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이민 가족(2)
모두 똑같지는 않다.
취업비자로 이민을 시작한다고 모두 어려움을 당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남편이 재취업해서 받은 비자로 무사히 영주권을 받았다. 그러니 혹시 지금 이민을 생각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하지만 이런 일도 있으니 조심하시라.. 는 말을 먼저 하고 남은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아무튼 나는 운이 없게도 내 인생 최악의 빌런을 영국에서 만났다.
사건의 절정
영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빡센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남편과 그런 생활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몸과 마음이 나날이 지쳐갔다. 하지만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국 현지인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원했던 이민 생활이 한인사회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졌을 때, 우리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기로 했다. 보통 한인교회의 예배는 오후 시간이다 보니 주일 오전은 항상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 근처의 영국교회를 정해 매주 오전에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처음 영국 교회를 방문한 날, 우리도 긴장하였고, 그들도 낯선 우리들을 맞이하는 것에 어색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그 교회를 처음 방문할 때만 해도 교회 안에는 아시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주었고, 외국인인 우리를 보살펴 주려고 하였다. 특히 교회에 갈 때마다 우리 네 가족을 한 명씩 포옹해주는 몰리(Molly) 할머니의 포옹과 할머니보다 한 뼘이나 키가 작은 그녀의 남편 론(Ron)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는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우리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1년 이상 영국 교회를 다녔더니 우리가 아는 영국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우리의 일상과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매주 묻고, 나의 더듬거리는 영어를 귀담아 들어줬다. 헤어질 때 그들과의 '좋은 하루 보내’, ‘또 보자’는 인사는 우리가 기분 좋게 다음 주를 시작하게 해 주는 파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교회 목사님이 남편 커리어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교육이 있다고 소개해 주었고, 교육이 끝나면 취업도 연계가 된다고 했다. 가장 놀란 것은 남편이 교육을 받는 동안 교회에서 교육비와 교통비를 후원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우리가 영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에 감동했다. 답답한 현실과 어쩌다 보니 영주권을 받는 것 외에는 미래의 계획이 없던 우리에게 그들은 희망을 보여주었다. 정말 “Thank you so much!”가 저절로 나왔다.
교육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였다. 일반 직장인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퇴근시간을 예상할 수 없는 남편의 상황에서는 S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와 의논해 보기로 했다.
2012년의 마지막 날, 송년인사를 위해 한국산 배 한 상자를 사 가지고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한 해 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로 대화를 시작했고, S의 훈화 말씀을 한참 듣다가 조심스럽게 영국교회에서 제안한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다. 업무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수요일 오후만 6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다.
S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그와 우리 사이를 채웠다. 갑자기 그의 와이프가 일어서더니 “그럼 대화들 나누세요” 하고는 나간다.
뭔가 묘한 분위기.. 이건 뭐지?
그리고 이어진 대화...
먼저, 그가 잊고 있었던 근로 계약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근로 계약서에 정한 2년이 지나서 그렇지 않아도 1년 연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단다.
'헐.. 취업비자로 바꾼 지 7개월밖에 안되었고, 비자 유효 기간도 2년이나 남았는데... 웬 근로계약서??'
다음으로는 그동안의 남편의 업무 태도와 실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인이 참고 있었단다.
'또 헐.. 성실하게 일해서 취업비자로 바꿔주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마지막으로 재계약을 안 하면 우리 가정이 어려울 것 같아 고민 중이란다.
‘영주권까지 걱정하지 말라고, 잘해보자고 했던 사람은 누구??’
황당한 S의 이야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듣고만 있는 남편을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너무 늦게 퇴근하는 남편에게, 원하는 날 쉬지도 못하는 그에게 “S에게 얘기 좀 잘해봐!!”라며 강요했던 지난날들이 너무 미안했다.
그는 우리의 비자를 약점으로 ‘그냥 일이나 해..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안그러면...’하면서 조용히 협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사람을 참고 있었던 거야?'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건조하게,
“지금 그만두게 하신다는 건가요?”
갑자기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의 S,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니면 뭔가요? 지난번에 저희에게 하신 말씀과도 다르고, 이런 얘기들을 갑자기 왜 하시는 건데요? 제가 듣고만 있으려니 말씀을 너무 이상하게 하시네요. 무엇을 얘기하시려고 하시는지 정확히 알려주세요"
"음.. 음.." 그가 헛기침을 한다.
반면에 나는 닫혔던 말문이 터지니 막을 수가 없다.
"교육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무 시간과도 상관없는 일이고, 단지 수요일 하루만 제대로 퇴근하게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는 건데 뭐가 문제인가요?. 갑자기 이상한 말씀들을 하시니, 무슨 뜻으로 그러시나 싶네요.”
이런 나의 반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는 당황한 모습이었고, 옆에 있던 남편은 "다음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라며 상황을 무마하고 나를 데리고 나왔다.
차에 탔다. 남편이 시동을 건다.
갑자기 내가 던진 한마디...
“나 돈 벌어야겠어!!”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위험 감지센서가 작동했는지, 생존 본능이 살아난 건지..
그날 저녁 나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바로 이력서와 취업을 원한다는 편지를 썼다. 다음 날부터 집 근처 널싱홈(영국의 요양원) 주소를 찾아 20여 곳에 편지를 보냈다. 영국 오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나의 열정이 되돌아오는 것 같았다.
‘OFF'였던 나의 스위치가 ‘ON'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