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도 '장비빨'이 필요하다
'장비빨'이라는 말을 아는가?
독서에도 '장비빨'이 작용할 수 있다면?
나는 책을 읽을 때 형광펜을 애용한다. 단, 색의 톤이 낮거나 연한 파스텔톤인 형광펜을 사용한다. 내가 애용하는 사진 속 형광펜은 스타빌로 스윙쿨, 샤피, 제브라의 마일드 라이너다.
형광펜을 쓰고 있다가도 많은 분들이 많이 쓰는 '연필'로 바꿔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결국에는 연필을 선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연필은 그다지 적절한 도구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흑연이라 잘 번지기도 하고, 이곳저곳에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독서를 하는 습관에 연필이란 적절한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부러지기도 쉬워 지하철 같은 곳에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독서 습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해봐야겠다. 나는 문장 수집을 참 좋아한다. 책의 한 페이지나 한 챕터를 개관할 수 있는 문장이나 와닿는 구절에 밑줄을 쳐둔다. 이를 모아두는 것 외에 밑줄 치는 목적은 따로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색을 한 권에 쓰지 않는다. 여러 개의 형광펜을 쓰면 나중에 책을 다시 펼쳤을 때 형형색색이면 오히려 강조하려던 내용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정신없어 보여서.
수성 볼펜(제브라의 사라사, 유니 시그노 등) 사용을 지양하고 유성 볼펜을 애용하는 편이다. 수성 볼펜은 너무 잘 번진다. 간혹 그 잉크를 빨리 흡수하지 못하는 책에다 수성 볼펜으로 메모를 하고 덮어뒀다가 책을 다시 펴면... 내가 찍지도 않은 점이 한가득 차게 되는 끔찍한 불상사가 생긴다.
사용하는 볼펜은 제트스트림 라이트와 모나미 fx 153. 제트스트림 라이트는 유성볼펜임에도 손목이 아프지 않아 애용하게 되었다. 다만 일반 제트스트림이나 모나미 fx 153만큼의 쫀득한 필기감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책에서 직접 주는 각주도 좋지만, 이해를 위해 내가 직접 나를 위한, 나만의 각주를 적는 것도 책을 깊게 읽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만일 책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다면 포스트잇을 활용해서라도 직접 각주를 만들어보자.
내가 각주를 만드는 경우는 총 세 가지다. 첫째, 여러 페이지를 묶어서 메모하고 싶은 경우: 페이지와 묶은 이유를 적어놓는다. 필요하다면 이 페이지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적어둔다. 둘째, 유추로도 파악이 안 되는 단어의 뜻을 인터넷 사전으로 찾아본 후 적어둔다. 셋째, 책을 읽으면서 직접 코멘터리를 달아본다.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이나 나의 의견을 넣고 싶은 부분에 직접 검정 볼펜으로 메모를 해둔다.
탐독을 해보고 싶다면 이 방법을 활용해 보자.
나도 처음에는 문진을 왜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이걸 돈 주고 사서 써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독서를 하다가 메모를 하고 싶을 때마다 책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혼자 닫히는 순간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다른 책으로 눌러버려야 했다. 무게가 있는 제품을 얹는다고 해도 그게 부피가 커서 책 내용이 잘 안 보여서 또 불편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문진을 사서 쓰게 되었다.
책 가운데에 얹기도 하고, 책 끝부분에 얹기도 한다. 아주 초반이나 아주 후반부를 읽을 때는 페이지 끝쪽에, 책의 가운데 부분에서 메모가 필요할 때는 책 가운데에 문진을 얹어 사용한다. 특히 민음사나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분들에게 이 아이템을 추천한다.
이렇게 세 가지 인덱스를 사용한다. 작은 인덱스, 조금 큰 인덱스, 롱 인덱스. 책 페이지를 접을 수는 없고, 해당 페이지를 다시 읽고 싶을 때 혹은 형광펜을 많이 쳐둔 페이지에 인덱스를 해놓는 편이다. 쓴다고 상술해두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롱 인덱스는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사용하기에 그렇게 용이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서. 단, 이게 필요할 때가 있다. 밑줄을 치고 싶은데 밑줄칠 수 없는 도서관 책에 밑줄 대신 해둘 수 있는 게 이 인덱스이기 때문에.
보통은 작은 인덱스를 사용하는 편이다. 이를 사용하면 큰 인덱스보다 조금 더 깔끔하고, 많이 붙일 수 있다. 그럼에도 큰 인덱스가 가끔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이를테면, 한 챕터가 마음에 들어서 그것에 대한 내용을 아주 간단히 적어두고 싶을 때나 필사노트에 인덱스를 붙일 때. 그래서 인덱스와 같이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 중 하나가 네임펜이다.
블로그에 직접 필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이렇게 네 가지의 메모장을 활용한다. A4 크기의 연습장, 보통 사이즈의 로이텀 노트, 로이텀 메모장과 포스트잇. 포스트잇의 경우, 책에 직접 메모하기에는 너무 많을 때 활용하는 편이다. 책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책 챕터마다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나머지 메모장들의 용도를 같이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아 실제 필사 노트 사진을 몇 장 가져와봤다.
제일 큰 필사노트이다. 연습장을 반으로 접어 사용하고 있고, 막 필사하는 노트로 활용하고 있다. 내용 간 겹치는 부분은 형광펜이나 컬러펜으로 강조 표시를 해둔다. 검은 내용은 책 자체의 내용이거나 그를 나의 문장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각주 혹은 책 내용 중 변용해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컬러펜으로 작성해 둔다.
다음으로 큰 필사 노트이다. 이 노트는 위의 필사노트보다는 정제된 것들을 담는 편이다. 책에 대한 확실한 분석이나 진심으로 마음속에 저장해두고 싶은 구절을 작성해 둔다.
마지막으로 제일 작은 수첩의 활용법이다. 이 수첩은 실제로 내가 서점에 다니면서 적어둔 것들이다. 서점에 가서 읽다 보면 그 자리에서 다 읽게 되는 책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책들에 대한 필사가 주로 이 수첩에 있다.
이 수첩은 사실 완벽한 필사 노트가 아니다. 이 수첩에 쓰여있는 필사는 대부분 책 앞부분만 읽고 필사되어 있는데, 이유는 이 필사는 지금 책을 다 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읽어보고 싶은 책을 짧게 필사한 후 나중에 이 메모장을 보고 그 책을 다시 읽어보거나 구매하기 위함이다. 즉, 나의 버킷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존경하는 인물이 읽은 책들을 이곳에 적어놓기도 하고, 나중에 읽어보고 싶은 책을 리스트화해서 적어놓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독서템과 그 활용법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책을 100% 아니, 책의 1000% 이상의 효과를 내고 싶다면 읽기만 하지 말고 다른 시각적인 요소들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