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느린 아이
함께 걸으면 손 닿지 못할 만큼 한참을 뒤에 오던 그녀였죠.
빨리오라며 그녀를 다그치고 답답한 마음에 난 앞서서 걸었는데
천천히 걸을걸 그랬죠. 먼저 간 날 잃었었는지 그녀가 오질 않네요.
- 고유진, '걸음이 느린 아이' 中
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였던가. 우연히 가수 고유진 님의 <걸음이 느린 아이>라는 노래를 알게 됐다. 나랑 절친이었던 A와 노래 제목을 보며 완전 우리 얘기라며 깔깔 웃었던 것 같다. 나랑 A 둘 다 걸음이 느려서, 다른 친구들과 길을 걸을 때면 뒤쳐져서 걷곤 했기 때문이다.
절절한 사랑 노래였는데, 어쩐지 나는 그 노래가 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저 '걸음이 느린 아이'에 꽂혔었다면, 지금은 이 노래가 두명의 나처럼 보인다. 그녀는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며 재촉하는 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경험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조금씩 느렸다. 무언가를 공부할 때면 이해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고, 작은 물건을 구매할 때조차 너무 신중해서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한참을 고민하기도 했다. 대학생 1학년이 되었을 때도 화장을 하는 법을 몰랐다. 2학년이 되어서야 화장법을 조금씩 배웠다. 그런 나라서 그랬을까. 인생에 방황이 길었던 것 같다.
졸업하자마자 어떤 일로 먹고살지 생각해야 했는데, 내 주변에는 모두 회사원이었기에 취직 아니면 공무원이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의문이었다. 나는 어떤 팀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어떤 회사에 지원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는 내가 게으른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채찍질하며 스스로를 미워했다. 남들과 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매는 내가 참 한심했다.
그렇게 방황하며 내 20대를 흘려보냈고, 난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되니 내 길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다. 그런데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경험을 하면서 나는 제법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크고 작은 실패 경험들이 있었다.
나는 참 많은 경험을 쌓았다. 전시관 투어를 해주는 도슨트 일도 해보았고, 스타트업에 취업해 마케팅팀에서 sns와 블로그를 관리했고, 마케팅 수업을 들으며 뉴스레터를 직접 브랜딩 하고 운영했다. 또 유튜브로 영상을 제작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중학교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특별활동 수업도 진행했다.
나의 20대를 채워주였던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나는 영원히 단단해지지 않았을 것 같다. 완벽주의에 갇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조금 느리지만 작은 실패가 쌓여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힘을 얻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보다 많이 단단해졌다.
나에게 성공한 인생이란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던 나는 비로소 나다운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지금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블로그 운영을 대행해 주는 일. 그리고 간간이 에세이를 쓰는 일. 안정적이지도, 많은 돈을 벌지도 못하지만 나는 예전보다 훨씬 행복하다.
돌고 돌아 내가 가장 자신 있고, 즐거워했던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았기 때문일까. 생각해 보면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것도 모두 너무나 상대적인 기준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 정도의 돈만 벌어도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저 내가 행복하다면,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충분히 성공한 인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