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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May 13. 2024

한의원 첫 방문기 2

투병길을 응원해 준 새 가족


최근에 급격히 살을 뺀 적이 있는지.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지. 과로를 한 적이 있는지.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있는지. 한의사 선생님의 계속되는 물음들에 나의 대답은 모두 "YES"였다. 그리곤 눈 앞에 있는 결과지를 보여주시면서 차근히 진단 결과를 설명해주셨다. 


현재 나의 몸 상태는 나이에 비해 체력이 많이 약하다고 하셨다. 신체 기력이 보통 청년들은 70% 이상이 정상인데 나는 50% 정도라고. 무엇보다 이 모든 건 뇌에서 판단되는 결과라고 하셨다. 즉, 정신과 몸이 아주 지친 상태라는 것. 어느 한 그래프는 7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거의 3에 가까운 수치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한의사 선생님은 그것을 가리키시며 무조건 5 이상, 7 정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신적으로는 불면증, 숙면 중 꿈을 꾸는 현상, 건망증, 어지럼증 등의 현상을 느낄 것이고. 이렇게 계속 방치될 경우에는 조울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신체적으로는 오른쪽에 비해 왼쪽이 약하다고 하셨다. 심장이 매우 불안정하게 뛰고 있는데, 보통 사람에 비해 한 템포 빠르게 뛰고 있으며, 그래서 심장이 위치한 왼쪽이 약한 것 같다고. 이럴 경우 공황장애가 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하루 중 오후 3시에 몸에서 가장 피로도를 느낄 것이니 낮잠을 권하며 저녁 6시부터 지침 상태를 느끼게 될 거라 한다. 


또한, 보통의 안면마비는 입이 옆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는 근육이 아래로 쳐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는 자율신경계, 말초 신경계가 전반적으로 스트레스성 마비 증세를 보이면서 말초신경 장애현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두 달간 한약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부터 물리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한약의 성분들을 설명 듣고 그날 바로 첫 물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눈앞에 놓인 재활 침대를 보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떻게 아셨는지 눕자마자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 바로 배 위에 따뜻한 주머니 같은 것을 올려주셨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첫 번째 치료는 '침치료'였다. 곧장 한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긴장하지 말라며 과거 환자들에 대해,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 끊임없이 말을 내뱉으시며 재빠르게 침을 놔주셨다. 긴장한 환자를 위한 선생님의 배려같이 느껴졌다. 왼쪽 얼굴엔 약 침 10개 정도가 꽂혔다. 얼굴이 마비되어서 그런가 처음으로 대량의 침이 꽂혔지만 통증은 못 느꼈다. 중요 근육의 침에는 전기 집게를 꽂아 전침치료를 했다. 그리곤 편히 치료를 받으라고 눈 위에 거즈 같은 것을 양쪽에 하나씩 올려 주셨는데, 눈썹 위쪽과 눈 아래쪽에도 침이 놓인 내 왼쪽 눈엔 하얀 거즈가 침 위에 둥 떠있었다.


'삐삐삐-'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금세 기계음이 울렸다. 두 번째 치료는 '온열치료'였다.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 배 위에 올려진 마사지 팩보다 더 작은 팩을 들고 오셨다.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 누웠고, 왼쪽 얼굴 위엔 얼굴만 한 팩이 올려졌다. 따뜻했다. 침치료 때의 긴장이 싹 풀리는 듯했다. 쪽잠 들기 딱 좋은 상태였다.


마지막은 '마사지 치료'. 손에 잡히는 작은 기계에 젤을 발라 왼쪽 얼굴에 마사지를 하는 것. 차가운 젤이 처음 얼굴에 닿을 땐 온열치료로 몰려왔던 잠이 확 깬다.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는 기계를 둥글게 굴리시며  조심스럽게 내 왼쪽 얼굴 전체를 마사지해 주셨고,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스몰톡도 나눠주셨다. 그 스몰톡을 통해 한의사 선생님과 간호 보조 선생님이 부부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두 분이 나를 딸처럼 걱정해 주시고 더 잘 챙겨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사지 치료를 마치고, 다음부턴 화장을 하고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도 왼쪽만 싹- 지워지니 더 웃기단 말이지. 한의사 선생님의 마지막 조언들로 첫 치료가 끝났다. 왼쪽 눈이 잘 안 감길 테니 안구건조증이나 추후 올 다른 안구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안대를 끼고 다니는 걸 추천하고, 왼쪽 얼굴이 바람을 많이 맞지 않도록 마스크를 끼고 다니라고.


마음 편히 쉬고, 꼭 잠을 푹 자고, 건강한 음식 먹으며,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함께 치료하자고. 특이 케이스이지만, 본인이 꼭 웃게 도와주겠다며. 두려워도 말고 걱정도 말라고. "내가 꼭 다시 웃게 해 줄게."라고. 투병길에 하나의 민들레 씨가 될 말씀들을 해주셨다. 그리고 내일 보자는 말씀과 함께 두 분이서 나를 배웅해 주셨다. 나는 그렇게 첫 한의원 방문을 마쳤다.




낯설고 두려웠던 한의원 첫 방문. 순조롭게 치료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고 마음 써주는 새 가족이 생긴 것 같았다. 덕분에 다음 봄에는 노란 민들레처럼 제 얼굴이 활짝 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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