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구해 왔던 삶은, 내가 바랐던 삶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는 어릴 적부터 정답과 같은 삶이 있었다. 명문대를 졸업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갖는 삶이 그것이었다.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 하면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사'자가 붙은 직업들이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번듯한 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삶을 꿈꿨다. 그러나 나는 정답 같은 삶을 살지 못했고, 그런 편견에 갇혀 살았던 나는 스스로를 콤플렉스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잣대로 나를 많이도 괴롭히고 질타했다. 나는 이것 또한 부정적인 생각에 갇힌 나의 잘못이라 여겼다.
그러다 최근에 한 영상을 보았다. '내가 돈도 못 버는 쓰레기처럼 느껴질 때'가 그 제목이었다. 그는 말한다. 학생 때부터 우리는 '공부와 좋은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갔고, 1등을 강요받은 사회에서 자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다시 '많은 돈을 버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게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런 삶이 정답인 삶이라고 세뇌당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그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라고. 당신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당신은 패배자가 아니라 승리자라고.
이 영상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진짜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왔던가? 실제로 내 친구 중 한 명은 변호사로 살고 있다. 친구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만일 그 친구처럼 1등을 목표로 하는 20대를 살아왔다면? 아마 제정신으로 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막상 내가 추구해 왔던 삶이 진정으로 내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행복 기준 찾기
사회가 혹은 다른 사람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진짜 나의 행복 기준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깨닫게 된 건, 나는 월급이 200만 원이면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물론 나는 쭉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에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았지만, 인턴 시절 세금을 제한 후 받았던 180만 원의 돈도 나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출퇴근 버스비와 친구들과 만날 때 썼던 외식비, 기타 등등의 비용을 모두 따져도 30-40만 원이면 충분했으니까.
그럼 나에게 진짜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행동들로부터 나는 행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7-8여 년 전부터 환경에 관심을 갖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했던 작은 행동들이 내게는 꽤 큰 즐거움과 뿌듯함으로 자리 잡았다.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쓰고, 샴푸 대신 샴푸비누를 사용하고, 일상생활에서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의 사소한 행동들. 때로는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런 내가 문득 자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환경을 위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물건을 사는 빈도를 줄여주었고, 이 습관은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는 삶)로 이어졌다. 어느 날 침대에서 내 방을 가만 둘러보는데, 너무 많은 물건에 짓눌려 사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마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후로 쓰지 않는 물건을 박스에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가게, 굿윌스토어와 같은 기부센터에 갖다 주기도 하고, 당근마켓 등의 어플을 이용해 물건을 판매하기도 했다. 물건으로부터 해방되는 개운함이 내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나를 소중히 대하는 순간 늘리기
또 최근에는 일상에서의 나를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아침 물 한잔을 마시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며 계절감을 느끼거나, 귀찮더라도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나를 먹인다. 가끔은 커피가 맛있는 혹은 눈이 즐거운 카페에 가서 조용히 내 시간을 만끽하기도 한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순간을 늘리는 것, 그게 나에게는 진짜 행복이었다. 언젠가 또 이런 나의 결심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겠지만, 이 글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행복을 잘 지켜내는 내가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