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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May 25. 2022

다양한 종류의 의뢰에 대처하는 방법-①

그림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는 이유

알다시피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의뢰를 받는다.



개인 홈페이지에 내 SNS 주소와 메일을 밝혀놓고 여기저기 내 그림을 홍보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그림 의뢰를 원하는 사람에서부터 중소형, 혹은 대형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단발성 프로젝트는 주로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일러스트, 책 표지, 웹사이트에 들어가는 배너나 일러스트가 대부분이다. 중장기 프로젝트로는 역시 호흡이 길게 들어가는 그림책 의뢰나 일반 책 삽화, 교과서 삽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프리랜서로서 가장 힘든 점은, 각각의 의뢰마다 원하는 지점이 다르고 예산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서 내 그림의 종류나 퀄리티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보수는 없지만 본인과 일하게 되면 그림 홍보가 될 것이라는, 이른바 무보수 혹은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하는 프로젝트라면 단칼에 거절해야겠지만... 중견 작가가 아닌 신인인 경우, 아무래도 적은 돈이라도 자신의 커리어를 쌓을 만한 프로젝트가 당장 필요하기에 조금 아쉬운 계약이라도 (특히 금전적으로)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정말 뛰어나고 기량이 좋은 신인 작가라면 클라이언트가 직접 나서서 금전적으로 아쉽지 않은 계약을 권하겠지만.... 그런 뛰어난 작가더라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 스스로 발 벗고 클라이언트를 찾으러 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렇다. 때문에 관련 분야에서 아무런 커리어가 없이 시작한다면, 나는 금전적으로 조금은 아쉽더라도 1-2건 정도는 심사숙고해서 자신에게 좋은 이력이 될만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게 아예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유학 후 귀국해서 당장 이력을 쌓을 계기가 필요했고, 그렇게 나의 초기 포트폴리오를 다져간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작은 일들이 또 다른 일들을 불러오고, 이렇게 조금씩 큰 프로젝트들이 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른바 프리랜서 마켓이라고 불리는 ㅋ몽이나 SNS 상의 작은 규모의 커미션처럼 지나치게 낮은 단가를 스스로 제시하여 프리랜서 시장의 최소 단가를 한참 밑도는 가격으로 그림을 그리지 말았으면 한다. 안 그래도 한국에는 세계에 당장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너무나 좋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좁은 내수시장 때문에 스스로 제살 깎아먹는 식의 가격 경쟁으로 득을 보는 것은, 싼값에 작가들을 후려쳐 원하는 것을 기여코 받아내려는 신생 악덕 기업들밖에 없다. 나 자신도 그런 경험을 어느 정도 해봤기에, 신인 작가들이라면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서, 그런 슈퍼마켓 같은 사이트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보석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



가끔은 기대에 못 미칠 때가 있다-
그림을 다각화하는 이유


아마추어든 프로든, 시간은 금이다. 출처: youtu.be/0x5n3FHFSQ8


신인이든 중견작가이든 모든 작가가 좋은 프로젝트를 좋은 가격에 진행하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 의뢰를 하는 클라이언트들의 규모가 워낙에 다양한 만큼 모두 원하는 가격에 외주계약에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책 프로젝트들이 모두  괜찮은 예산으로 의뢰가 들어온다면 좋으련만, 어떤 출판사들은 규모가 작아서 예상 금액의 반도  되는 가격으로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다. 사실  낮은 가격으로 접근하는 클라이언트들도 정말 많다.



기대에 못 미치는 가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가령 가격 면에서 아쉬웠지만 너무나 일을 매끄럽게 잘하고 작가를 잘 존중해주며 예산에 맞게 수정을 최소화시켜주는, "꽤 괜찮은" 클라이언트였던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혹은 금전적으로 아쉽지만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분야나 장르의 프로젝트인 경우 아무래도 한번 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클라이언트가 동네 김밥집에서 요구할 만한 말도 안 되는 돈을 주면서, 나에게 미슐랭 5 스타 궁중식 코스요리를 내게 바란다는 것은 무리이다. 내 입장에서도, 돈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데 구태여 미슐랭 음식집에서 나올법한 좋고 싱싱한 재료로 공을 들여서 작업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니, 일단 그럴 의욕도 안 든다. 이미 어느 정도 좋은 클라이언트와 작업을 한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힘든 일이다.



저 일이 없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섣불리 계약을 해서, 두고두고 그 선택을 후회하며 일을 한다면 빠른 시간 내에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감에 빠지고 심한 번아웃에 빠진다. 나 또한 그걸 경험했고, 심지어 최근에도 경험하고 있기에 그런 독과 같은 계약을 스스로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해외 클라이언트들의 경우, 자국에 있는 작가들의 몸값이 비싸기 때문에 동북, 동남아시아나 인도, 파키스탄 쪽 작가들에게 접근하여 훨씬 낮은 가격에 딜을 성사시키려고 하는 업체들도 정말 많다.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싸다, 싸기 때문에 이 정도의 돈만 줘도 일을 열심히 해준다.... 앞으로 한국 작가들은 모두 요정도 가격만 주면 되겠지. 해외 출판사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다는 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70-80년대의 개발도상국이 아닌 어엿한 선진국인데, 그런 옛날의 도제 작가 사고방식으로 일을 계속한다면 결국 국제 시장에서 스스로의 살을 깎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맘에 안 들지만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장 해야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더 좋은 조건으로 들어오는 프로젝트를 어쩔 수 없이 쳐내거나 미뤄야 하는 큰 불상사가 생길 수가 있다. 더 좋은 프로젝트를 할 시간과 기회를 날려버리기 전에, 모든 계약을 할 때는 신중하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의 최소 금액을 꼭 지키는 게 중요하다. 물론 가격에 맞춰서 퀄리티를 낮추며 이른바 "가성비" 그림들을 그려줄 수도 있지만...내 경험상 그런 결과물들은 결국 내 마음에 못미치는 경우가 참 많았다.



다음에는 그림을 다각화해서, 들어오는 의뢰의 가격과 성격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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