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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May 30. 2023

그림책 작가들을 위한 에이전시의 조언

미국의 출판계는 어떻게 돌아갈까?

한창 휴가를 앞두고 바쁜 마감을 하는 와중에, 거의 반년 만에 에이전시와의 단체 미팅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의 에이전시들은 이런 그룹미팅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에이전트들이 워낙 바쁘기도 하고 관리하는 작가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줌미팅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속해있는 이 The Cat 에이전시는 1년에 몇 번씩 길게 그룹미팅을 가지면서, 평소에 작가들이 물어보고 싶었던 궁금한 내용들이나 출판계 근황을 알려주기도 한다. 워낙 혼자서 일하는 작가들이 많다 보니, 이런 미팅이 생기면 에이전시에 대한 소속감을 다질 수가 있어서 더 좋다.


인터넷 덕분에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만남을 가질 수 있다.

내겐 이 그룹미팅이 두 번째이다! 저번 미팅은 작년 연말에 했었는데, 미국 시간으로 이른 저녁시간이었다. 덕분에 아침 7시에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에이전시가 북미에 있다 보니, 나같이 해외에 있는 작가들은 북미의 시간에 맞춰서 미팅을 들어야 한다. 메일 같은 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데,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는 건 늘 시간이 맞아야 하니 참 쉽지가 않다.


그래도 출판계의 최전선에 있는 치프 에이전트의 여러 정보와 소식을 듣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기회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빠른 영어발음을 제대로 캐치하는 건 네이티브 코리언으로서 늘 어려운 숙제지만 말이다. 에이전트에게 듣게 된 2023년 출판 동향과 함께, 그림책 작가가 궁금해하는 여러 질문들에 대한 에이전트의 답변들을 좀 정리해보려고 한다.


2023년 미국 출판계의 분위기


최근 미국의 부채한도 상한에 대한 뉴스가 연일 이슈이다. 그만큼 미국의 국가 부채가 상당히 많다는 뜻이다.


미국 출판계도 이 Global economic recession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서 다소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많은 출판계 에디터들이 해고가 되고, 업계에 전반적인 번아웃 상태가 계속 지속되고 있다. 또한 전쟁 이후에 종이값과 잉크, 책 제조비용 자체가 많이 올랐다 (이 문제는 한국 출판계도 마찬가지). 책 한 권당 마진 비율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출판계에서는 작품은 더 까다롭고 엄격하게 선별해서 출판하려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신인 작가들이 이제는 쉽게 등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온다는 것이다. 또 전반적으로 판데믹 시절에 호황이었던 출판계의 업계 파이가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작품, 좋은 이야기를 찾으려는 출판사들이 많이 있다. 때문에 너무 놀라거나 걱정하지 말고, 좀 더 스스로를 더 창조적이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킬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출판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작가들이나 이미 받아 놓은 좋은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먼저 검토하고 있다. 이미 그들의 위시리스트 1순위와 2순위에 있는 여러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몇몇 출판사들은 신인 작가들의 원고를 아예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지금 글 작품을 투고한다면 대략 2026년에서 2027년에 출간될 것이라고 염두하는 게 좋다. 때문에 늘 침착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이건 글 작가에게 해당되기 때문에 그림 작가의 경우는 다를 수가 있다. 출판계의 일은 늘 장기 프로젝트, Long-term work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참고로 아직도 판데믹때와 비슷하게, 많은 편집자들이 집에서 일을 하고 있다. 미팅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1-2번만 사무실에 나가고 집에서 편집 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오히려 이제는 zoom 미팅이 활발해서, 사무실에서 종일 특정한 사람들만 대화했던 예전에 비해 집에서 더 다양한 편집자들과 함께 미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NDA (Non-disclosure agreement)에 서명을 한 작품의 경우,
내용을 일부 SNS에 공개해도 되나요?



*이 NDA (Non-disclosure agreement) 계약서는 한국어로 통상 비밀유지 계약서라고 한다. 특히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시나리오, 출판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 계약서를 쓰면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대한 민감한 정보들을 바깥에 공유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신작으로 개봉될 마블이나 디즈니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내용을 직원이 공개해 버리면, 그 직원은 해고는 물론 법적인 처벌도 받을 수 있다.


이런 비밀유지 계약서는 Work-for-hire 같은 저작권 양도 계약을 할 때에도 쓸 수 있다. 일단 이런 계약을 하면, 출판물이 완전히 공개되기 전까지 자신이 그린 그림, 스케치나 과정 등을 sns등에 공유하면 안 된다. 사실, 구태여 이런 계약을 하지 않아도 이런 것들을 공유하는 건 출판사와 작가에게 모두 손해이다! 너무 많이 공개해 버리면 해당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반감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출판되었다고 해도 모든 페이지의 모든 그림들을 홈페이지에 올려버리는 것도 좋지 않다. 대략 작품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3-4장의 그림 정도가 좋다. 특히 아마존에 책이 등록되면서 같이 공개된 그림들 위주로 포트폴리오에 넣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작가도 NDA 계약서를 쓸 때가 있다.


논픽션 (Non-fiction) 그림책은 픽션 (Fiction) 그림책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되나요?


꼭 그렇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 창작 그림책만을 출판계가 더 중요하게 취급한다고 오해를 한다. 많은 그림책 상들은 대부분 이런 픽션 그림책들이 차지하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나 전기물, 사이언스 장르 같은 논픽션 책들은 어디서나 꼭 필요한 책들이다. 오히려 이런 논픽션 책들은 좀 느리지만, 학교와 도서관 등에서 늘 꾸준하게 팔리는 장르 중 하나이다. 선생님들이 교과내용을 가르치면서 자주 참고하기도 하고, 자신의 학생들에게 읽도록 독려하기 때문이다. 픽션 그림책도 좋지만 이런 논픽션 장르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언젠가 AI가 그림책 분야를 위협할 때가 올까요?


몇 개월 전에 AI 프로그램을 돌려 자신의 그림책을 자비 출판한 작가 이야기가 떠돌았었다. 최소한, 이 출판계에서는 AI 가 큰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출판사들은 그저 이런 AI 프로그램처럼 기계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Image 들을 수집하지 않는다!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창의적인 작가들의 Brain을 수집한다. 즉, 작가들 고유의 창의성을 수집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과 사업을 하지, 기계와 사업하지 않는다. 사람의 고유한 창의성이 출판업의 근간이기 때문에 단언컨대 이 AI로 인해 그림책 산업이 위축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게임 그래픽이나 게임 디자인의 경우 심심치 않게 AI를 쓰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업계 사람들이 많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주로 게임이나 영화같이 컴퓨터 그래픽에 크게 의존하는 분야 위주)



일전에 SNS에서 논란이 된 모 에이전트의 잠수사건에 대해서…


한때 트위터를 뒤흔들었던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모 문학 에이전시 소속의 에이전트가 아무 말도 없이 잠수를 타고 사라진 것이다! (한동안 트위터에서 오래 회자되었다) 덕분에 하루아침에 소속 작가들이 에이전트를 잃어버렸고 당연히 해당 에이전시도 난리가 난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서는 안되고, 사실 평소에 잘 일어나지 않는 드문 일이다.


만약 작가가 집안에 어떤 일이 생긴다거나, 큰 병이 생긴다거나, 신변상의 여러 어려움이 생길 때… 반드시 무슨 일이든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잘 알려주는 게 좋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미리 알려주면 에이전트는 클라이언트에게 대신 일정을 조정해 줄 수 있고 다른 플랜 B를 같이 세워 줄 수 있다. 작가와 에이전트의 좋은 관계는 좋은 소통에서 나온다.


최근 출판계의 트렌드, 유행이 무엇인가요?


출판사들은, 트렌드 보다도 오히려 트렌드와는 “다른” 무언가를 원한다. 때문에 작가들이 출판계의 트렌드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또한 출판계에서의 Trend의 범위는 매우 넓다! 왜냐하면 출판사가 워낙 많고, 출판사 에디터들 각자마다 다른 위시리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취향과 개성이 다르듯, 편집자들의 관심사는 그들 숫자만큼 정말 많고 다양하다.


Trend라고 하는 건, 그것이 유행이 되기 전에 이미 그것 자체로서의 “고유한 개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미 나와 있는 유행이 아닌, “이미 나온 유행에서 벗어난 다른 것”을 쓰는 게 더 좋다. 유행을 따른다는 건 결국 “개성과는 반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히려 전혀 다른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기존과는 다른, “무언가 색다른 것”을 늘 원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늘 Unique 하게, 개성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지금 흥미를 가지는 것”,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바로 당신의 Trend이다. 당신을 당신답게 하는, 당신을 흥미롭게 하는 것.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하는 걸 추천한다.


가장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바로 나의 트렌드.
작가로서 SNS를 어떻게 지혜롭게 쓸 수 있을까요?
그리고 SNS랑 외주일이 얼마나 관련 있나요?


SNS는 작가의 비즈니스의 일부로 삼되, 그저 유용한 툴로 쓰는 게 좋다! 물론 SNS를 통해 외주일을 받는 작가들도 있지만, 모든 것들이 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브랜드를 나름대로 구축하고 모멘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SNS를 쓰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아요 수나 리트윗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꾸준히 자기 작품을 포트폴리오로서 올리는 것도 좋다. 그냥 그림을 올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들은 잊고 지내는 게 건강에 좋다.


인스타나 트위터를 일종의 Secondary Portfolio로 여기는 게 좋다. 사실 출판사들은 해당 작가의 팔로워 수가 얼마인지, 작가가 누구를 구독하는지, 심지어 얼마나 자주 업로드하는지 그런 세부사항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출판사 편집자에게 중요한 건 작가의 역량과 실력이지, 이런 숫자로 매겨지는 가상적인 인맥이 아니다. 책은 출판사가 기획하고 만들며, 발행하고 판매한다. 몇만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어도, 그 팔로워들이 작가가 만든 책을 모두 구매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 비율은 정말 미미하며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 때문에 팔로워 수라던지, 좋아요 수 같은 건 전혀 상관하지 말자. 출판사는 작가의 팔로워 수나 좋아요 수에 기대어서 책을 기획하고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 기억하자.


아참,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있다면 자기 출판물을 홍보하기 위해서 포스트에 # 해시태그로 에이전시 이름을 꼭 넣어서 업로드하기! 그리고 자신의 책이 출간되기 전에 (주로 Book Birthday라고 한다) 에이전트에게 그림책의 출간일을 미리 알려주자. 그러면 에이전시의 SNS에서 해당 책을 이미지와 함께 홍보해 줄 수 있다. 이런 SNS의 좋은 순기능을 잘 이용하는 게 좋다. 너무 좋아요 나 팔로워 수에 민감해하진 말길 바란다.



풀타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다른 일들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경제적인 안정은 작가로서 정말 중요하다! 그게 아무리 피곤하고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가계 지출을 생각한다면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돈이 들어오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오히려 파트타임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하는 것이, 풀타임으로 일을 하는 것보다 정신건강에 더 좋고 작품을 더 활기차게 할 수 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그림작업을 하면 굉장히 Refreshing 이 된다고 할까? 그림, 특히 출판계 일은 주기적으로 돈을 벌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겸하곤 한다.





이렇게 거의 2시간이 넘도록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른 작가들이 고민하던 것들이 대개 다 비슷하구나 싶었다.


이번 마감을 끝내면서, 이제 내 창작 그림책 작업을 조금씩 건드려 볼 여유를 겨우 얻게 되었다. 에이전트가 늘 이야기하던 “Be patient”,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트렌드 삼아서 나아가기. 이 당부를 내 마음속에 심어 놓고, 나도 여유를 가지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뭔지 차근차근 알아보려고 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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