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증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는 대상 혹은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증상을 가리킵니다.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포증을 겪고 있어요. 고소공포증, 물 공포증, 어둠 공포증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공포증이 있죠. 방금 언급한 공포증들은 모두 제가 겪고 있는 증상들입니다. 더 있는데 굳이 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공포증을 겪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건 사실 대상 혹은 상황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후 따라오는 결과 때문입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건 떨어져서 다치거나 죽을까 걱정해서, 물을 무서워하는 건 물에 빠져서 죽을까 걱정하기 때문인 거죠. 공포증은 이렇게 '죽음' 혹은 '치명적인 부상'이라는 결과가 내게 찾아올 거라는 불안으로 인해 생겨납니다.
저의 경우 고소공포증이 특히 심했습니다. 1층이었던 집에서 4층인 집으로 이사했을 때, 4층까지 올라가지를 못해 집에 들어갈 수 없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스스로도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졌어요. 고작 4층인데 뭐가 그렇게 무섭냐고,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기라도 하겠냐고, 생각을 되뇌며 집을 향했지만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어요. 다행히 지금은 4층 이상 오를 수 있게 되었지만,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포증을 겪는 사람들은 가능한 공포의 대상과 상황에서 멀어지려 애를 씁니다. 저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에 가지 않으려 신경 쓰고,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물을 물가에 절대 가지 않으려 하죠. 다행히도 잘 피하기만 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굳이 공포증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저도 필요한 만큼만 극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공포증을 극복하는 데 있어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기피하는 행동을 멈추고,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극복의 과정은 먼저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그 대상 혹은 상황을 생각하거나 마주했을 때 어떤 결과가 따라올 거라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됩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ABC 작성하기'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를 예시로 들어볼게요.
A(Activating events)는 내게 일어난 사건 혹은 상황입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상황이나 대상을 마주한 사건이 여기에 해당해요. 가능한 자세하게 적으면 좋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저는 이렇게 작성할 수 있어요. "옷을 사러 백화점에 왔는데, 옷을 사기 위해서는 7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백화점은 한 층마다 굉장히 넓고, 사람들이 아주 많으며, 실내는 조용한 편이다."
B(Belief)는 지금 일어난 사건에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내가 가진 믿음과 생각이에요. 지금 내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7층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을 이렇게 평가할 수 있어요. "7층에 올라가면 건물이 흔들릴 때 한참 내려와야 하는데, 그럼 무사히 탈출하지 못할 거야. 7층에서 떨어진다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 7층에 올라가선 안 돼."
C(Consequence)는 내가 내린 사건에 대한 평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 반응, 행동이에요. 나의 평가로 인해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저의 평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따라올 거예요. "몸이 경직된다. 식은땀이 흐른다. 입안이 마른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호흡이 가빠진다. 어지러움을 느낀다. 속이 메스껍다. 백화점에서 뛰쳐나간다. 옷 사기를 포기한다."
이렇게 ABC를 작성해 보면 내가 무서워하는 대상과 상황에 관해 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어요. 자세히 보이는 만큼 해결에도 가까워지기 때문에 가능한 구체적으로, 많은 정보를 적는 게 좋습니다. ABC를 작성한 후에는 B에 적었던 나의 주관적인 평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어요. 내가 떠올린 위기 또는 재난이 정말 일어날 법한 일인지, 일어났을 때 정말 내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지, 위기를 미리 막을 방법은 없는지, 다른 사람도 나처럼 두려움을 느끼는지 등 여러 질문을 던져보며 내 믿음이 합리적인지 점검해 봅니다.
'인지행동치료'라고 불리는 상담 이론에서 주로 쓰이는 이 ABC 작성하기는 공포증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불안을 포함하여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다른 감정들을 다루고 조절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생각을 깊이 해야 하고, 과정이 번거롭고 쉽지 않아서, 감정에 압도되어 있거나 많이 약해져 있는 사람에겐 그다지 적절한 방법이 아닐 수 있어요. 생각을 하는 데도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땐 먼저 쉬어주고 회복하는 게 더 급선무입니다.
공포증을 극복하는 데 있어 또 한 가지, 대표적으로 쓰이는 기법은 '체계적 둔감법' 또는 '점진적 노출법'이라 불리는 방법입니다. 간단히 말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레벨로 조금씩 마주해보는 방법이에요. 제가 4층에 있는 집에 들어가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선 2층까지 올라가기를 반복했어요. 그리고 2층에서 머물러 봅니다. 2층은 그다지 불안하거나 무섭지 않았어요. 그럼 3층으로 올라갑니다. 2층과 3층 사이, 2.5층쯤에서 불안이 또 느껴졌어요. 그 순간 잠시 멈춰서 또 머물렀습니다. 다시 3층까지 올라가 보고, 불안이 심해져서 금방 다시 내려왔습니다. 이 과정을 3층에서도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반복합니다. 그러고 나서 4층까지, 5층까지, 조금씩 층수를 높여가며 시도했죠. 지금은 빌딩 12층에서 매주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점진적으로 단계를 높여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레벨 설정을 잘 해야 한다는 부분이에요. 레벨이 높아질수록 조금씩 난이도가 높아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확 어려워져선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 레벨에서 내가 감정을 확실히 견딜 수 있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낮은 단계에서부터 견디기 힘들다면 전문가 혹은 친구나 가족과 함께 도전을 해봐도 좋습니다. 하지만 도움에 계속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12층에서 모임에 참여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높은 곳을 무서워합니다. 가능하면 창가에서 멀리 앉으려 하고, 창밖을 보지 않으려고 신경 씁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층으로 올라갈 때면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심장이 쿵쾅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도전하고, 내가 상황에 내리는 평가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반복해서 확인하며 조금씩 두려움의 크기를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공포증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 심리학자 도리스 볼프가 제안하는 공포에 대처하는 8가지 팁을 알려드리며 마칩니다.
불안을 예상하라. 불안이 찾아오는 건 당연하다. 불안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끼고, 느낄 수 있어야만 하는 감정이다.
당당하고 자신 있는 자세를 취하라. 당신은 올바른 자세와 호흡, 생각 바꾸기를 통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자신을 가져라.
복식호흡과 자발적 긴장 해소법을 활용하라. 천천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당신에게서 한 발짝 물러날 것이다.
불안이 솟구치거든 관심을 딴 곳으로 돌려라. 다른 사람들은 뭘 하는지 쳐다보고,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고, 냄새나 소리에 집중하라.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톱"을 외쳐라. "멈춰"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불안하고 부정적인 상상에서 즉시 빠져나와야 한다. 자신만의 생각 멈춤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도 좋다.
친구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라. 그러나 친구나 가족이 힘들 때 용기를 주고 혼자 갈 수 없을 때 곁을 지켜줄 수는 있지만 결국 목표는 당신 혼자서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기억하라.
사람들에게 당신이 공포를 느낀다고 이야기하라. 그리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놓아라. 솔직히 고백하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불안을 숨기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어진다.
재발을 예상하라. 제법 호전된 것 같다가도 문득 예전처럼 또 심해질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자신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