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 난무하는 시대
저주가 난무하는 시대
2000년 무렵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고, 우리 아이들은 영화로 책으로 해리포터와 함께 성장했다. 그즈음 영어 학원 등을 중심으로 핼러윈이라는 미국 문화가 전해져 아이들이 먼저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핼러윈의 코스튬이나 축제는 몇몇 젊은이들의 일탈이나 허영, 과도한 서양 사대주의가 아니라 그 세대가 공유하는 그들의 문화일 뿐이다.
놀러 갔다 죽은 아이들이다, 그러게 그런 데를 왜 가냐, 아이들 단속 잘해야 한다 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이 곧 저주라는 생각을 한다. 무지와 편협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보다 극악무도하게 스스로 악을 증식시키는 저주.
세월호 때 난무했던 그 모질고 모질었던 저주들이 떠올라 저절로 온몸이 아파온다. 이제 또 시작인가? 제발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마음을 모아 그것만은 막았으면 좋겠다. 죽은 자를 위해서도 산 자를 위해도.
너의 무덤에 오르치데우스*
엄마!
깜짝 놀랐지?
입가에 왜 피를 칠했냐고?
눈가엔 왜 검은 칠을 했냐고?
나는 내가 아니거든.
오늘 밤만은
이쁜 딸도 아니고
성실한 젊은이도 아니고
친절한 알바생도 아니야.
나는 음침한 마녀가 되어
살벌한 저주를 날리며
깔깔거릴 거야.
방종하게 기괴하게
아바다케다브라*!!
괜찮아, 괜찮아,
엄마!
오늘 밤은 온몸으로 농담하며
웃어주는 날이거든.
세상 모든 우아하고 생생하고 진지한 것들
다 별 것 아니라고.
낡아빠진 싸리 빗자루 타고
핏빛 달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어.
귀신, 도깨비, 유령
모두 불러내 함께 춤추고 싶어.
두둥두둥 다 같이 떠오르고 싶어.
윙가르디움네비오우사*!!
걱정 마, 엄마.
농담이잖아.
농담이었는데
그냥 농담이었는데
장난이었는데
그냥 다 장난이었는데
자꾸 숨이 막혀와.
여긴 너무 좁고
우린 너무 많고
피할 곳이 없어.
물러날 곳도 없어.
숨을 쉴 수 없어.
밀지 않았는데 밀리고
밀리지 않았는데 넘어져서
어지러워.
자꾸 잠이 와.
엄마, 기억나.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 밤새운 날.
어린이집 떨어졌다고 엄마 발 동동 구르던 날.
엄마, 기억나.
수시 면접 보러 가던 날
발 디딜 틈 없던 그 대학 앞 도로들
엄마, 기억나.
입사 시험 경쟁률
그 현기증 나는 숫자들
우르르 몰려가
밀치고 버텨서 뚫어내라고 했어.
숨이 막혀도 온몸이 으스러져도
이 좁은 길을 통과해야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했어.
난 아주 음침한 세상에 태어났나 봐.
난 아주 살벌한 세상에 살았나 봐.
난 아주 기괴한 세상에 갇혔나 봐.
엄마, 나 숨 쉬고 싶어.
엄마, 나 내 길을 가고 싶어.
익스펙터 패트로눔*!!
* 오르치데우스 :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주문 중 하나로 꽃을 만들어 낸다.
* 아바다케다브라 :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주문 중 하나로 살인 주문이다.
*윙가르디움네비오우사 :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주문 중 하나로 공중 부양 주문이다.
*익스펙터 패트로눔 :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주문 중 하나로 자신의 수호신인 페트로누스를 소환한다.