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말을 예쁘게 할 줄 안다는 점이다. 나의 부모님은 평소 칭찬에 인색한 분들이었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따라서 막연히 표현이 없어도 나의 행동으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내 말투나 억양이 예쁘지 않으니, 가끔 나의 마음을 전달할 때 오해가 생기곤 했다. 그럴 때면 '00이 혹시 그 말로 나를 싫어하게 됐을까?' 조바심이 났고, 더욱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됐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잘 웃는 방법을 연습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사람들에게 예쁘게 말하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먼저 남을 칭찬하는 법을 배웠다. 대학생 때 만난 한 동기가 나에게 종종 가벼운 칭찬을 해주었는데, 그게 참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자잘한 칭찬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참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친구를 조금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의 장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그들과 대화하다가 가볍게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어떤 타이밍에 칭찬해야 할지 몰라 영 어색하고 어려웠는데, 몇 번 하다 보니 금세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말을 예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예쁜 말투를 가진 사람과 자주 만나는 것이다. 내게는 새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새언니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사랑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지인들에게 작은 선물들을 챙기고, 대가 없이 마음을 쏟을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마음을 참 예쁜 말로 표현한다. 조카가 생긴 이후부터 최소 한 달에 2번은 얼굴을 보고 있는데, 자주 보아서인지 다정함이 밴 언니의 말투를 많이 닮게 되었다.
정작 나를 위한 '예쁜 말'은 없었다.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어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예쁜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내가 참 좋았다. 타인에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는 건, 상대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일이다. 그래서 참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난 남에게 에너지를 쏟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다. 타인에게는 예쁜 말을 자주 건넸지만 정작 나에게는 해주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참 엄격했고, 자기 검열이 심했으며 나의 부족함을 용납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된 나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었고, 그런 내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으면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흘려보냈으며, 부족한 점을 지적받으면 마음에 단단히 품고 고쳐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항상 내가 했던 말을 곱씹었고, 자책과 후회가 뒤따랐다. '아, 이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건넸던 다정하고 예쁜 말들은 모두 잊은 채.
어쩌면 내가 나를 너무 사랑했는 지도 몰라.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자의식 과잉인 사람이다. 자의식이란 '어떤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얼핏 남을 굉장히 신경 쓰고 위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건 나를 위한 거였다. 남으로부터 내가 받는 인정, 사랑, 관심이 가장 주된 관심사였으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예전의 나는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를 너무 사랑했기에 괴로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단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고, 인정해줘야 하는 사람이 남이 아닌 나여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