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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십이월 Aug 05. 2022

참 못 썼다, 연애시

연애의 전말


 

참 못 썼다, 연애시

연애의 전말




연애시를 쓰고 싶었다. 절절하고, 애틋해 뭇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아내리게 하는 연가 한 편 정도는 지어야 시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혁명을 꿈꿨든, 포스트 모던하게 시를 실험했든, 선시를 썼든 그가 지향하는 시 세계와는 무관하게 낭만적 연시 몇 글자 노트 한 구석에 끄적거려 놓는 것이 시 쓰는 사람의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십 년 동안 써놓은 내 시들 중에 연애시는 참 드물다. 아무리 뒤져도 그럴듯한 연애시는 없고 그나마 비슷한 것들도 고만고만하다. 버릴 만큼 함량 미달은 아니지만 연시로서의 설렘이나 격정은 보이지 않는다. 어제 하루 종일 그나마 추려 놓은 시들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다 자괴감도 느껴지도 화가 나기도 해 그냥 덮어 버렸다.


본능적이고 소박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 내기에 내 젊은 날은 거리낌이 많았다. 언젠가는 가슴 뛰는 사랑 시를 쓰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나 자신의 연애를 시로 표현해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내 연애는 진부하고 밋밋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좀 더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해서 써야 연애시가  될 것이라고 막연히 미뤄뒀었다.  


그러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나는 연애시를 쓰지 못 한 채 연애의 전말을 알아 버렸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이걸 깨닫고 혼자서 허허 웃었다.       








나는 너에게 

           


네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었어.

후- 불면 날아가 버릴 사탕 껍질

사탕 껍질로 인형을 만들었어.

가느다란 팔에 긴치마를 입은 인형.

유년의 결핍과 불안이 바스락거렸어.


사탕 한 알을 입에 물면 울음이 그쳤지.

사탕은 마지막 한 방울로 녹으며

동글동글하게 달았어.

이유도 설명도 없이 그냥 달았어.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면 무섭지 않았지.

사탕은 혓바닥을 향기롭게 물들이면서

알록달록하게 웃었어.  

거짓말이라고, 다 거짓말이라고 깔깔거렸어.


나는 너에게

사탕 한 알만큼의 위로도 주지 못했구나.

나는 너에게

사탕 한 알만큼의 농담도 건네지 못했구나.


다 주고 싶었는데

다 준 줄만 알았는데...


네가 떠난 자리에 남아 있었어.

후- 불면 날아가 버릴 나의 진정(眞情)

 
 





연애의 전말



               1


“뒤집어라 엎어라” 

놀이는 언제나 편 가르기로 시작됩니다. 


당신은 내 편인가요? 

믿어도 될까요, 당신의 체온

믿어도 될까요, 당신의 미간 


내 마음속은 열 길 물속 같은데

당신 눈 속엔 천 길 낭떠러지가 있네요. 

이 순간, 

흥도 없고 신도 없는 놀이판에서 

당신의 운명은 누구 편인가요?


“뒤집어라 엎어라

 기울여도 편먹기 “

편 가르기는 언제나 공정치 못 합니다.


당신은 내 편인가요?

기울여도 내 편이 되어줄 건가요.

끝내 성내지 않고 내 편으로 남을 건가요.


내 그림자는 한 번도 내 편인 적 없는데 

당신은 밤 같은 그림자를 딛고 섰네요.  

먼 훗날, 

길고 지루한 놀이가 끝나고 나면

당신의 인연은 누구 편이었다 말할 건가요?


        

               2


가뭄입니다.  

길어서, 못 견디게 길어서 

외로운 계절입니다.


그만해라, 그만해라.

제발 그만하라고

매미 울음 같이 갈급한 조갈이

바스라 집니다. 

하늘 아래 목숨 가진 것들 제각기

신음도 없이 기진해 가는

염천의 가뭄입니다.


구름이 몰려와도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별 것도 아닌 바람이 비를 쫓고

구름은 높직이 산개했습니다.

깊지도 않은 뿌리가 뒤엉켜 

나는 나무처럼 온몸으로 목마릅니다.


조바심 나는 대천명의 시간

해갈은 하늘의 몫이고

기근은 예정된 불운인데

내 마음이 가물어서

당신이 머물 자리는 없습니다.

메마른 눈을 끔뻑이면

바스라진 구름 조각들이 서걱거립니다.


그만 됐습니다. 

그리움도 기다림도 그만 됐습니다.

흙먼지 아우성치는 땅을 딛고 

이제 떠나세요. 


떠나는 당신은

조금 울어도 좋습니다.   

울며 세상에 난 목숨들

처음처럼 그렇게 울며 가세요.   







그대 잠든 밤에 



그대 잠든 사이 

밤은 은밀히 하루를 모의하니 

좁혀진 미간에서 근심은 

밤새 잠들지 못하는구나. 


길들여지지 않는 불안의 역마

꿈으로 불려 간 혼은 고단한데

꿈길은 염천이 덮고 있어

땀으로 흥건한 베갯잇에는

바람 한 점 들지 못하는구나. 


그대 잠든 사이 

또 다른 하루는 산발하고 다가드니

돌아누운 등골에서 구차는

밤새 펴지지 못하는구나.


깎아지른 분노와 골 깊은 후회

꿈으로 불려 간 기억들은 고단한데

새벽이 닥치기 전 

나는 그대  꿈길 끝자락에 

오래된 길몽 하나 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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