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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an 24. 2022

그림 보는 눈을 키워보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작품을 하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최근에 나의 스타일이 똑같은 방식으로 정체되어 있는 걸 느낀다. 클라이언트들이 처음의 내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해왔던 것만큼, 나 자신도 그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정신적 비용이 꽤 많아진 것이다.


출판물 시장에서 “안정적”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애초에 넓은 연령층에서 잘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림들이 주로 출판사들의 선택을 받는다. 나도 매 페이지마다 안정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에 신경 쓰고 두 번, 세 번씩 다시 보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다 보니, 아무래도 각각 그림들의 개성을 스스로 다듬는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주로 출판물, 주로 아동이나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만 그리다 보니 아티스트로서 많이 질릴 때가 있다. 매너리즘을 방지하기 위해선 광고, 패키지 디자인, 에디토리얼, 패션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을 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초반의 경력은 출판계에서 쌓고 싶다 보니 당분간 출판물 위주로 작업을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작업에 지쳐 아예 내 분야에 대한 흥미조차 다 떨어져 버릴 때 어떻게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그림을 재밌고 즐겁게 다양하게 작업하기 위해, 나의 눈을 높이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보다는 핀터레스트 (Pinterest) 나 비핸스 (Behance)



아티스트로서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이미지들을 생각해보자. 일어나면 밥을 먹기 전에 핸드폰을 체크하고, SNS에 들어가 친구들이나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둘러보고, 가끔 유튜브를 하거나 뉴스를 보다가 마저 밥을 먹고 밖을 나서지 않는가? 우리의 루틴은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너무나 고착화되어 있어서, 이것이 일상화되어버리면 대체로 이런 루틴을 벗어나기 힘들다.


난 주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으로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파악하지만, 좀 더 전문적인 일러스트들을 검색하거나 즐겨찾기 하기 위해서 핀터레스트를 더 이용한다. 구글 못지않게 강력한 이미지 검색 기능을 제공하면서 내가 현재 보고 있는 그림과 매우 유사한 스타일의 그림들만 자동적으로 추천해준다. 그러다 보니 한번 들어가면 1~2시간씩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관련 그림들을 보면서 즐찾을 열심히 해두곤 한다. 가끔 들어가서 핀을 꽂아놓은 그림들을 둘러보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


핀터레스트. 아무래도 내가 흥미로워하는 이미지 위주로 추천이 뜨는 편이다.


핀터레스트가 여타 SNS와 다른 점은 오로지 그림이나 사진만 올라온다는 점이다. 좋은 그림이나 사진도 많지만 각종 밈이나 흥미유발성 기사, 가끔은 거짓 정보들로 타임라인이 도배되는 트위터나 너무나 많은 광고성 포스트 때문에 초기의 순기능을 잃어버린 인스타그램은 좋은 그림을 셀렉션 하기 위한 좋은 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너무 많은 광고와, 너무 편향된 알고리즘으로 똑같은 스타일만 유저들에게 추천하기 때문에 계속 보다 보면 그림 보는 눈이 고착화되기 쉽다. 핀터레스트는 그런 부분에서 그나마 자유롭고, 비핸스 같은 경우엔 주로 좋은 광고디자인, 시각디자인 그림들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다른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얻고 싶은 유저들에게 많이 추천하고 싶다.



2. 큰 메이저 출판사들의 SNS나 웹사이트를 자주 방문하기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Big 5 Publishers 들은 세계에 각종 다양한 자회사들을 갖고 있는 매우 큰 출판사들이다. 이들의 각종 SNS 계정들을 팔로우해놓고 주기적으로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해서 최근 어떤 그림책 트렌드가 있는지 계속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들이 전 세계의 그림책, 소설책 출판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그 해의 트렌드를 이끄는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볼로냐 북페어의 수상작들, 각종 그림책 수상작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가끔 확인하고 관심이 있으면 직접 사보는 것도 시류를 읽는 좋은 방법이다.

펭귄 키즈 섹션의 홈페이지 화면. 주로 최근에 나온 책들과 나올 책들이 나열되어 있다.


예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졌을 때, 출판사들도 이에 맞춰 흑인 여성이나 남성이 많이 나오는 책들을 자주 출간했다. 최근 10년간 SNS가 발달하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어우러서 여론을 만드는 만큼, 미국은 더욱더 다양한 문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책을 많이 출간하려고 한다. 특히 미국의 남미권 이민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멕시코, 칠레, 브라질 등등 남미 문화를 소개하는 작품들도 많아졌다. 약간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남자아이가 나오는 내 작품 Little Blue Bunny 도 그 영향을 받은 작품 중 하나인 셈이다. 최근에는 한국 콘텐츠들이 인기를 얻음에 따라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소설, 그림책들도 많아지고 있으니 이런 좋은 기회들이 한국 창작자들에게 많이 생기면 좋겠다.



3. 서점



직접 책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서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큰 대형서점들의 좋은 점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이외의 것들도 같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한국 책뿐만 아니라 외서들도 다양하게 들어와서 최근의 이름난 소설들이나 그림책, 팝업북이나 화보집 등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서점을 가는 건 시간을 내야 되고 귀찮기도 하지만 최근의 출판 동향을 알기 위해선 1-2달에 한 번은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서점 자체가 이제는 하나의 문화예술의 허브라고 생각한다. 이젠 책뿐만 아니라 각종 문구류, 카드, 패브릭, 캘린더, 디자인 제품, 전자기기들 까지 같이 파는데, 이런 다양한 제품들에도 일러스트나 디자인이 꼭 필요한 만큼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것이다. 생각보다 일러스트레이션이 필요한 곳은 출판 분야 외에도 정말 많이 있다. 다만 북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을 가진 만큼 그 수요가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서점을 둘러보면서 다양한 제품들에 나의 일러스트가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작업하기 위해서 필요한 예산은 얼마일까? 이 패키지에 그림을 넣기 위해선 어떤 디자인으로 작업을 하는 게 효과적일까? 어떤 색깔을 써야 제품이 더 돋보일 수 있을까? 다른 프로젝트가 없다고 가정하면 총 작업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을 “디자인”하는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이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언젠가 다양한 작업으로 나의 분야를 넓히기 위한 좋은 시도인 셈이다. 실제로 여러 분야에서 질리지 않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직업 만족도가 더 높다. 나도 긴긴 출판 작업 때문에 서점을 방문한 지 오래되었는데, 조만간 들러서 최근의 동향을 살피고 싶다.



4. 가끔은 Oldie But Goodie


영국 같은 해외에서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교과서에나 나오던 유명한 작품들을 무료로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오래된 명화, 그것을 일깨우는 “역사”라는 것은 현재와 멀리 떨어진 오래된 것이 아니다. 워낙 시가지가 오래되어서 예스러운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고 그런 고전적인 분위기를 잘 관리하려는 런던시의 노력이 있긴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느낀 점은 그들이 전통을 꽤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점들에 대한 반발 때문인지 현대 예술계를 뒤흔드는 혁신적인 작품들이 영국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아티스트들은 작업의 용이성 때문에 주로 컴퓨터 작업을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작품들이 쉽게 웹상에서 휘발되고 쉽게 잊히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혹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니만큼 여러 트렌드에 너무나 쉽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가끔 인터넷의 모든 어플들을 내려놓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중세나 르네상스, 현대 미술들에 관한 책들을 한번 보는 건 어떤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방법이 직접 물감으로 그리는 방법밖엔 없었던 그 시절의 그림들은 그래서 색깔이나 구도, 작업 주제들이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굳이 이야기를 한다면, 색깔이 섞이면서 새로운 색깔을 자연스럽게 내는 방식에서는 디지털 작업보다 전통적인 회화 작업이 훨씬 훌륭하다. 디지털의 색 혼합방식은 섞이면 섞일수록 어두워지기 쉬울 뿐 전혀 다른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다양한 레이어 설정으로 색을 보정하게 된다. 결국 디지털 작업은 전통적인 색칠 방식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National Gallery. 가끔은 오래된 그림이 더 좋기도 하다. 출처: www.theguardian.com


그래서 옛날 유화, 수채화 그림들을 화보집으로 보거나 직접 자세하게 볼 때면 디지털과는 다른 오묘한 색의 조합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트렌디한 최근 그림들과는 다른 신선하고 과감한 구도라던지 매력적인 그림 소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SNS의 화려하고 예쁜 그림들에 익숙해 있지만, 사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의 그림들에 꽤 질려있기도 하다.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강한 개성을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예전의 익숙한 미적 요소들을 잊지 못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 양쪽 모두의 해답을 옛 그림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5. 예술의 정의를 넓혀보자



미술 학교를 다닐 때에는 커리큘럼 때문에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수해야 하는 학점들이 많았다. 덕분에 동양화도 그려보고, 다양한 판화작업도 하고 아크릴이나 유화 물감도 써보았다. 졸업을 하면서 내가 직접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일이 거의 없어지고, 순수한 예술작업은 정말 먼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돈이 전혀 되지 않을 오래된 작업방식을 그나마 한 번이라도 해본다는 점에서, 실험적인 것들을 반 강제적으로 시도해본다는 점에서 미술학교의 중요한 존재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곳이 아니면 순수하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작품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사회에 나와 당장 필요한 것들은 주로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에펙 같은 상업적인 미술 툴들이니 말이다.


판화나 동양화뿐만 아니다. 예술이라는 테두리로 아우를 수 있는 것들은 정말 많다! 건축 디자인, 산업 디자인, 도예 예술, 타일 디자인, 텍스타일, 타이포그래피, 타투 아트, 애니메이션… 세상에는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르들이 정말 많이 있다. 그렇게 예술이라고 이름 지어 온 수많은 분야들을 많이 접하고 계속 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일러스트레이션뿐만이 아닌,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도록 세상에 눈과 귀를 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수집해놓는 것이 긴긴 작업으로 인한 번아웃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똑같은 작업방식에 질렸다면 다른 그림 방식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콜라주 라던지 목판, 에칭 작업이라던지 나무 조각, 돌조각, 양모펠트, 바느질, 수예…. 혹은 종이를 오려 디오라마처럼 만들어 본다던지 입체적으로 인형을 만들어서 작품을 만드는 건 어떨까? 그림책 예산이나 출판 방식 같은 현실적인 한계점 때문에 많은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디지털로 간단하게 작업하지만, 백희나 님 같은 개성적인 작가분들은 매 작품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신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만드는 것” 은 정말 느낌이 다른만큼, 스스로의 스타일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다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학교에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창의력을 계발해야 했지만, 졸업한 지 오래된 이상 이제는 스스로 창의력을 발전시키고 성장시켜야 한다. 이 지점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작가들과 그렇지 못한 작가들이 조금씩 갈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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