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연못
P시에서 1년을 지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집을 구하고 보니 우연히 P공대 근처 동네였습니다. 최근 개발된 신도시가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의 두께가 느껴지는 정돈되고 차분한 동네였습니다. 높은 건물이 없어 눈을 들면 늘 아침 하늘과 노을을 맘껏 볼 수 있었고 근처에 산책할 길들이 많아 자주 걷고 싶은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을 때는 집에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P대학 캠퍼스에 가곤 했는데 여유 있고 편안한 분위기와 학생들의 웃음과 생기가 잘 어울리는 것이 좋았습니다. 캠퍼스에 가면 항상 학생회관 앞에 조그마한 연못을 찾았습니다. 축구장 절반만 한 크기의 연못 주변으로 흔하게 보기 힘든 키 큰 침엽수들이 빼곡히 둘러서 있고 연꽃이며 각시수련 같은 수생식물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는 아담하고 편안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 연못을 ‘회개의 연못’ a pond of repentance이라고 이름 짓고 자의든 타의든 저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자주 찾았습니다. 생각대로 일이 잘 안 될 때,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을 소화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때, 스스로 한계를 느끼거나 감정이 요동칠 때도 연못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저의 취약함에 대해 고백하기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욕망을 들추는 예리한 피드백을 듣기도 했습니다. 읽고 있던 책이나 성경에서 발견한 울림이 있는 구절을 여러 번 곱씹기도 하고 그저 맑고 높은 파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참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P 시를 떠나 높은 빌딩이 둘러쳐져 있고 또 새로운 높은 빌딩을 건설하기 위한 소음이 가득한 곳에 사는 지금 회개의 연못, 그 공간이 주던 평안함과 위로와 격려가 그립습니다. 한동안 지금 사는 동네에서 또 다른 ‘회개의 연못’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공원도 산책길도 개울가도 가봤지만 아쉽게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회개의 연못’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연못이든, 언덕이든, 공원의 벤치이든 혹은 조용한 동네 카페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