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쉼표, 그리고 며칠.
두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나는 삶의 완벽한 규칙을 찾지 못했다. 도서관과 카페를 오가는 것은 단순한 습관일 뿐, 진정한 의미의 일상이라 부르기엔 한참 모자랐다.
건강한 몸을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젊은(?) 남자이고 체력도 있다. 하지만 이 젊음과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평범한 직업을 찾아 헤매다 지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거나 길 잃은 이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등, 이 미약한 체력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단단한 체력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매일 아침 이른 출근 시간과 먼 출퇴근 거리를 핑계 삼아 미뤄왔던 운동. 그중에서도 수영은 늘 내 마음 한편에서 미완의 꿈으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그 핑계를 접을 때가 됐다.
동네 스포츠센터를 찾았다.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옆이었다. 초급반은 두 달이 의무라고 했다. 피식, 두 달이라니. 한 달 회원권으로도 며칠 못 버틴 피트니스센터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야 했다. 주저하는 손가락으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래, 두 달. 끊자.
수영할 줄 아시냐는 질문에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릴 적 개울가에서의 추억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건 그저 추억일 뿐이었다. 첫 강습을 마치고 나서야 그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늘 완벽한 자세를 추구했다. 스코어와 폼,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망설임 없이 후자다. 아마도 이건 내 삶의 은유일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속도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골프도 그랬다. "곽팀장, 폼이 정말 좋네. 오래 칠 수 있겠어."라는 칭찬에 미소 짓던 순간들이 이제는 달콤 쌉싸름한 향수가 되어버렸다. 완벽한 자세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골프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하염없이 녹아내렸다. 회사 법인카드라는 마법이 사라진 골프장은 이제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나는 다치면 안 된다. 생계를 위해 이 몸뚱이 하나만은 온전히 지켜내야 할 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그래, 늘 그래왔듯이. 물에 뜨는 것조차 서툰 초보자의 자세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네이버에 들어가 '초보 수영 세트'를 검색한다. 3만 9천 원과 4만 9천 원짜리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고민하다 비싼 것을 고른다. 마치 만 원의 차이로 나의 진지함을 증명하려는 듯. 수영복은 준비됐다. 수건도 한 장 챙겼다. 준비물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수영장으로 향한다.
8시 35분. 안내데스크에서 알려준 강습 시간 20분 전보다 5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샤워용품이 필요했다. 프런트에서 말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늘은 후덕한 누군가에게 빌려 쓰기로 한다.
미지근한 물줄기가 나를 반긴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15분이나 남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며 거울과 마주하자 두 달 동안 불러온 배가 수영복에 갇혀 더욱 도드라진다. 부끄러움이 스치지만 괜찮다. 어차피 두 달 뒤면 다 없어질 테니까.
살짝 수영장 안을 들여다본다. 강습이 한창이다. 아직 아닌가 보다. 완벽한 타이밍만 기다리는 내가 우스워진다.
샤워실에서 시계와 눈싸움을 하다 마침내 커튼을 열고 수영장으로 발을 내딛는다. 9시. 초보자를 찾는 친절한 목소리라도 들려오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길게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물속에서 체조를 시작한다. 혼자 물가에 서 있자니 첫 출근날 지각한 신입사원 같은 당혹감이 밀려온다. 어쩔 수 없지. 초급자 레인으로 향하는 계단을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려간다. 다행히도 물은 날 반기듯 적당히 시원하다.
슬며시 뒷자리를 차지하고 체조 동작을 흉내 내본다. 물속에서 따라 하려니 자꾸만 균형을 잃는다.
체조가 끝나자 용기를 내어 강사에게 다가간다. "저... 처음인데요." 목소리가 절로 작아진다.
"킥판 잡고 손은 이렇게, 발차기는 저렇게요." 강사의 목소리는 다행히 친절하다. 귀여운 외모만큼이나.
아, 그 흔한 스티로폼 조각이 바로 그 유명한 킥판이었구나.
시키는 대로 해본다. 25미터가 이렇게나 멀 줄이야. 겨우 다녀오니 강사가 엄지를 치켜든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라 고개만 끄덕일 수 있었다.
"이제는 한 손씩 번갈아가며요. 물속에서 '음', 나오면서 '파'. 음~파! 음~파!" 또다시 따라 하는데, 이게 수영인지 물 마시기 연습인지 분간이 안 된다. 입안에 짭짤한 맛이 감돈다. 그래도 또 엄지 척이다.
"잘하시네요? 수영 좀 해보셨어요?"라는 칭찬에 '그저 물에 뜨는 정도'라고 대답했다. 겸손이라기보다는 진실에 가까웠다. 나는 이미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옆으로 이렇게."
옆으로 누워 가는 자세가 묘하게 편안하다.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위안도 잠시, 뒤에서 따라오는 60대 어르신의 손이 내 발끝에 닿는다. 내 느림을 입증하는 순간이다. 서둘러 비켜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레인 끝에 모여 겨우 숨을 고르려는 순간.
"먼저 가세요."
수영장에는 양보의 미덕이 넘쳐났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출발한다. 하지만 레인 끝에서 문득 결심했다—더 이상의 양보는 받지 않기로.
강사의 지시사항이 귓가에 맴돌지만, 물은 내 의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코와 입으로 밀려든다. 이제 내 위장은 작은 실내 수영장이 되어버린 듯하다.
50분간의 사투 끝에 초급반 일곱 명이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파이팅! 우리는 이미 전우가 되어 있다.
나는 오늘 따봉을 세 번이나 받았다. 이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영 천재가 되어가나 보다. 킥판을 붙잡고 숨을 헐떡이며 발차기를 하는, 바로 그런 종류의 천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