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자기중심적 사고의 함정
언제부터인가 내가 신맛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샐러드나 나물에 식초를 넣는 건 기본이고 고깃국을 먹을 때도 식초를 넣어 향미를 살리고, 라면에도 한두 방울의 식초를 더합니다. 양배추나 오이 피클을 만들 때도 소금이나 설탕에 비해 식초의 비율이 좀 더 높고 커피나 와인도 산미가 있는 것을 '딱 내 스타일이네'하고 좋아합니다. 신맛을 좋아하는 게 특별한 것도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제 입맛이고 취향일 따름인데, 며칠 전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적양배추를 잘게 채 썰어 소금, 설탕, 식초에 절인 후 꽉 짜고 마요네즈에 레몬을 약간 더해 제 스타일의 간단 코울슬로 Coleslaw를 만들었습니다. 프라이드치킨이나 삼겹살 같은 고기와 같이 먹기 좋습니다. 그날은 전분을 묻혀 튀긴 가라아게 치킨과 함께 먹을 요량으로 나의 소중한 치트 키인 적양배추 코울슬로를 꺼냈습니다. 소금과 식초에 숙성된 살짝 바랜듯한 보랏빛에 적당히 아삭이는 식감과 상큼한 산미는 치킨의 느끼할 수 있는 뒷맛을 역시나 개운하게 해 주었습니다. 제 음식 솜씨에 자랑스러워하면서 아내에게 먹어보라고 의기양양하게 권했습니다.
'아이고, 시다!' 첫 입에 아내는 '시다'는 말을 연발했습니다. 간도 잘 맞고 식감도 좋은데 너무 시다는 게 아내의 냉정한 평가였습니다. 평소 제가 만든 음식의 열혈팬임을 자처하는 아내의 반응에 저는 살짝 당황스럽고 의아해 재차 아내에게 맛을 보라고 접시를 들이밀었습니다. '역시 시네, 식초를 너무 많이 넣었어'. '아니 뭐가 시다고? 이 정도면 딱 상큼하고 좋지. 당신 오늘 컨디션이 별론 가봐. 제대로 맛을 못 보네'. 계속되는 아내의 평가에 저도 지지 않고 아내의 입맛과 그날의 컨디션을 타박했습니다. 몇 번의 말이 오가던 중 아내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아~참, 당신 입맛엔 맞을지 몰라도 내 입맛에는 시다니까. 당신이 신맛을 너무너무 좋아해. 이건 보통 신맛이 아니야!'
'그건 니 입맛이고.....'라는 아내의 한 마디에 저는 움찔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휴~ 그 말이 사실이니까요. 신맛을 좋아하는 건 저였지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제 기준의 산도는 아내의 기준과 너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본능적으로 제 중심으로 세상을 보고 아내의 입맛 없음을 비난하며 주장을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그날도 부끄러움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며 식탁에서의 대화를 복기해 보았습니다. 아내와 대화 장면을 살짝 기업이나 조직에서 팀의 업무 장면으로 조옮김해 보았습니다. (제가 리더고 아내가 팀원이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어떤 리더와 동료로 보이겠고, 그 자리의 팀원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기성세대들과 일하기 어렵다는 MZ세대들이 느끼는 기분이 이런 건 아닐까? 리더들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대화를 막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의 조금 전 행동을 창피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혼자 여러 질문과 답변을 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토록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 사고가 일어난 다는 사실에 섬뜩함마저 느꼈습니다.
그래도 저는 신맛을 '매우' 좋아합니다. 다만 이제 누구에게도 강조하거나 강권하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