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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떠는 옌 May 08. 2024

한의원 첫 방문기 1

나는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월요일 아침, 6시 20분으로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6시 정각에 눈 뜬 나는 핸드폰으로 하루의 일과를 다듬어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의 월요일은 일주일 중에서도 가장 빡빡한 일과를 가진 날이었다. 아침 8시부터 12시 점심시간까지 교내 근로를 하고, 오후에는 두개의 수업을 들은 후, 오후 4시부터 헬스장에 다녀온 뒤,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왔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월요일부터 이 스케줄을 조금 바꿔야 했다. 헬스장에 가는 대신 ‘한의원’을 가야 하기 때문. 헬스장을 다니던 꾸준함으로 이젠 한의원을 가야 한다.(유일하게 하루 일과 중 포기할 수 있던 것이 헬스장 스케줄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새로워진 월요일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다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방안에 틀어 놓은 잔잔한 음악과는 어울리지 않은 분주한 외출 준비, 그 가운데 나는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건 작은 빨대를 이용해 오른쪽 입술에 꽂아 차를 마시고 있는 기괴한 나(안 그럼 왼쪽 볼에 물줄기가 줄줄 흐를 테니)였다.



나는 스테로이드 약을 먹기 위해 아침밥을 꼭 챙겨 먹어야 했다. 아팠을 때 먹었던 백숙 육수에 오트밀과 미역, 닭가슴살, 계란을 넣어서 ‘닭가슴살 미역 계란 백숙 육수 오트밀 죽(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을 만들어 먹었다. 


외출 전, 거울 앞에서 손으로 왼쪽 오른쪽을 가려보며 근육 움직임의 경과를 살펴봤는데 눈은 어제보다 더 가라앉았다. 눈 밑 애굣살 쪽 근육도 풀려서 인지 탱탱함이 사라지고 푹 꺼진 듯했다. 콧구멍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꼼짝도 하지 못했고, 양치질할 때도 왼쪽 입술로 물이 줄줄 세는 건 기본이었다. 


웃음의 대칭은 굳이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중 가장 환영 받지 못하는 월요일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분명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이건만 나는 더욱 환영할 수 없었다. 무너진 왼쪽 얼굴을 사람들에게 내비치는 게 싫었기 때문. 누군가 내 얼굴에 대해 물어본다면 굳이 설명해야 하는 수고까지. 생각하니 머리 아프다.


나는 언제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가족 외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게 고작 며칠이었지만, 오랜만에 외부인들을 만나니 하루가 더 빠르게 지나가는 듯했다. 근로를 함께 하는 친구에게는 새롭게 생긴 내 묘기(?)들도 보여주고 웃으며 하루를 즐겁게 견뎌내고 있었다. 근로 선생님들께 지난주에 출석하지 못한 이유를 말씀드리다 보니, 자연스레 병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 모든 시간과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처음으로 한의원에 방문하기 전까지는.



수업이 끝나고 미리 알아놨던 학교 앞 한의원에 방문해 보았다. 처음으로 혼자 방문해 본 동네 한의원. 사람이 몇 없던 그 공간 자체는 아담하고 따스웠다. 프런트에서부터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는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진료를 접수하고 나는 문 앞에 놓여있는 산수유 차(산수유 차는 진정에 좋다고 합니다) 반 잔을 따라 마시면서 순서를 기다렸다. 


금방 이름이 불려서 들어간 진료실에는 터프하게 생기신 아버지 벌의 한의사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나는 자리에 앉아 한의사 선생님께 현재 안면마비라는 결과를 얻게 된 지난 과정들을 차근히 말씀드렸더니, 한의사 선생님께서는 되려 놀라시며 몇 번이나 물음을 되물으셨다.


“혀에 대상포진이 났다고요? 혀 위에?”



일단 방문해 줘서 고맙다면서 선생님께서 과거에 치료한 안면마비 환자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먼저 나의 현재 몸 상태, 즉 면역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검진을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간호 보조 선생님이 안내해주신 곳으로 가서 머리에 둔탁한 머리띠를 장착하고 다섯 손가락에는 집게 같은 것을 각각 꽂은 후 앞에 놓인 발판 위에 맨 발을 올려 두었다. 


그렇게 컴퓨터 화면 같은 것을 바라보며 5분가량의 검진을 하고 나니 옆에 프린터기 같은 곳에서 종이 한 장이 뽑혔다. 나는 곧장 옆 기계로 옮겨져 줄에 연결된 수갑 같은 것을 발목과 손목에 채웠다. 


눈앞에는 각종 영역(건강 상태를 표할 수 있는 표나 사람의 몸 그림 같은 것)이 그려진 A3만한 큰 종이와 기계손이 있었다. 간호 보조 선생님이 시작 버튼을 누르니 기계손이 막 이곳저곳 움직이며 또 5분가량 그림을 그리고 체크하며 글씨를 쓰고 난리였다. 


심지어 그 기계손이 옆에 있는 삼색(빨강, 파랑, 노랑) 마커팬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을 보곤 한의원에서 현대기술에 감탄했다.


기계의 요란한 소리가 멈추고 종이 위에 그려진 결과물들을 보니, 누가 봐도 좋지 않은 상태에 관해 표시한 것들 뿐이었다. 


역시나 한의원 선생님께서 종이를 보시더니 무거운 숨과 함께 내뱉으신 첫마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지금 건강의 적신호가 켜졌다며. 면역이 바닥이라고.



‘똑-똑.’ 때마침 간호 보조 선생님께서 따뜻한 산수유 차를 한 잔 들고 오셨다. 


첫 검진자에게 주는 특별 서비스인가. 따뜻한 차는 내 앞에 놓여졌고, 나는 감사를 표하는 고개 인사를 건넨 뒤 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씁쓸하게 웃으며 한의사 선생님께 덤덤히 한 마디를 던져보았다.


제가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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