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와 N의 상관관계 (6)

자신감과 불안감은 멀지 않다

by 레기

N은 약속시간이 20분이나 넘도록 카페에 도착하지 않은 S에게 슬슬 짜증이 났다. 늦는다는 문자메시지는 미리 받았지만, 달리 일정도 없었기 때문에 N은 제시간에 도착해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가 너무 촌스러워서 길 건너편 커피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길까 생각도 했지만 오래 기다리기에는 세련된 나무의자보다 푹신한 소파가 있는 이곳이 나을 것 같았다.


'당신은 이게 다 쉬워? 내가 당신 때문에 내가 무슨 짓 까지 한 줄 알아?'

며칠 전 떨어진 오디션에서 연기한 대사를 나지막이 읊어보았다. 감정이 얕다거나 몰입이 약하다거나 이런저런 평가들을 듣는 것도 지겨워지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가 되려고 처음 갔던 대형 기획사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대신 작은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갈 때도 N은 연기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앨범 한 장 내본 적 없이 몇 년이 흐르고 회사에서는 연기자로 방향을 바꿨다. 연기를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드라마에 단역으로 몇 번 출연한 후에는 기획사와의 계약도 끝났다. 어리고 예쁜 여자들 사이에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것도 지쳐서 지난번 오디션을 마지막 기회로 삼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허겁지겁 카페로 들어오는 S는 흘러내린 땀에 화장이 지워져 얼룩덜룩했다.


"요즘 애들 시험기간이라서, 과외하는 집에서 갑자기 더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

연예인을 기다리게 만들었네. 미안해, 정말. "


S가 연예인이라고 부르는 게 N의 신경을 얼마나 긁어대는지 알고는 있을지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아 삼켰다. 무신경한 일반인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 예민한 세계의 감정을 이해하기란 힘든 법이라는 것쯤은 감수하고 있었다.


"요즘도 과외 계속 해? 학원 강사도 계속이고?"

"응. 근데 학원에서 걸릴까 봐 좀 불안해"

"?"

"뭐, 아마 걸리면 문제가 되나 봐. 다른 선생님들 말로는 그러던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아니, 네 일인데 네가 모르면 어떡하니."

"다음 달까지만 하려고. 아직 학자금 대출도 남아있고..."


N은 예나 지금이나 긴장감 없이 한심하게 구는 S가 답답했다. 의대진학은 실패했지만 명문대 수학과를 졸업했으니 남들 보기엔 번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맹탕이니 나 아니면 누가 챙겨주나 N은 늘 걱정이었다.


"얼마 전에 엄마가 병원 다녀오셨는데, 병원비도 좀 미리 벌어둬야 될 것 같고..."

"네가 그렇게 돈, 돈, 하니까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거 아니야."

"아, 미안. 괜한 소리를 했네."

"그런다고 돈이 들어오니? 나도 아빠가 IMF로 일 그만두고 했을 때 진짜 힘들었거든. 그래도 할 거 하면서 궁상떨지는 않았다. 너 지금 꼴을 봐. 미용실은 언제 가고 안 간 거야?"


N은 머리를 매만지는 S를 내일은 미용실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N이 다니는 미용실에 유명 여배우가 가끔 오전 중에 다녀간다고 했으니 오전이 좋겠다 싶었다.


"취직 준비는 안 하니?"

"해야 되는데, 학원이랑 과외랑 다 하려니까 바빠서.... 좀 정리되면 해야지."

"그러지 말고 그냥 학원강사를 전업으로 하면 어때?"

"응?"


"요즘 취직이 그렇게 힘들다잖아. 거기다 기껏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으면 퇴직인데, 그거 몇 년 된다고 목을 맬 거야."

"그래도 요즘은 결혼하고도 일 할 수 있는 데 많다던데."

"그런 데는 경쟁이 더 심해요, 요것아."

"그런가?"

"그렇다니까. 강사도 잘만 하면 돈 많이 벌고 잘 나가잖아. 괜히 좋은 자리 찾느라 시간 보내는 것보다 그게 낫지. 인터넷에 강의 영상 같은 것도 한번 올려봐. 누가 알아? 스타 강사라도 탄생할지?"


"너는 어때? 오디션 잘 봤어?"

"아니, 이제 연기는 그만하려고."

"왜?"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나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 SNS라고 알아? 거기 내 팔로워가 좀 되거든. 거기서 공동구매하는 게 좀 남기도하고 요즘은 광고도 들어오기 시작해서 그쪽으로 해보려고."


"와, 역시 N.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며 놀라는 S 덕에 N의 기분이 조금 가벼워졌다.


"요즘은 마흔도 못돼서 회사에서 퇴직하라 그러고, 의대 나와서 의사가 돼도 개업해서 돈 벌기 힘들다 그러더라. 이제는 SNS 같은 새로운 곳에서 빨리 적응해서 나를 알리는 게 최고야. 주목받고 사람들이 좋아하면, 돈은 따라오는 시스템이지.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뭔데?"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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