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 밤

쉼표, 그리고 그날

by 심온

새벽 두 시 오 분. 창백한 스마트폰 불빛이 어둠 속에서 간절히 떨다 스러진다.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이 두 평짜리 방은 적막한 겨울밤의 숨결로 가득하다.


잠들지 못하는 밤, 두어 시간 전 나는 바깥에서 마신 소주 한 병과 방 안에서의 와인 한 잔에 의지해보았다. 하지만 알코올의 달콤한 위로도, 처방받은 신경안정제 한 알의 약속도 헛된 것이었다. 적막 속에서 잠들어 있던 고주파의 귀울림이 다시 찾아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인공의 빗소리로 나를 위로하려 할 때쯤, 실제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후부터 쌓인 눈이 녹아내리며 창밖 배수관을 타고 떨어지는 소리. 톡. 투두둑. 톡톡.


문득 든 생각. 이것은 빗물일까, 겨울밤의 눈물일까?


안방 문고리를 잡아 돌릴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나는 이 작은 방에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조금만 더… 잠시만 더 있다가 자야지… 나는 2월 초순의 차가운 밤공기를 품듯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진눈깨비가 침묵의 춤을 추고 있었다. 온기를 갈구하며 흩날리던 눈은 창문 안쪽을 슬며시 들여다본 뒤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적막이 납덩이처럼 가슴을 짓누를 때쯤, 나는 스탠드 조명을 켰다.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듯한 와인병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거꾸로 끼워넣은 코르크를 물어뽑는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살며시 가르고, 붉은 앙금이 남은 와인잔에 절반의 위로를 채웠다. 침대에 걸터앉아, 나는 다시 허무의 벽을 응시했다.


어두운 벽면을 따라 솟아오른 책장은 마치 시간의 흔적을 담은 박물관 같다. 더는 펼쳐보지 않는 경제학 전공 서적들이 묵묵히 서 있고,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당시의 베스트셀러들이 먼지를 품은 채 잠들어 있다. 그 사이사이로 쇼펜하우어의 염세가 깃든 책들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준다. 책장 양쪽에는 몇 달 전 온라인 장터에서 구한 중고 스피커가 잠시 쉬고 있다. 작은 테이블 위의 노트북은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고, 바닥에 길게 늘어선 퍼팅연습매트는 이제 쓸모를 잃었다.


창가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보며 이제는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선배는 왜 비를 좋아해요? 난 칙칙해서 너무 싫은데." 비에 젖은 거리를 바라보며 어느 날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잠시 창밖을 응시하다 말했다. "좋지 않아, 빗소리? 촉촉해지는 느낌도 좋고… 난 그냥 좋던데?"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면 나는 그림자처럼 움츠러들고, 밝은 미소 뒤에 숨은 어둠은 더욱 짙어만 간다. 거리를 가득 채운 행복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들의 빛나는 순간을 질투하는 못된 마음을 숨길 수 있지…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흐린 하늘도, 쌀쌀한 바람도, 때로는 차가운 눈발까지도 위안이 되었다. 그저 맑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익숙한 멜로디가 고요한 방 안을 서둘러 채운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3년간 한 번도 바꾸지 않은 하와이 가수의 우쿨렐레 소리가 새로운 아침을 알린다.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언제 잠이 들었을까. 무의식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린다.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마치 깊은 바닷속에 잠긴 듯 사지가 무겁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온몸에 피로가 스며들고, 눈꺼풀은 젖은 낙엽처럼 내려앉는다.


창문 틈으로 희미한 햇살이 방 안을 밝히기 시작한다. 맑지 않은 하늘이 지나가 버린 모양이다. 이불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어제의 기억은 점점 선명해진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회사 단체방에 짧은 메시지를 남긴다. "저는 오늘 연차입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벽에 걸린 장식용 아날로그 시계는 여전히 시간의 흐름을 알렸지만, 이제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 출근도, 회의도, 퇴근도 없는 하루. 창밖의 주차장은 천천히 비어져 갔다.


약 12시간 전, 나는 직장이라는 이름의 닻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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