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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울 Apr 22. 2024

상처 입은 과거의 나를 마주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어릴 적 이야기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사님과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로 인해 상처를 받았는지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난 일기를 쓰지 않았기에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또한 이 정도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좀 생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처들을 밖으로 꺼내어 그 당시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 꼭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떠올려 본 적은 많지만 그때의 내 생각과 마음이 어땠는지 헤아려 본 적은 없었다. 그때의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한 번은 회사를 퇴사하며 가지고 있던 죄책감에 대해 말했다. 내가 회사를 견뎌내지 못한 것이 나의 나약함 때문인 것 같다고. 그래서 종종 악몽을 꾼다고. 그랬더니 상담사님이 물었다. "그 회사를 퇴사한 사람이 정화님뿐이었나요?" 나는 답했다. "아뇨. 제가 들어간 포지션에 있던 분들이 1년 안에 4명 정도 퇴사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있었던 기간에 2명이 더 퇴사했고요." 상담사님은 내 말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럼 그 퇴사한 분들이 모두 나약했기 때문일까요? 회사의 문제는 전혀 없었고요?"


나는 늘 스스로를 탓했다. 회사와 팀장에게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회사를 견디지 못했던 건 나의 나약함이 문제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와 팀장에게 문제를 전가해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내 생각이었을 뿐인데도. 그리고 퇴사한 것을 후회했다. 조금 더 버텨보지 그랬느냐고 또다시 나를 탓했다. 질책 어린 생각들은 이따금 악몽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상담사님과 이야기를 하며 나의 잘못만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퇴사라는 선택이 '나를 살리기 위한 최선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처음으로 질책하지 않고 다독여 주었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었다


또 다른 하루는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이러한 상황이 있었는데 그 말들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 상처를 받는다고. 집에 돌아오면 모임에서의 상황과 말을 곱씹으며 내가 그들에게 잘못 말한 것 같다며 자책하기도 한다고. 그런 나에게 상담사님은 말했다. "정화님은 정화님에게 향하지 않은 떨어진 화살들을 주워서 가슴에 푹푹 꽂아 넣는 것 같아요. 떨어진 화살들은 그냥 두세요. 정화님을 향한 화살이 아니에요." 그렇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나를 마주하며 온몸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상담사님의 말은 이해했다. 하지만 "어떻게 나에게 화살들을 찔러 넣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한동안 찾지 못했다. 그러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우연히 한 심리상담사님의 영상을 보며 힌트를 얻었다. 나는 자의식 과잉이었다. 보통 난 모임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는 그게 남들을 향한 배려하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의 기저에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에도 그 상황에 그대로 스며들지 못했고 그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늘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칠지 걱정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어떤 말을 해야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을까 미리 생각하고 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종종 다른 이들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고, 가끔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내가 했던 말실수 등을 떠올리며 '남들이 나를 나쁘게 기억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늘 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타인을 담을 여력이 없었다.


그걸 깨닫고 난 뒤로는 사람과 공간의 분위기 자체에 더 집중하려 한다. 어떤 말을 할지 미리 준비하는 나를 의식할 때면, 나의 생각을 덜어내고 그들의 이야기와 표정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한다. 카페나 음식점에 갈 때면 그곳의 분위기와 음식을 더 오롯이 느끼려 한다. 물론 아직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나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하니, 신기하게도 집에 돌아왔을 때 나에 대한 자책이 덜해졌고 도리어 행복감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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