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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유니 Dec 18. 2022

남편의 해고와 나의 취업

          위기와 기회는 함께 찾아온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지난 12월 31일에 S의 집을 방문하고, 두 달이 지났다. 그날 이후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불편함은 불안감으로 번져갔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걱정스럽던 마음은 한밤중에 받은 이메일 하나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OOO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한 것이오니, 아쉽지만 양해 바랍니다. 다음 달까지 급여는 지급될 것이며, 비자와 관련해서는 이민법상 이민국에 OOO님의 퇴사 보고가 되면 그 후 60일 이내에 새로운 회사의 스폰서십으로 변경하셔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H에게 문의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정말 말이 안 나왔다. 남편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메일만 읽고 또 읽고 있는 그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뭐가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추를 잘 못 끼웠다면 어디서부터 잘 못 끼운 건지 혼란스러웠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떤 일이 앞으로 생길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보려 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국에 와서 오밤중에 이메일로 해고를 당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고, 비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음날은 내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얻은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평소에 감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던 나였다. 지난번 S와 대화하고 번뜻 든 생각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고,  곧바로 부지런히 집 근처의 널싱홈들에 이력서를 보냈더니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기로 했다.


내가 영어로 인터뷰를 하다니!  “How are you?” 하면 "I'm fine, thank you."만 자동으로 나오는 정도의 영어 실력인 내게 영어 인터뷰라는 것은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밤새가며 인터뷰 준비를 했다. 외우고, 또 외우고...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영국에 2년이나 살았지만,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이 지냈던 결과였다.


반복된 실패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데, K널싱홈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연습이라 생각하고 그곳을 방문했고, Matron(영국의 수간호사)과 한 명의 일반 간호사와 마주 앉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를 빤히 보던 그들은 이름과 가족에 대해서 먼저 물었고, “이 정도야...”라며 나는 묻지도 않은 아이들 얘기를 섞어가며 열심히 대답을 했다. 그러다 내가 10살, 5살 아이들의 엄마라는 말에 그녀들은 깜짝 놀라며 너무 어려 보인다며 나의 피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더니 특별한 방법이 있냐고 묻는 등 지금껏 경험해 보지 않은 질문을 했다.


'이 언니들, 지금 내 피부를 부러워하고 있는 거야?ㅎㅎㅎ.'


자신감이 생긴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질문에 응했고, 한참을 인터뷰를 하는 건지, 그들의 수다를 듣고 있는 건지 모호한 상황이 이어진 뒤에 Matron은 나에게 가능한 한 빨리 출근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난 영국에서 첫 직장을 얻게 된 것이다. 와우!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당당히 ‘외모는 만국 공통어’라며 우쭐대면서 첫 취업을 자랑했고, 온 가족이 기뻐했다. 그게 얼마 전의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난데없이…


나의 첫 출근 전 날 밤, 남편은 해고되었다.  어디선가 위기와 기회는 함께 찾아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늘처럼 그 말이 딱 들어맞는 날도 없을 것 같다.


 난 슬퍼해야 할까? 기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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