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A의 자살 소식, 그리고 베르테르 효과
총 5회의 심리치료가 끝나고 내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나는 괜찮아진 줄 알았다. 이후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연예인 A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나는 그를 한때 즐겨보았던 드라마의 조연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얼굴도 잘생겼지만 선함이 묻어나는 사람이어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나 보다. 가끔 예능에서도 얼굴을 비추었기에 잘 살고 있다 믿었다. 그래서 더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그가 생전 활동했던 영상들이 계속 올라왔다. 영상들을 보면서 A가 나와 성향이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완벽주의가 강하고, 나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스스로에게 칭찬보다는 자책을 더 많이 하는 사람. 늘 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도 진짜 속 이야기를 내보이는 게 참 어려운 사람.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사람.
나는 그때 A와 나를 동일시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상 속의 A를 보면 자꾸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난 2주 간 베르테르 효과를 경험했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심리적으로 이에 동조하여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경우 자살 시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극심한 우울증이 왔다. 무기력증으로 인해 침대에서 영상을 보며 울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아침이면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 일어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께는 이런 내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괜찮은 척했다. 정해진 시간에 어머니가 밥을 차려놓으면 아무렇지 않게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지만.
하루는 부모님과 함께 오빠네 집에 갔다. 보통 조카를 놀아주는 일은 내 차지였는데, 그날은 온몸에 힘이 없었다. 내 옆에 앉은 조카가 노는 모습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냥 앉아있는 것 자체가 버겁고 힘들었다. 그날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사를 하다가 반대편에 앉아있던 조카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 방싯방싯 웃던 그 아이는 울 것 같은 내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다른 가족들 몰래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다. 이 아이가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고모, 왜 울어요?"라고 나에게 묻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 말을 들었다면 나는 아마 주저앉아 엉엉 울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비정형 우울증이었다
흔히 우울증이라 하면, 쉽게 상상되는 모습이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씻거나 밥을 먹는 등의 일상적인 행위들조차 어려운 상태. 이걸 흔히 멜랑꼴리형 우울증이라고 한다. 나는 우울감이 심했던 시기에도 밥은 꼬박꼬박 먹었고, 씻는 등의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조금 힘들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취소하기도 했지만,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회복되기도 했다. 그리고 잠도 잘 잤다. 그래서 우울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그 시기의 내가 게을러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우울증 같지 않은 우울증도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이걸 전문가들은 '비정형 우울증'이라 부른다.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비정형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은 우울하다가도 맛있는 걸 먹거나 좋아하는 뮤지컬을 보는 등의 행동으로 기분이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기분의 반응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 4가지 중 2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비정형 우울증으로 판단한다. 4가지에는 거절에 대한 예민성, 과수면, 식욕의 증가,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납마비 현상이 있다.
나는 기질적으로 거절에 대한 민감성이 높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거절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빠르게 관계를 정리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또 거절 민감성이 큰 사람들은 상사의 질책이 타인보다 크게 느껴 자주 이직하는 특성을 갖는다. 나 또한 이런 이유로 직장을 다니며 많이 괴로워 했었고. 여기에 무기력증과 과수면, 납마비 현상까지 있었으니 비정형 우울증이 맞았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