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그리고 며칠.
첫 친구의 이름은 '샘'이었다.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건 그때부터였을까. 사자만큼 크다고 말했던 그 녀석은 그저 평범한 시고르자브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우정은 진짜였다. 매일 연못 주변을 뛰어다녔고, 비가 오면 더 신나게 뛰었다.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의 새 직업으로 끝나버린 우정.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첫 친구이자 영원한 친구, 샘.
그리고 거기엔 매일 만나던 학교 친구가 있었다. 말도 안 되게 질투했던 그 1학년 반장 자리. 2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흐지부지되나 했더니, 운명인지 고2 때 다시 만났다.
"혹시 그때 그 너...?" 반가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지만, 결국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오해로 서로를 밀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한 자존심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 이번엔 그때처럼 놓치지 않을 텐데.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곳에서 만난 녀석은, 단 한 반뿐이었던 초등학교에서 마주쳤던 주일학교 친구였다.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 때부터 꽤 친했나보다. 달리기도 잘하고 정의감 넘치는 녀석이었는데, 웃기게도 싸움에선 언제나 평화주의자였다.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도 못 드는 주먹을 가졌으면서. 간질 발작으로 힘들어하던 여자애한테도 유독 다정했던 그 녀석이 경찰이 됐다니, 어쩌면 딱 맞는 직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5학년 때 또 이사를 가면서 헤어졌지만, 신기하게도 다시 연락이 닿았다. 송년회라는 그럴듯한 변명으로 가끔 안부를 물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지났더라. 벌써 몇 년이 흘렀나.
네 번째, 다섯 번째...
수많은 전학생 명찰을 달고 다니며 친구라는 이름의 스티커를 모으긴 했다. 하지만 그저 스티커일 뿐, 진짜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요즘은 한 주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거의 울리지 않는 휴대폰 진동 소리에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그 녀석이다. 대학 동아리 시절부터 마음이 통했던, 그래서 1학년 때부터 붙어 다녔던 친구다.
졸업식 날 사진을 찍고 그의 집에서 밤을 새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유통기업에서 점포 개설과 리모델링을 담당하는 출장 전문가가 되었다. 아마도 오늘도 어디 출장 간다는 핑계로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오는거겠지.
"밥 먹었나?"
"카페에서 베이글 먹었어. 5시쯤 이른 저녁이나 할까 하는데."
"4시에 도착할게. 3번 출구에서 보자."
"딱히 생각 없는데?"
"나 배고파. 이따 봐."
녀석은 마치 남의 양식을 착취하듯 열심히도 먹는다. 하루는 끓어오르는 부대찌개를, 또 하루는 기름진 보쌈을, 오늘은 냉삼이란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이면 어김없이 '집에서 아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이라는, 이제는 너무나 뻔한 핑계를 대며 맥주를 주문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핑계거리에 취해간다.
"우리 대학 다닐 때 생각하면 너한테 많이 미안해."
"뭔 개소리야?"
"너 형편 안 좋았을 때, 밥도 좀 더 사주고 우리 집에서 같이 좀 자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갑자기 왜 이렇게 미안한지 자꾸 생각나네."
"무슨 소리야? 그런 생각 1도 없었어. 술이나 마시자."
그토록 미안할 것도 없는데 자꾸만 미안하다는 녀석.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갑을 열어 한 대를 꺼내물고는, 마치 우리의 오래된 우정처럼 두 개비가 비어있는 담배갑을 내밀었다.
"나 어차피 집에 가면 못 피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