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인데 이제 독서를 시작하면 늦은 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많이 하신 말씀이 있다. 성인이 되면 읽으려고 해도 읽을 시간이 없으니 학교 다닐 때 많이 읽어두라고. 물론, 어릴 때 읽었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수능 국어 영역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에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어른들이 더욱 책을 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의 경우, 20대인데 이미 책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다고 단정 짓는 경우도 심심찮게 봤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가 굉장히 잘못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경우는 미안하지만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나 틈만 나면 핸드폰을 드는 이 시대에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니. 핸드폰 들 시간에 읽기만 해도, 아주 느리게 읽는다고 해도 일주일이면 300-400 페이지 책 한 권 읽을 수 있다. 유튜브에 날리는 시간, 인스타에 날리는 시간, 친구와 카톡 하느라 날리는 그 시간 다 모아 독서에 쏟았다면 독서율 0.6이라는 수치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하지만 우리가 책이 좋은 걸 몰라서 안 읽나. 우리는 독서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요소 때문에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장애물인 '휴대폰을 내려놓는 방법'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기 전 참고하면 좋을 나의 서평이다)
독서가 사교육을 이긴다(이미향 저)를 일부 참고했음을 알립니다.
위 책은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저술된 것으로, 이 글에서는 어른을 위해 변용했음을 알립니다.
책 추천에 관련된 영역의 경우, 굉장히 주관적인 이야기임을 알립니다.
개인에게 맞는 방법들이 각기 다를 수 있으므로 이 글에 나온 방법을 변용을 해도 좋고, 맞지 않는다면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책은 정적이면서 간접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글은 읽고 그것을 뇌에서 이미지 등으로 변형할 수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매체다. 하지만 영상은 다르다. 동적이면서 직접적이고, 책이 갖지 못하는 입체적인 요소까지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인간은 생동감이 넘치는 매체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더 쉽고, 자극적이니까.
여기서 숏츠와 릴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숏폼 콘텐츠는 대체로 유익하지 않다. 물론 사람이 매일 유용한 것만 찾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유용하지 않은 곳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바람에 유용함을 놓친다는 건 굉장히 슬픈 일이 아닐까? 나는 그 유용함을 최대한 얻기 위해 유튜브나 인스타, 커뮤니티 대신 독서를 선택했다. 그래서 요즘은 드라마는 물론 영화도 잘 안 보는 편이다. 요즘 시대에 이럴 수 있냐고?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이용했다.
먼저, 유튜브와 인스타 알고리즘을 독서로 이끌었다. 시청 기록과 구독 목록, 좋아요 목록을 전부 갈아엎었다. 독서 관련 콘텐츠를 자주 보고, 그런 채널들을 구독했다. 좋아요도 그런 채널에만 눌러뒀다. 그래서 식사를 하면서 유튜브를 보게 되더라도 유익한 것들 위주로 알고리즘에 올 수 있게 해 뒀다. 간혹 쓸모없는 내용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하거나 보게 되더라도 숏츠로 딱 한 편만 본다. 돋보기도, 스크롤도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걸 누르거나 내리는 순간 나의 노력은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니까.
독서와 이를 병행하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깨끗해졌고, 더불이 잘 보지 않게 되었다. 10번 방문할 거 한 번만 방문하는 식으로. 이후에는 더 큰 노력을 해봤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중단했었다. 현재는 음악 듣는 것 외에는 잘 보지 않아서 다시 구독해놓기는 했지만. 나는 광고를 무척 불편해했다. 그래서 그 불편함을 활용했다. 광고를 봐야 하고, 광고를 안 보려면 돈을 다시 내야 하니 안 보게 되었다. 핸드폰에서 유튜브 어플을 삭제하고, 스포티파이와 밀리의 서재를 설치했다.
개인적으로 스포티파이를 애용했다. 스포티파이의 장점은 유익한 팟캐스트와 외국어 팟캐스트가 있다는 것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중국어 등의 팟캐스트도 들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팟캐스트 장르도 경제, 철학, 시사 등 유익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듣다 보니 나의 머릿속에 있던 숏폼 콘텐츠의 찌꺼기가 내려가고, 유익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혹시 도파민 중독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이러한 방법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
내가 사유하는 것이 곧 내가 된다. 혹시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아는가? 아비투스는 부르디외라는 사회학자의 '구별 짓기'에 나오는 단어다. 아비투스는 개인이 겪어온 사회문화적 환경이 만든 그의 취향을 만드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Habitus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아비투스라는 단어는 영단어 Habit(습관, 버릇)과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들과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아비투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봐야겠다. 아비투스에는 심리자본, 문화자본, 경제자본 등이 있다. 이중 가장 재미있는 요소인 '문화자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구별 짓기 이론에 따르면, 상류층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세계문학전집, 예술영화, 클래식 음악 등을 좋아한다고 한다. 반면, 민중 계급의 경우에는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천만관객 영화, 대중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취향이 저렴하다는 거야? 너는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런 걸 이론이라고 내놓냐?"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아비투스가 가진 맥락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아비투스의 본질이 무엇인가? 실제 도리스 메르틴의 아비투스라는 책에도 나와있듯, 아비투스는 돌에 새겨져 있지 않다. 그러니까, 민중 계급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평생 민중 계급의 아비투스만 갖고 살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별 짓기 이론을 세운 부르디외라는 학자도 시골 출신이다. 그래서 시골 출신인 자신과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차이를 비교하다 보니 아비투스라는 개념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반대도 성립한다. 유명 재벌의 갑질 논란과 논란이 되는 정치인들의 천박한 언행을 보아라. 우리는 이를 통해 경제자본만이 아비투스를 만드는 것도 아니며,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나를 거치지 않고는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비투스를 바꾸기 제일 간단하고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책을 읽는 것이다. 민중 계급의 사람이 당장에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회자본을 가질 수는 없다. 단, 그들이 쓴 책을 읽거나 그들이 읽는 책을 따라 읽으며 자신의 아비투스를 성장시킬 수는 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특히 후자다. 나는 서점에서 자기 계발서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이런 책을 읽을 게 아니라 부자가 읽은 책을 따라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봤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같은 부자들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들은 고전을 많이 읽고, 그래서 인문학에 해박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사업으로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돈을 벌어다 줄 소비자들 속에 있는 메커니즘(심리 등)을 알아야 한다. 당장의 트렌드를 알려주는 책들은 피상적인 것들만 알려주고 사라질 뿐이다. 실제로 그 트렌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인간 자체를 고전으로 꿰뚫는 것에 집중한다. 이게 그들이 가진 '독서'라는 아비투스의 힘이다.
성인이 되어서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독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읽지 못했으니 지금도 읽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감. 그리고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큰맘 먹고 책을 열어봤는데 하나도 읽어 들이지 못했을 때 느끼는 절망감. 왜 우리는 종이 묶음 따위에 공포와 절망을 느끼게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정말 간단하게도, 맞는 책을 찾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그게 독서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반문한다면,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 답하고 싶다. 만약 세상 모든 책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읽지 않았을 거냐고.
맞는 책만 찾아내도 앞으로의 인생의 질이 올라간다면 당연히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독서 입문자를 위해 나에게 맞는 책 찾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일단, 서점을 가라. 전자책과 도서관도 그 나름대로 나쁘지 않지만 자유롭게, 여러 개를 놓고 고르기에는 서점이 훨씬 더 좋은 환경임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처음 가는 것이라면 장서 수가 많은 대형 서점을 추천한다. 서울 기준으로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문고 강남점, yes24 NC강서점을 추천한다.
서점에 도착하면 일단 평대에 있는 도서를 봐라. 평대에 있는 책 중 너무 어려워 읽기 힘든 책은 없다. 그다음 평대에 올라와있는 모든 책을 다섯 장만 읽어 보라. 딱 다섯 장이다. 이때 고려해야 할 기준이 몇 가지 있다. 나는 fiction(문학)과 non-fiction(비문학)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문학을 기준으로 등장인물이 너무 많지 않은지, 끌리는 맛이 있는지, 어휘가 너무 어렵지는 않은지, 문장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지를 보면 된다. 등장인물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첫째, 문학작품은 등장인물이 적을수록 이해하기 쉬울 확률이 높아진다. 문학은 끌리지 않으면 읽기 힘들다. 둘째, 문학은 아무리 남들이 명서라고 해도 내가 못 읽으면 소용없는 장르다. 그러므로 내가 읽고 싶어 지게 만드는 책이어야 한다. 셋째, 모르는 어휘가 반 이상이면 읽지 않을 것을 권한다. 모르는 어휘가 한 페이지당 1-2개만 있는 그런 책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넷째, 문장 구조가 쉬워야 한다. 아무리 어휘가 쉬워도 문장이 복잡하면 읽기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첫 독서에 성공하고 싶다면 미사여구가 최소화된, 그러니까 'A는 B와 같았고, C와 같았다. A는 D와 같은 경향도 띄고 있다.'와 같은 구조로 이뤄진 것이 아닌, A는 B이다'라고 확실히 하는 그런 문장이 있는 책들로 읽어야 한다.
비문학은 조금 더 간단하다. 끌리는지, 이해할 수 있는 어휘인지, 내가 요약해 낼 수 있는지. 여기서는 마지막 기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다섯 장을 읽었을 때 그 다섯 장을 한 문장 혹은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가? 이는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추가로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흔히 말하는 '벽돌책'은 고르지 말자. 진전이 없다는 느낌을 받기 쉽고, 그렇게 되면 포기가 빨라진다. 개인적으로 200~300페이지 사이의 책을 권하고 싶다. 벽돌책은 얇은 책으로 벽돌을 쌓아본 후 도전해도 늦지 않는다.
책은 아무나 읽을 수 있습니다. 책이 좋은 매체인 이유는 뵙기 힘든 저명한 분들이 평생을 골몰해 쓴 인사이트를 아주 저렴하게 내지 공짜로 얻어낼 수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도 꼭, 이 좋은 매체를 사유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참고하면 좋을 저의 브런치북 링크 걸어둡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onestepcloser
https://brunch.co.kr/brunchbook/makebfbookworm
https://brunch.co.kr/brunchbook/DiveInClassic1
https://brunch.co.kr/brunchbook/DiveInClassi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