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유니 Dec 12. 2022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위기의 이민 가족(3)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교회에서 S와 그의 와이프와 마주치는 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가급적 피해 다녔다. 평소처럼 출퇴근하는 남편에게 물어도 특별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냥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 했고, '그래, 사람이 살다 보면 갈등도 있는 거지.. 뭐...’라며 내가 생각하듯이 상대방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교회 사람들이 넌지시 물어온다. "S와 무슨 일이 있었냐?”, “영국교회도 다닌다면서? 부지런하네..” 등등. 우리가 사람들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쯤, 우리에게 S를 소개해준 어르신이 우리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하는 말...


"어디서 교육시켜준다고 해서 회사 그만둔다고 했다면서? 내가 아들, 며느리 같아서 하는 말인데... 교육은 나중에 받아도 되니 영주권 먼저 생각해. 저렇게 S를 서운하게 하면 어떻게 해... 실수였다고 하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다시 잘해봐. 뭘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얘기해주는 거야” 


나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


그냥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고 생각하던 나의 생각은 100%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미 교회에는 '우리가 S의 회사에서 취업비자까지 받아 놓고는, 교육을 받고 싶다며 매주 수요일을 쉬게 해 달라고 했다더라. 그래서 거절했더니 그만둔다고 했단다’는 퍼즐처럼 잘 맞춰진 스토리가 퍼져 있었다.


'살다가 이런 일도 당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서글퍼졌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어르신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얘기했고, 그나마 친하다는 지인들에게도 “근무 빼 달라고 한 적 없으며, 교육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한 적이 없다. 전혀 사실과 다르다!!” 고 주장도 해 보았다. 하지만 S에게 대적하는 것은 처음부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30년 이상을 영국에서 자리 잡고 살아온 성공한 이민 사업가의 말 대신 이제 걸음마 하고 있는 이민 초짜들의 말을 믿을까? 믿더라도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엉켜있는 이민 사회에서 우리보다는 S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S는 우리의 대화 요청에는 무응답으로 거절했고, 남편이 회사에 갔을 때나 우리를 교회에서 만났을 때도 외면했다. 우리는 괜히 더 나쁜 상황을 만들까 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서, 제삼자인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전하게 하는 등 점점 불편하게 우리를 조여왔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에게는 고마움도 모르고 자기 욕심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삐리리릭~”

 회사를 그만둔 B의 와이프인 K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언니!”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반가웠다. K는 간단히 안부를 묻더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거렸다.


“언니 왜요? 하실 말씀 있으세요?”라고 묻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우리 얘기를 들었다며 그녀가 들은 우리와 S와의 일에 대해서 말했다.


'와우~ 소문이 어디까지 간 거야?'

좁은 한인사회를 새삼 다시 느꼈다.


그녀는 B도 비자 문제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1년 정도 비자를 연장해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어서 지인의 소개로 S를 만났더니, 스폰서십을 해 주겠다고 해서 3개월을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도 제대로 안 주고 스폰서십 신청도 자꾸 미루더란다. 나중에는 비자 얘기만 하면 노골적으로 싫어해서 더 이상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K의 얘기를 듣는데 정말 너무 화가 났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XXX 같으니라고!!'


그녀는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걱정돼서 전화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영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해 주었다. 다행히 K는 아이들이 영국에서 7년 이상 살아서 '인권 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는데, 좋은 변호사도 알게 되었다며 나에게 연락처도 알려주었다. 다음에 밥 한번 먹자고, 힘내라고.. 아쉬워하면서 전화를 끊는 그녀가 너무 고마웠다.


“그래 세상에는 내 편도 있어!!”

K의 전화 한 통이 요즘 꽁꽁 얼어붙은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겉과 속이 다른 S에 대한 분노 게이지는 더 상승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 무력감이 날 아프게 누른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모든 교회 사람들이 우리 얘기만 하는  같았고, S 그의 와이프를 피해 다니는 것도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앞으로 교회에 출석하지 못한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2013년 2월,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간에 목사님이 우리 가족을 앞으로 불러서 기도를 해 주었고, 모든 교회 사람들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자고 했다.


“세상에나…” 

저 멀리서 S와 그의 와이프가 양손을 펼치고 우리를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찬양을 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찬양을 듣지도 부르지도 않는다.


눈물이 났다. 그래도 2년 동안 매주 찾았던 공간을 떠난다는 것이 아쉬웠고,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예배 후 간단한 식사와 차를 마시고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S의 와이프가 나타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포옹하며 “아쉬워서 어떻게 해~”란다. S도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머리를 쓰담 쓰담하고, 등도 두드려준다. 정말 적응이 안 되는 시추에이션이었다.


그날 밤, 아이들도 재우고 이제 자려는데, 남편에게 한통의 이메일이 왔다. S가 보낸 것이다.


  OOO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전 07화 최악의 빌런을 만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