나는 3일 정도 푹 쉬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학점 관리,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자격증 리스트, 만나야 하는 인간 관계 등. 게다가 발병 직전 3개월 간 나는 헬스장을 다니며 식단까지 조절하는 생활을 이어왔는데, 이 마저도 당연히 중단해야 했고 아르바이트와 근로근무 등도 잠시 멈춰야만 했다.

다행히 학기 초라 과제나 시험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지만, 무엇보다 예전처럼 체력을 쓰면서까지 놀지 못할 것 같단 생각에 더욱 암울했을 뿐. 대학생 신분의 유통기한 1년 남은 시점에 실컷 놀아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걸려버렸다.

이런 내 심정을 당연히 모를 동아리 친구들에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락이 왔다. 개강총회 참석여부를 묻는 문자였다. 이에 나는 친구들에게 재밌게 놀라고,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조심히 들어가라며 전해지지 않을 씁쓸한 웃음과 함께 답변을 전송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내가 아는 나라면 병실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동안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을 것을 알기에. 병실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는가 찾아 시간을 알차게 보내 보기로 했다. 모든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날을 기약한 채.

그렇게 나의 투병일기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왜 주부로 계신 어머니나 할머니께서 아프신 와중에도 집안일을 놓지 못하셨는지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내 할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오는 스트레스와 신경이 더 크기 때문. 이 현실 자체를 부정하고 일상으로 자연스레 들어가고 싶었던 것. 이런 것들을 쉽게 놓질 못하니, 그래서 아픈 거겠지 싶었다.

이번 일을 통해 내게 또 다른 병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쉬어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병.’

몸에서 제발 쉬라고 ‘배터리 교체기’를 준 것은 아닐까.

입원실에 들어선 순간, 대상포진에 이어 안면마비까지 안게 된 과정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일기나 쓰며 내 세상인 것처럼 쉬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병원에서 1인실을 쓸 수 있던 터라 새로운 쉼터를 얻은 기분이었다.

입원 첫날 저녁, 아버지께서 내가 좋아하는 시장 만두를 사다 주셨다. 계속해서 필요한 게 없냐고 내게 물으시며 어찌나 신경 써 주시던지. 빨리 이 감사한 마음을 활짝 핀 웃음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회복되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으며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거 몇 개월간 건강한 음식을 먹고 금주하며 생활패턴을 깔끔하게 고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보니 금세 검게 물든 밤, 나는 감기지 않는 왼쪽 눈 때문에 병원에서 준 안대를 끼고 잠에 청하려 노력했다.

편안하고 깊은 밤을 위해.

증상 3일 차, 안면 근육이 더 단단하게 뭉쳐진 느낌이 들었다. 물을 마실 때면 왼쪽 입에서 조금씩 물이 세기 시작했다. 밤새 억지로 감았던 왼쪽 눈은 살짝 충혈된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신경 써서 눈 마사지를 하고 감으며 수분이 빠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눈 스트레칭도 하고 왼쪽 얼굴도 만져주면서 병실에서의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부터 반가운 손님이 내 병실을 방문했다. 손녀의 입원 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직접 만드신 뼈다귀 감자탕을 들고 오신 할머니. 눈물이 살짝 머금어졌지만, 아침부터 호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으니 참아 본다. 따뜻한 할머니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더라.

자신 있게 고기를 한 입 물었으나 왼쪽 턱은 쉽게 아물어지지 않았다. 왼쪽의 위아래 어금니들이 서로 쉽게 닿지 않아 음식물을 잘게 부수는 저작운동을 할 수 없었던 것. 턱 근육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니 왼쪽 볼에 모인 음식물들 또한 직접 손으로 밀어 넣어주어야 했다. 그래도 나는 왼쪽을 많이 활용해 고기를 씹으려 노력해 봤다. 이대로 굳어질까 봐 오른쪽 턱만 너무 발달해 비대칭 턱이 될까 무서워 왼쪽을 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온 얼굴이 찡그려지고 그 반동에 목도 가만히 두고 씹고 있지 못하는 나의 이질적인 상태가 괴상하게만 느껴졌다.

밥 먹는 동안의 내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계시던 할머니께서는 결국 울컥하셨다. 상상도 못 했던 내 모습에 나 자신도 놀라 눈물이 계속 고였지만, 나는 숟가락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 채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맛있다. 할머니.”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앞으로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를 기피해가겠다. 당분간 친구들도 못 만나겠구나 싶어 약속을 최대한 줄이기로.

식사 후엔 앞서 처방 받은 위장 보호제랑 스테로이드 알약을 12개 정도 먹어야 했다. 매일 아침마다 스테로이드를 줄여가며 일주일 간 먹으라 더라. 한 알씩 스테로이드 부작용만은 없길 바라며 배불리 먹어 본다.

한가한 병실의 낮에는 오랜만에 낮잠도 청해보고, 들고 온 책도 읽고, 노트북을 켜서 파란만장했던 일주일을 요약해 일기를 적어 보기도 했다. 꽤 시간이 지났겠지 싶었으나 창밖은 계속 밝았다. 침대를 올렸다 내렸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금세 나가서 바람 쐬고 싶었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푸르른 학교 운동장을 돌고 싶었다.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친구와 대화하며 걸을 수만 있었다면 더욱이 바랄 게 없었다. 그것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면, 이제 나도 건강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는 것. 어른들이 젊을 때부터 몸관리하고 신경 쓰라고 하신 말씀에는 다 뼈가 있었던 것.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정말이었다. 스트레스 관리도 자기 관리였다는 걸 나는 그간 왜 몰랐을까.

무엇보다 내가 아픈 건 가족한테 미안한 일이라는 점. 하루 종일 나를 신경 쓰시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따스운 집에서 나와 일찍 독립해서 혼자 살 거면 건강하게 잘 지내야 했는데 말이다.

“난 정말 개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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