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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울 Apr 11. 2024

조급함에 쫓기듯 들어간 2번째 회사

이제 네 밥값은 해야지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자 마음먹었지만, 어떻게 정작 SNS로 돈을 어떻게 버는지 잘 몰랐다.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키워보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 때는 열심히 게시글만 올리면 팔로워 수를 늘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상 편집을 배우고, SNS를 키우고, 영상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프로젝트는 취업 사기에 가까웠지만. 그 와중에 벌어두었던 돈은 점점 줄어들었고, 내 마음은 더욱더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더해졌다.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의 눈치도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오빠가 그런 나를 보다 못해 집 근처 카페로 나를 불렀다. 부모님과 함께 살더라도 이제 네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제 방황은 그만하고 취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를 압박했다. 나 역시 조급함을 이기지 못해 몰래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고, 마침 그 다음날 면접이 잡혀있었다. 나는 그냥 놀고 있었던 게 아니라고 증명하듯, 혹은 해명하듯 그 사실을 오빠에게 말했다.



쫓기듯 들어간 두 번째 회사


그렇게 쫓기듯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갔다. 스타트업의 마케팅 팀이었고 나는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매주 바쁘게 회의를 진행했고, 일을 몰아치듯 해냈다. 일이 조금 버겁긴 했지만, SNS를 관리하고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었지만, 그것 또한 견딜만했다. 다만 나는 사람들, 특히 팀장과의 관계가 힘들었다. "정화님은 우리(다른 팀원들이)랑은 결이 좀 다르지. 독기가 없잖아."와 같은 말로 팀장은 나를 은근히 배척했다.


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꼭 '너는 일 못하잖아'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게 스스로를 낙인찍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팀장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눈치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했다. 물론 나는 그럴듯한 퇴사 이유를 내세웠다. 서비스팀으로의 팀 변경, 직원을 존중하지 않는 가스라이팅이 심한 팀장의 태도 등등. 하지만 진짜 내가 퇴사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저 스스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 생각보다 내가 더 별 볼 일 없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될까 봐 두려워서.



심리상담의 시작


회사를 다닐 때 우울감이 자주 찾아왔다. 몸속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일을 하는 건 힘드니까,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고 치부했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모두 각자의 일로 힘드니까 내 아픔까지 더해 그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다. 내 어려움을 털어놓다가 그런 내가 질리면 그들과의 관계가 무너지진 않을까, 그게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점점 내 아픔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을 대상으로 무료로 심리 상담이 가능하다는 글을 접하고 신청했다. 그때의 나는 단순한 호기심에 신청했던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돌이켜보면 꽤 절실했던 것 같지만. 심리 상담을 하면 나의 어려움을 당당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모르는 사람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이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 나의 힘듦을 털어놓고 내 일상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바랐다.


일상에 치여 며칠이 지났다. 신청할 사실을 잊고 있었을 즈음,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귀하께서는 청년 마음건강 지원사업 참여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첫 심리 상담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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