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다떠는 옌 May 13. 2024

한의원 첫 방문기 2

Dear. 투병길을 응원해 준 새 가족에게


최근에 급격히 살을 뺀 적이 있는지.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지. 과로를 한 적이 있는지. 과음을 한 적이 있는지. 이와 같이 한의사 선생님께서 계속 물으셨다. 나의 대답은 모두 “YES”였다. 


그리고, 내 눈앞에 놓인 검사 결과지. 나는 차근히 진단 결과를 듣기 시작했다. 다소 충격적이었던 첫마디와 함께.


“꽤 심각한데요?”




현재 나의 몸 상태는 나이에 비해 체력이 많이 약하다고 하셨다. 신체 기력이 70% 이상인 보통 청년들에 비해 나는 50%밖에 안된다고. 무엇보다 이 모든 건 뇌에서 판단되는 결과라고 하셨다. 


즉, 정신과 몸이 아주 지친 상태라는 것. 어떤 그래프는 7단계로 나뉘어 진단받게 되어있는데, 거의 3에 가까운 수치에 표시되어 있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그것을 가리키시며 무조건 7, 못해도 5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신적으로는 불면증, 숙면 중 꿈을 꾸는 현상, 건망증, 어지럼증 등의 현상을 느낄 것이고. 이렇게 계속 방치될 경우에는 조울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체적으로는 오른쪽에 비해 왼쪽이 약하다고 하셨다. 심장이 매우 불안정하게 뛰고 있는데, 보통 사람에 비해 한 템포 빠르게 뛰고 있으며, 그래서 심장이 위치한 왼쪽이 약한 것 같다고. 이럴 경우 공황장애가 올 확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하루 중 오후 3시에 몸에서 가장 피로도를 느낄 것이니 낮잠을 권하며 저녁 6시부터 지침 상태를 느끼게 될 거라 한다. 


또한, 보통의 안면마비는 입이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근육이 아래로 쳐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는 자율신경계, 말초 신경계가 전반적으로 스트레스성 마비 증세를 보이면서 말초신경 장애현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진단을 내리셨다.


일단,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두 달 간은 한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부터 물리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필요한 한약의 성분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는 그날 바로 첫 물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눈앞에 놓인 재활 침대를 보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떻게 아셨는지 눕자마자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 배 위에 따뜻한 주머니 같은 것을 올려주셨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첫 번째 치료는 ‘침치료’였다. 곧장 한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긴장하지 말라며 과거 환자들에 대해,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내뱉으시며 재빠르게 침을 놔주셨다. 긴장한 환자를 위한 선생님의 배려같이 느껴졌다. 왼쪽 얼굴엔 약 침 10개 정도가 꽂혔다. 얼굴이 마비되어서 그런지 처음으로 대량의 침이 꽂혔지만 통증은 못 느꼈다. 


중요 근육에는 침에 전극을 연결해 전기 자극으로 근육을 풀어주는 전침 치료를 했다. 그리곤 편히 치료를 받으라고 눈 위에 거즈 같은 것을 양쪽에 하나씩 올려 주셨는데, 나는 왼쪽 눈의 위아래로도 침이 놓인 상태였기에 하얀 거즈가 침 위에 둥 뜬 채 내 앞에 아른거렸다.


‘삐삐삐-’, 그래도 잠시 눈을 붙이려 시도하니 금세 기계음이 울렸다. 


두 번째 치료는 ‘온열 치료’였다.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 배 위에 올려진 마사지 팩보다 더 작은 팩을 들고 오셨다. 나는 지시대로 오른쪽으로 돌아 누웠고, 왼쪽 얼굴 위엔 돌덩이만 한 팩이 올려졌다. 따뜻했다. 침치료 때의 긴장이 싹 풀리는 듯했다. 쪽잠 들기 딱 좋은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마사지 치료’를 받았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기계에 젤을 발라 왼쪽 얼굴에 마사지를 하는 치료이다. 차가운 젤이 얼굴에 처음 닿을 때 온열 치료로 몰려왔던 잠이 확 깼다.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는 기계를 둥글게 굴리시며 내 왼쪽 얼굴 전체를 마사지해 주셨고,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스몰톡도 나눠주셨다. 그 작은 이야기 꽃을 통해 한의사 선생님과 간호 보조 선생님이 부부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두 분이 나를 딸처럼 걱정해 주시고 더 잘 챙겨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마사지 치료를 마치고, 다음부턴 화장을 하고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도 왼쪽만 싹- 지워지니 더 웃기단 말이지. 


한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조언을 들으며 첫 치료를 마무리했다. 왼쪽 눈이 잘 안 감길 테니 안구건조증이나 추후 올 다른 안구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안대를 끼고 다니는 걸 추천하고 왼쪽 얼굴이 바람을 많이 맞지 않도록 마스크를 끼고 다니라고.


마음 편히 쉬고, 꼭 잠을 푹 자고,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함께 치료하자고. 

특이 케이스이지만, 본인이 꼭 웃게 도와주겠다며. 두려워도 말고 걱정도 말라고. “내가 꼭 다시 웃게 해 줄게”라고 말씀하셨다.




예상도 못한 투병길에서 민들레 씨 같은 말을 들었다. 

내일 보자는 말씀과 함께 두 분이서 나를 배웅해 주셨다. 

나는 그렇게 첫 한의원 방문을 마쳤다.


낯설고 두려웠던 한의원 첫 방문이었지만, 순조롭게 치료를 도와주고 응원하고 마음 써주는 새 가족이 생긴 것만 같았다. 



“덕분에 다음 봄에는 노란 민들레처럼 제 얼굴이 활짝 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 06화 한의원 첫 방문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